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3일 ‘세계 기상의 날’을 앞두고 유희동 기상청장이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기상청 내에 마련된 집무실에서 기상청의 예보력 향상 복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 현안 인터뷰 - 유희동 기상청장

양자컴, 韓모델 적용 등 연구로
뒤처졌던 ‘슈퍼컴체제’ 극복 도전

한반도 ~ 全지구 한번에 파악하는
차세대 수치예보모델 개발 추진

모니터링·분석시스템 등 통합한
‘원패키지 솔루션’ 수출전략 마련

IPCC 6차보고서 ‘기후폭탄’ 경고
‘기후탄력적 개발’ 등 해법 주목을

‘종잡을 수 없는 날씨’는 이제 계절과 무관하게 우리나라를 관통하는 기상 키워드가 됐다. 더욱이 23일 세계기상의 날을 앞두고 지난 20일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6차 평가 종합보고서’는 심화하는 기후위기의 파급력을 상기시켰다. 기상의날을 맞아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기상청에서 유희동 기상청장을 만나 우리나라의 기후 상황과 기상청의 예보력 향상 복안 등에 대해 물었다. 유 청장이 IPCC 총회 참석을 위해 스위스 인터라켄에 머무는 동안 추가로 서면 인터뷰도 진행됐다.

―스위스에서 열린 제58차 IPCC 총회에 정부 대표로 참석했다. 이번에 승인된 IPCC 6차 종합보고서가 ‘거의 모든 시나리오에서 지구 온도가 가까운 미래에 1.5도 상승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은 결국 ‘기후 시한폭탄’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인가.

“IPCC 6차 종합보고서가 인류에게 주어진 무거운 기후 대응 과제를 지적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핵심 메시지는 여전히 ‘희망’에 있다고 본다. ‘적합하고 효과적인 저비용 옵션이 이미 존재’하며 ‘에너지, 산업 및 교통 등의 부문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 방안은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또 보고서는 ‘기후탄력적 개발’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기후 문제 단기 대응을 위한 ‘기후 행동의 다양한 기회’를 제시하고 있다. 즉 기후위기만 강조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에 있는 근본 취지와 같이 경제적 기회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보고서가 제시하는 방향을 착실히 따라간다면 ‘기후 시한폭탄’은 피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춘삼월’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봄의 시작이 빨라졌고, 3월 초에 4월 하순 기온이 찾아오는 등 봄에도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기상현상이 빈번해졌다.

“3월 초 전국의 기온이 평년보다 5∼9도가량 높아지는 등 4월 하순 수준의 이상 고온 현상이 관측됐다. 사실 이런 기상 현상은 장기 예측이 어려웠던 부분으로, 이 역시 기후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또 계절과 관련한 경향성 중 하나로 여름·겨울의 기온 진폭이 커지는 대신 봄·가을이 짧아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겨울이 끝나자마자 언제 봄이 왔나 싶다가 바로 여름으로 지나가는 그런 패턴이 오고 있다. 이러한 변화무쌍한 날씨, 기후 변동성 때문에 기상청 예보관들이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예보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졌다.”

―매해 여름철은 기상청이 가장 고전하는 계절이다. 지난해 서울에 역대급 폭우로 사상자가 나온 상황에서 다가오는 여름 대비가 중요해졌다.

“폭염·집중호우·태풍 등 여름의 기상 상황을 분석, 관측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북태평양 고기압이다. 그런데 북태평양 고기압은 매우 거대해 동아시아 주요 지역에 걸쳐 있으면서도 일별로 상황이 변하는 예민한 성격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됐을 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원초적인 구조를 우리가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태평양 고기압 영향권에 같이 있는 중국, 일본 등과 함께 이를 집중 관측할 수 있는 국제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3월 첫째 주 세계기상기구(WMO) 집행이사국 회의에 가서 중국, 일본 등 주변국 기상청에 이런 내용을 제안해 일단 긍정적인 답을 얻은 상태다. 또 이를 WMO 연구프로그램인 세계기상연구계획(WWRP)과 연계해 국제적인 사업으로 만들고자 하고 있다.”

―기상청을 이야기할 때 슈퍼컴퓨터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런데 이제는 슈퍼컴퓨터 시대를 넘어 양자컴퓨터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는데.

“양자 컴퓨터 기술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중앙처리장치(CPU) 중심으로 돼 있는 현재의 슈퍼컴퓨터 체제에서 우리가 후발 주자로 뒤따라갔다면, 양자 컴퓨터 부문에선 지금부터 준비한다면 우리가 그 어떤 나라 기상청보다 앞서나갈 수 있다. 양자 컴퓨터에 우리 기상 수치예보모델을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검토 및 연구를 기상청 산하 국가기상슈퍼컴퓨터센터에 지시한 상태다. 지금 컴퓨팅 시스템이 CPU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로 넘어가는 전환 국면이어서, 우리 모델을 GPU 체제에 안착시킬 수 있는 컨버팅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할지, 아니면 전체적으로 양자 컴퓨터에 맞게 조정해야 할지부터가 연구 대상이다.”

―양자 컴퓨터 관련 기술은 최근 국가전략기술로 선정되는 등 조명받고 있지만, 아직 상용화는 물론 연구·개발(R&D)조차 초기 단계다. 5년 이내 기상 분야에서 양자컴퓨터를 활용한 연구의 성과물을 볼 수 있을까.

“100%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슈퍼컴퓨터도 성능 문제로 5년마다 개선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어렵겠지만 양자컴퓨터도 이에 맞춰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컴퓨터 전산 자원이 기상예보에 필요조건인 만큼, 한 단계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전 세계 리더 기상청으로 가기 위한 몇 가지 기술은 선도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국내선 연세대가 가장 먼저 양자컴퓨터를 도입하는데, 미국 IBM의 도움을 받아 송도 연세사이언스파크에 컴퓨팅 센터를 설립하기로 한 상태다. 거기에 설치되는 양자컴퓨터에 기상청의 수치예보모델을 가동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려고 한다.”

―한국형 수치예보모델인 KIM의 개선도 기상청의 주요 과제다. 기상청은 차세대 통합 수치예보시스템 개발을 추진 중인데, 차기 모델에서는 어떤 부분을 주로 개선하려고 하는가.

“현재 수치예보모델은 사실 단기 및 중기 예보에 최적화된 예측 모델이고 공간적으로도 전 지구와 지역, 국지 모델로 나누어 정보를 생산했다. 그래서 시공간적으로 단절돼 있는 정보들을 통합할 때 경계층에 있는 부분들이 오차를 만들어내는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이를 차기 모델에서 개선해 최종적으로는 하나의 프레임 속에서 장기예측까지 가능한 모델로 발전시키겠다는 생각이다. 시간적으로는 6시간부터 30일까지, 공간적으로는 한반도 부근의 국지부터 전 지구까지 하나의 모델 속에서 파악해 이음새 없는 모델을 완성하겠다는 의미다. 이런 여러 가지 개선 작업을 위해서라도 한시적인 수치예보기술 개발 사업단 조직을 정규 조직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상청에 기상산업 육성과 수출이 중요한 과제로 떨어졌다. 추진 중인 ‘원 패키지 솔루션’ 수출이란 무엇인가.

“‘원 패키지 솔루션’이란 기상 관측장비, 모니터링·분석 시스템, KIM 기반의 의사결정 시스템, 통신·인프라로 이루어진 종합재해대응시스템을 해외에 소개하는 것이다. 기존에는 개별시스템 형태로 수출했던 것들을 통합해 현지 상황에 맞게 맞춤형으로 재설계한 다음 대상국에 제안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은 개발도상국 기상 분야 현대화를 위해 수년 단위로 1억 달러씩 투자하고 있어 이를 확보하기 위한 수출 전략이 필요할 때다. 올해는 기상 분야 수출 활성화의 ‘마중물’ 개념으로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활용해 베트남에서 태풍 및 집중호우 대응을 위한 예보 통합플랫폼 구축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고, 필리핀·라오스에도 맞춤형 재해대응시스템 수출을 추진 중에 있다.”

―WMO 집행이사로서의 활동에도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월 초 WMO 집행이사국 회의에 참석해 WMO에서 지정하는 위험 기상 현상 중 하나로 ‘블랙 아이스(살얼음)’를 지정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을 한 상태다. 이 문제를 놓고 WMO 전문가 그룹에서 토의를 시작하겠다는 답변까지 받았다. 또 앞서 언급했듯 북태평양 고기압 관련 국제 공동 연구 프로젝트도 WMO 회의를 계기로 주변국들에 동참을 제안했다. 우리가 제안하는 여러 가지 것들이 WMO의 국제표준으로서 자리 잡고, 국가별 협력 프로젝트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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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보부터 행정까지 두루 거친 ‘정통 기상관료’… 한국형 수치예보모델 개발 주도

■ 유희동 청장은…

유희동 기상청장은 기상청에서 30년 넘게 근무하며 예보는 물론, 행정업무까지 요직을 두루 거친 ‘정통 기상관료’다. 유 청장은 지난 1990년 기상청에 입사한 후 말 그대로 생애를 기상청의 궤적과 함께해 왔다.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졸업한 유 청장은 같은 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미국 오클라호마대에서 기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특히 입사 후 우리나라의 독자적 수치예보모델 필요성을 주장해 수치모델개발과장으로서 한국형 수치예보모델(KIM) 개발을 주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11년부터 9년에 걸쳐 KIM이 개발되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9번째로 자체 수치예보모델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유 청장은 이후 핵심 보직인 예보국장으로 근무하면서 현재의 재해기상대응팀의 전신인 예보분석팀을 만든 것도 재임 중 큰 성과로 꼽힌다. 재해기상대응팀은 단순 예보를 넘어 강수 구조분석이나 유사사례 등 심층 분석을 통해 재해 관련 시나리오를 생산해내는 역할을 한다. “당시 예보분석팀을 만든 것은 현업 예보관과는 다른 분석적 관점에서 위험 기상 정보를 생산해 보라는 취지였다”고 소개했다.

유 청장은 이후 기획조정관과 차장에 오른 후 2022년 6월 청장으로 임명됐다. 유 청장은 취임식에서 “국민 눈높이로부터 시작하는 기상청, 세계 선도기술을 확보하는 기상청, 미래를 향한 새로운 업무에 과감하게 대응하는 기상청”이라는 목표를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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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