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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장재선 선임기자의 예술 순례

유럽식 붉은 벽돌에 한국식 검은 기와… ‘비아 메디아’ 깃든 100년 성당

장재선 전임 기자
장재선 전임 기자
  • 입력 2023-05-12 09:41
  • 수정 2023-05-1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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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조망공간 ‘세실마루’에서 본 서울주교좌성당.



■ 장재선 선임기자의 예술 순례 - (11)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과 강화성당

- 서울주교좌성당

1층 채플은 지하동굴성당 모양
바닥 동판무덤엔 주교유해 안치
스테인드글라스, 창호격자 본떠

- 강화성당

사찰 닮은 팔작지붕 중층 한옥
바실리카 양식에 범종도 갖춰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추진


글·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알고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딱 100주년이 됐다는 것을. 1923년 5월 15일 축성식을 했다는 세례자요한성당. 기독교 근대역사 순례를 하다가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에 들른 것을 계기로 서울주교좌성당을 찾았다가 만나게 됐다. 덕수궁과 서울시의회 사이에서 유럽풍의 독특한 미감을 자랑하는 건물이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다. 주교좌(主敎座·Cathedra)는 말 그대로 주교가 앉는 의자를 말하는 것이다. 이 성당은 영국 건축가 아서 딕슨이 1927년에 제작한 주교좌를 지금껏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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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주교좌성당의 본당은 2층에 있고, 1층에 2대 교구장 아서 터너(1862~1910) 주교 기념 채플인 세례자요한성당이 있다. 한국 이름 단아덕(端雅德)으로 불렸던 터너 주교는 병환으로 타계하기 전 주교좌성당을 짓기로 결정한 바 있다. 1대 교구장 찰스 존 코프(한국 이름 고요한·高要翰·1843∼1921) 주교가 1890년 성찬례를 시작한 한옥 터에서였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등의 이유로 성당 건축이 늦어져서 1922년 착공해 1926년에 축성했다. 3대 교구장 마크 트롤로프(한국 이름 조마가·趙瑪可·1862~1930) 주교 때였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주교좌성당의 모자이크 제단화. 1927년부터 11년에 걸쳐 제작했다.



본당보다 3년 먼저 축성식을 한 터너 주교 기념 채플은 1층에 있지만, 지하 동굴성당 모양을 하고 있다. 로마 초대 교회가 지하 동굴에서 신앙을 지켜낸 것을 기리기 위해서다. 이 채플의 중앙 바닥엔 트롤로프 주교가 성당을 안고 있는 모습을 그려놓은 동판이 있다. 그 아래엔 주교의 유해가 있다고 한다.

“유럽 성당엔 석판·동판 무덤이 많지만, 우리나라에선 유일하지요.” 정창진 서울주교좌성당 부제(Deacon)가 이렇게 설명했다. 부제는 성직자의 한 품계이다. 사목을 하는 사제(Priest)가 될 수 있지만, 정 부제처럼 종신으로 성당 업무를 돌보며 봉사할 수도 있다.

“이 채플에선 외국인 대상의 영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마크 리퍼트,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대사 등이 재임할 때 주일마다 예배를 보러 왔지요.”

정 부제의 안내를 따라 둘러본 2층 본당은 중앙 통로 좌우로 도열한 12개의 기둥이 인상적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를 상징한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한옥 구조의 강화성당에 대해 이경래 신부가 설명하고 있다. 왼쪽으로 강화읍이 보이고, 오른쪽 마당에 불교 상징인 보리수가 있다.



정 부제는 제단 뒤쪽의 모자이크화가 서울시등록문화재라고 소개했다. 높이가 8.6m에 달하는 이 모자이크화는 영국 작가 조지 잭이 11년(1927~1938)에 걸쳐서 제작했다. 채색한 사각 타일(tessera)을 이어붙여 만든 작품으로, 예수와 다섯 성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3대 교구장 마크 트롤로프 주교가 성당을 안고 있는 모습의 동판. 아래에 주교 유해가 잠들어 있다.



이 성당에서 특별히 눈여겨본 것은 스테인드글라스가 격자문양으로 디자인돼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전통 창호의 격자무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역시 시등록문화재인 서울주교좌성당 건물 전체도 서양의 건축 양식에 우리 전통 요소를 결합한 것이다. 1920년대에 트롤로프 주교가 딕슨에게 설계를 맡길 때부터 한국 사람 심성에 맞게 선이 부드러운 건물이 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둥근 아치가 이어지는 로마네스크 양식을 택한 것은 그 때문이다. 유럽 성당에 흔한 붉은 벽돌로 건물을 지으면서 우리 전통의 검은 기와를 끼워 넣은 것도 한국인을 존중해서인데, 결과적으로 절묘한 색 배합 효과를 빚었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정창진 서울주교좌성당 부제는 성당 업무에 종신으로 봉사하는 성직자이다. 종신 부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그가 유일하다.



성공회는 현지인의 정서를 존중하는 선교활동을 했기 때문에 우리 땅에서 성당을 지을 때 한옥 양식을 많이 차용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강화성당이다.

강화읍이 내려다보이는 북산 자락에 있는 이 성당의 외양은 전통 중층 한옥이다. 사찰의 천왕문처럼 생긴 문을 지나서 왼쪽으로 만나게 되는 것은 통나무 종메로 치는 범종이다. 얼핏 절집처럼 보여 스님들이 여기를 지날 때마다 합장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범종의 종메에 닿는 부분, 즉 당좌(撞座)에 연꽃 대신 새겨진 십자가는 이곳이 기독교 성전임을 넌지시 알려준다. 날아갈 듯 우아하게 팔작지붕을 얹은 기와집 예배당은 ‘天主聖殿(천주성전)’이라는 한자 편액을 달고 있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나선형 계단. 지하 채플에서 위층 본당 제단과 종탑으로 이어진다.



예배당의 다섯 기둥에 사찰의 법당처럼 한자로 쓰인 주련(柱聯)이 붙어 있는 게 이채롭다. ‘無始無終 先作形聲 眞主宰(처음도 끝도 없으시나 형태와 소리를 먼저 지은 분이 진실한 주재자시다)…’ 형식은 법당 주련이지만, 내용은 기독교 복음을 담고 있다. 무시무종(無始無終) 등의 문자는 우리 민족 재래의 경전 천부경(天符經)을 떠올리게도 한다.

예배당 안은 서구 전통의 바실리카 양식으로 꾸몄다. 두 줄로 늘어선 기둥 외측에 회랑을 배치하고, 중층엔 자연채광을 받을 수 있도록 유리창을 냈다.

이 성당은 1900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23년 전에 축성됐다. 서울주교좌성당을 지은 트롤로프 주교가 신부였던 시절에 성공회 최초의 한인 사제인 김희준과 함께 건축한 것이다. 당시 성공회가 조선인들의 전통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선교활동을 펼쳤다는 것은 성당 마당에서도 알 수 있다. 불교와 유교를 상징하는 보리수와 회화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회화나무는 지난 2012년 태풍에 넘어졌으나, 보리수 두 그루는 1세기가 훌쩍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화성당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 성당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사적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이 성당 관할사제이자 역사학 박사인 이경래 신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화성당과 서울주교좌성당을 둘러보며, 성공회가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서 ‘비아 메디아(Via Media·중용)’의 길을 걸어왔음을 새삼 떠올렸다. 일부 사제가 정치판에 몸담으며 그 길이 흐려지긴 했으나 본질이 달라지진 않았다. 혹자는 중용 정신이 매사에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기질에 맞지 않아서 성공회가 교세를 불리지 못했다는 평가도 한다. 그럴지도 모르겠으나, 지금처럼 각 영역에서 ‘극단 비즈니스’가 기승을 부리는 시절에는 낮은 목소리로나마 ‘비아 메디아’를 읊조리고 싶다. 아집과 편견을 벗어나 공존과 조화를 꾀하는 것이 중용이다.

서울주교좌성당은 매일 정오와 오후 6시에 종탑에서 타종을 한다. 1926년부터 100년 가까이 울려온 종소리인데, 요즘엔 각종 소음으로 잘 들리지 않는다. 부드럽고 은은한 종소리를 들으려면, 내 속에서 일어나는 각종 시끄러운 소리를 우선 잠재워야 할 것이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세례자요한성당은 지하 동굴 형태이다.



신부는 독신 의무 없고… 女사제도 20여명 배출

개신교 분류되는 대한성공회
가톨릭 성직자제도·전통 유지


성공회(聖公會)는 기독교 신앙 고백인 사도신경에 나오는 ‘거룩한 보편 교회’(The Holy Catholic Church)를 한자로 옮긴 것이다. 흔히 영국 국교회(Church of England)로 알려져 있는데, 16세기 잉글랜드 종교개혁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19세기 이후 여러 국가에 성공회가 퍼져가면서 ‘세계 성공회 공동체’(Anglican Communion)로 칭하게 됐다. 현재 영국 국교회는 잉글랜드 성공회만을 가리킨다. 최근 영국 찰스 3세 국왕 대관식을 집전한 캔터베리 대주교는 잉글랜드 성공회의 최고위 성직자이다.

대한성공회는 1889년 11월 1일 영국에서 군종 사제로 일하던 찰스 존 코프가 조선 주교로 임명돼 이듬해 9월 29일 제물포항에 들어온 데서 비롯한다. 성공회 선교사들은 서울과 인천 등에서 병원, 고아원을 설립해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서울교구는 1965년 영국 성공회에서 분할돼 자치 교구가 되며 최초로 한국인 주교(이천환)를 배출했다. 현재 전국에 성당이 134개 있으며, 신도 수는 5만여 명으로 추정한다. 노숙인·장애인 지원센터 등 사회선교기관 200여 개를 운영하고 있다.

성공회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하는 것은 개신교로 분류되는데 사제가 왜 신부로 불리느냐는 것이다. 이는 로마 교황청을 탈퇴해 개혁 교회를 표방했으나, 성직자 제도와 전례 전통을 지키기 때문이다. 가톨릭과 동방정교회처럼 유일신을 ‘하느님’으로 표기한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한다. 성공회 사제는 독신 의무가 없어 대체로 기혼이다. 하지만, 수도자(수사, 수녀)는 독신을 지킨다. 가톨릭과 달리 여성 사제가 있다. 1944년 홍콩-마카오 교구를 시작으로 1974년 미국, 1993년 영국 순으로 허용했다. 한국도 2001년 여성 사제가 나온 후 현재 20여 명에 달한다.

■ Tip - 성당 개방과 세실마루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일반에게 개방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성당 시설을 둘러볼 수 있다. 예배가 있는 일요일은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열려 있다. 개인이 방문해서 사무실을 통해 안내를 요청하면 정창진 부제 등 관계자가 설명을 해준다. 단체의 경우엔 전화로 미리 신청하는 게 좋다. 주교좌성당 옆에 4대 교구장인 알프레드 세실 쿠퍼(한국 이름 구세실·具世實) 이름을 딴 ‘국립정동극장 세실’이 있다. 한국 건축 선구자인 김중업이 설계한 건물이다. 극장 건물 옥상에 주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세실마루’가 조성돼 있다. 서울시와 성공회 서울교구가 협력해 만든 시민 휴식 공간으로, 주교좌성당뿐만 아니라 덕수궁의 근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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