이미지 크게보기 최호권(오른쪽) 영등포구청장이 12일 구청 별관 대강당에서 열린 호국보훈단체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영등포구청 제공

구, 추경예산 1609억 원 편성…영등포구의회 372억 원 삭감
경로당 시설 개선·보훈대상자 장례지원·마을버스 지원 등
구의회 선심성·사전설명부족 등 사유 들며 "원칙 세워 심사"
구 "삭감사유 동의 못해. 미래준비·어르신 노후계획에 차질"


"민생예산이 삭감돼 구민들과의 약속을 못 지키게 됐습니다.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최호권 서울 영등포구청장이 구민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영등포구의회의 추경예산안 23.1% 삭감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아 구민들에게 꼭 필요한 민생예산을 지키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20일 영등포구에 따르면 구는 민생경제활력을 회복하고 저출산·고령화 등 사회현안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지난 6월 올해 첫 추경예산으로 1609억 원을 편성해 영등포구의회에 제출했다. 영등포구의회는 6월 23∼27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추경예산안을 심사하며 372억 원을 삭감했다. 이번 삭감규모는 최근 5차례 추경예산안 평균 조정비율인 0.49%의 약 50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삭감된 부분은 △열악한 경로당 시설 개선과 보훈대상자 장례지원 예산 등 7억2600만 원 △구민들의 문화예술향유와 활력 증진을 위한 문화예술·생활체육 관련 예산 7600만 원 △구민의 발인 마을버스 적자업체 지원 예산 1억4000만 원 등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10일 한국마사회 영등포지사 2층 강당에서 어르신간담회가 열렸다. 영등포구청 제공

구는 삭감된 예산이 탁상 구상이 아닌 현장방문·간담회 등 ‘발품 행정’으로 구민들의 의견을 들어 편성한 예산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구의회는 ‘선심성’ ‘사전설명 부족’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삭감했다.

구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이번 추경예산안을 기준과 원칙을 세워 심사·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삭감된 예산은 심의 전 충분한 사전 설명과 상세한 자료가 부족했으며 제·개정 되지 않은 조례를 근거로 편성했고, 본예산 대비 과도하게 측정됐고, 예결위 심사기준과 원칙에 위배 된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구는 "삭감사유에 동의하기 어려우며 이번 추경예산안 삭감으로 영등포의 미래준비와 어르신들의 풍요로운 노후를 위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고 유감을 표했다.

최 구청장은 예산 삭감 후 일주일 동안 구민·단체와 간담회를 열고 다양한 의견을 청취했다. 대한노인회 영등포구지회 관계자는 "경로당이 열악한 곳이 많은데 구청장이 전부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게 뭔지, 뭘 개선하면 좋은지 물어보더라"며 "그러면서 어르신들 요구 사항 꼭 반영하겠노라고 약속했는데 구의회에서 거의 다 삭감해버렸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경영난에 허덕이는 구 관내 한 마을버스 업체에서는 "마을버스가 멈추지 않게 추후 반드시 예산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라고 당부했다. 영등포예술인총연합회 관계자는 "서울시 유일한 법정 문화도시인 영등포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고 지역주민과 어르신이 함께 즐기는 문화예술 행사 개최가 절실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사업 운영·지원 활성화를 위한 예산 편성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고엽제전우회 영등포구지회 관계자는 "구청장이 국가보훈대상자들의 숭고한 헌신과 희생에 보답하겠다며 마지막 가는 길을 예우하기 위해 편성한 장례지원비였다"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13일 영등포구청 본관 기획상황실에서 열린 체육분야 구민간담회. 영등포구청 제공

최 구청장은 "관내 170개 경로당을 발품팔며 모두 다녀보니 경로당마다 사정이 다 다르더라"며 "맞춤형 예산을 편성해 구민의 뜻을 반영하고자 했는데 결국 약속을 못지킨 셈이 돼 간담회를 통해 급한 마음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최 구청장은 이어 "간담회에서 논의된 사안들을 적극 반영해 구민들의 바람이 최대한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이번 추경예산은 아쉽게 삭감됐지만 늘 그래왔듯 구민들과의 긴밀한 소통으로 민생경제를 챙기고 영등포의 미래준비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