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폭언·협박’ 빈번한 민원실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민원실에서 민원인들이 대기하고 있다. 개인적인 문서나 다량의 문건을 복사하는 사례 때문에 무료 복사기를 철거했다는 안내문이 눈에 띈다. 문호남 기자

■ 민원폭탄에 신음하는 대한민국 - (7) ‘프로 고발러’에 골머리 앓는 법원·검찰

2022년 법원 민원 3만7109건
재판 절차·결과 ‘불복’이 최다
판사 만나게 해달라 입씨름하고
신청서류 순서 다르다 ‘생트집’

이미지 크게보기

법원에 제기되는 반복적인 악성 민원은 신속한 재판을 진행해야 할 사법부의 행정력을 낭비할 뿐 아니라 다른 억울한 이의 정당한 민원을 받을 기회를 박탈하는 등 갖가지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

6일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전국 법원에 제기된 민원은 3만7109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가장 빈번한 민원은 재판 진행과 결과에 대한 불만으로 2만1742건(58.5%)에 달한다. 하급심 판결에 대해 항소하는 수준을 넘어 재판부를 공격하는 등 이른바 ‘불복형’ 민원을 제기한다. 대표적인 것이 재판장 기피 신청 남발이다. 본래 소송 당사자의 정당한 재판을 받기 위해 보장된 권리지만 외려 일부 민원인들은 재판부 구성이 바뀔 때마다 기피 신청을 내면서 재판 지연 수단으로 이용한다.

지난 2020년에는 모자(母子)가 자신들과 직접 연관성이 없는 공동소송에 참여해 재판부에 이의신청 소송을 제기하거나 추가 소송을 내는 등 3년간 6000차례에 걸쳐 전자소송을 낸 사례도 있었다. 소장을 내기 위해 직접 법원을 찾아야 하는 국민의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고안된 제도가 분풀이 창구로 이용된 셈이다. 이들은 소장을 욕설로 ‘도배’하기도 했다. 법원이 사건을 조작하고 있다며 공무원을 상대로 폭언을 내뱉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법원 민원실 직원들은 악성 민원을 ‘불복형’을 비롯해 ‘전가형’ ‘재촉형’ ‘떼쓰기형’ ‘트집형’ 등으로 분류한다고 한다. 전가형은 본인 관련 사건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법원 직원에게 알아서 해달라고 하는 유형이다. 실제 한 민원인은 3개월에 한 번 정도 법원에 찾아와 “눈이 잘 안 보이니 신청서 작성 등을 대신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떼쓰기형은 판사 면담 등 법원 공무원의 재량으로 처리할 수 없는 사안을 무조건 들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바로 처리될 수 없는 문건을 신청해 놓고 바로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재촉형으로 분류된다. “신청한 서류 정리 순서가 잘못됐다”거나 “다른 법원에서는 해결해 주는 민원을 여기에선 들어주지 않는다”며 트집을 잡아 감사담당관실에 진정을 제기하는 트집형 민원인도 많다.

법원 차원에서도 악성 민원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 마련을 고심 중이다. 앞서 3년간 6000여 건의 전자소송을 남발한 모자에 대해 법원행정처는 사용자 등록을 말소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서울중앙지법은 민원상담 공무원을 위한 응대 가이드 라인을 개발해 배포할 예정이다. 해당 가이드 라인에는 폭언을 일삼거나 업무를 방해하는 민원인이 발생할 경우 소속 부서장에게 보고하고 법원보안관리대나 경찰에 지원을 요청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무연·이현웅 기자 nosmok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