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뒤로가기
검색/메뉴
검색
메뉴
문화지식카페

AI는 지적 진보·가능성에 대한 질문

  • 입력 2023-03-20 08:55
  • 수정 2023-03-20 09:32
댓글 0 폰트

photo이미지 크게보기



■ 지식카페 -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24) 챗GPT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월터 옹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문자는 인류 지성사의 혁명
기억에 의존하는 문화 바꿔

챗GPT는 또 한번의 도약
다양한 혜택·활용 곱씹으며
윤리적인 문제도 성찰해야


photo이미지 크게보기

기원전 9세기 말, 그리스에는 알파벳이 쓰이기 시작했다. 기억에 의존해 모든 정보와 지식을 생산하고 보전하며 소비하던 상황에서 글자의 등장은 획기적이었다. ‘둔필승총(鈍筆勝聰)’, 아무리 둔한 악필이라도 써두기만 하면 총명한 기억력을 이겨낸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복잡하고 어려운 정보나 지식을 기억하려고 골머리를 앓지 않게 되었다. 필요한 지식을 기억을 더듬어 찾아내는 것보다 문자로 기록해둔 서판을 찾아내는 것이 더 확실하고 편리했다. 그런데 기억의 보조장치로서의 글자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이집트의 신 이비스, 자칭 테우트 신이 글자를 발견한 후, 타무스 왕과 나눈 신화적 대화를 전해준다. 테우트가 말했다. “왕이여, 이 글자를 배우면 이집트 사람들은 더 지혜롭고 더 잘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글자는 기억의 약이며 지혜의 약입니다.” 그러나 타무스 왕은 반색보단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글자를 배우면 기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할 테니, 글자는 사람들의 영혼에 망각을 제공할 것입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타무스 왕의 비판적인 태도를 발전시켰다. 문자란 사물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그림보다도 더 희미한 이미지만을 모방하기 때문에 진실을 흐리고 혼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또한 기억에서 기억으로 지식과 정보, 지혜가 전달되는 과정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묻고 답할 수 있고, 대화를 통해 여러 가지 오해와 의문을 해소해나갈 수 있는 반면, 문자로 고정된 기록을 읽으면 이런 생생한 교육의 효과가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실제로 단 한 권의 책도 남기지 않았다. 그는 아고라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진리와 지혜를 추구하는 ‘구술’ 철학자의 행보를 평생 이어나갔다. 반면 그의 제자 플라톤은 그런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삼아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구술의 현장을 열심히 기록하고 재구성하며 창작해 수많은 책을 남긴 ‘문자’의 철학자였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소크라테스의 말을 가장 잘 듣지 않은 ‘불량한’ 제자가 플라톤인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플라톤은 그 문자기록 덕에 지금까지도 철학의 대부로 통하고, 소크라테스 역시 자신의 비판과 가르침을 거스른 플라톤 덕분에 지금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예상하고 우려했던 문자의 폐해가 문자의 장점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하다.

예수회 신부로서 영문학자였던 월터 옹은 ‘구술문화와 문자문화’(1982)라는 책에서 인간이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단계를 세 가지로 구분했다. 그는 기억에 의존한 구술문화를 출발점으로 삼았고, 문자문화는 인간이 기억하기 위해 소비했던 뇌의 에너지를 정보의 분석과 지식의 창출에 쏟아부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인류 지성사에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정보와 지식의 기록과 검색의 종합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한 새로운 시대에 진입해 있다고 선언했다. 바로 디지털 시대다. 월터 옹의 책은 디지털 시대의 의미와 가치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진단하며 그 희망과 위험의 여러 가능성을 예견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의 통찰은 최근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생성형 AI 챗GPT의 등장과 직접 연결된다. 그리고 플라톤이 제기했던 문자문화에 대한 우려와 비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입은 문자문화의 혜택 역시 지금 소환될 필요가 있다.

놀라운 혁신을 거듭하는 인공지능(AI)의 기술은 인간의 지적활동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그동안 지식과 정보의 기억과 분석에 집중되었던 우리 뇌의 역량을 디지털의 혁신은 어느 쪽으로 향하게 할 것인가. 우리가 그것들을 적극 활용하면서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를 우리의 새로운 역량을 상상하며 혁신의 방향을 찾고, 무엇을 해야만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 윤리적 지향성을 통찰하고 준비해야 할 때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이 기사를 친구들과 공유해 보세요.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안내 버튼

최근 12시간내
가장 많이 본 뉴스

문화일보 주요뉴스
진중권 “이동관 사퇴, 민주당 ‘닭 쫓던 개’ 신세 됐다”
진중권 “이동관 사퇴, 민주당 ‘닭 쫓던 개’ 신세 됐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통과시키려 한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언론, 방송 정책의 구심점이 될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안 처리로 민주당이 확보할 수 있는 정치적 실익이 사실상 사라졌음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진 교수는 지난 1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이 위원장 사퇴를 두고 이같이 말했다. 진 교수는 “탄핵은 법률이나 헌법에 중대한 위반이 있을 때, 극단적인 경우에 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이)정치적 무기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이에 “민주당이 닭 쫓는 개 신세가 됐다”며 “그 자리(방통위원장)에서 다른 사람을 앉힌들 누구를 앉혀서도 대리로 할 수가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진 교수는 국민의힘과 정부의 방통위원장 임명, 민주당이 추진한 최민희 전 의원의 방통위원 추천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을 “총선을 위해서 누가 유리한 언론 지형을 갖겠느냐의 싸움으로 서로 비토(거부권)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진 교수는 “작년, 재작년만 해도 가짜뉴스 얘기한 게 민주당 정권이었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제 법까지 만들었던 사람들이 지금 와서 언론 자유 투사 노릇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최지영 기
기사 댓글

본문 글자 크기를 조절하세요!

※ 아래 글자 크기 예시문을 확인하세요.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본인에 알맞은 글자 크기를 설정하세요.

닫기
좋은 기사는 친구들과 공유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