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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경 사회부 차장

‘공공의료’는 늘 존재감이 없었다. 진가가 재조명된 계기는 코로나19 사태였다. 공공병원과 의료진이 코로나19 확진자 치료 최전선에 서면서다. 3년 가까이 병상을 비워 코로나19 확진자를 치료했고, 다른 병원들이 꺼리는 저소득층과 노숙자 등 취약계층 환자까지 돌봤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이를 외면했던 정부가 감염병 위기가 다시 터지자 공공의료에 매달린 것이다.

공공의료는 한 나라 의료체계의 기초 체력이다. 국내 상황을 담은 숫자는 초라하다. 전체 의료기관 중 민간병원이 94.6%지만 공공병원은 5.4%에 불과하다. 공공병원 의사 수는 민간의 10분의 1 수준이다. 공공과 민간 병상 수는 각각 9.7%, 90.3%다. 공공병상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평균 71.5%) 중에서도 꼴찌다. 의료 영리화가 가장 심하다는 미국조차 공공병상 수는 21.4%다. 그런데도 국내 코로나19 환자의 80% 이상을 약 5%인 공공병원이 도맡았다. 공공의료 인력을 갈아 넣은 결과였다.

코로나19 유행이 진정되자 공공의료 확충은 다시 찬밥 신세다. 공공의료의 버팀목인 국립중앙의료원은 최근 신축·이전하는 과정에서 예산을 삭감당했다. 사업비는 1조2341억 원에서 1조1726억 원으로 줄었고, 병상은 1050개에서 760개로 축소됐다. 병상 규모만 놓고 보면 27.6%나 쪼그라들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위중증 환자 치료, 수도권 병상 배정 등을 맡았다. 이 병원의 한 의료진은 “이대로 모병원이 축소된다면 진료과목 구성은 미달되고 의료진도 모을 수 없어 복잡한 질환을 가진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공공병원은 평소에 취약계층 진료와 필수의료를 맡다 보니 늘 적자에 허덕인다. 그만큼 자본 논리도 자주 개입된다. 예산을 삭감한 정부의 논리는 국립중앙의료원 인근에 대형병원이 여럿 있어 병상 과잉 공급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형병원이 아무리 많아도 신종 감염병 사태가 터지면 대부분 입원 환자를 받는 곳은 공공병원이다. 결국, 공공병원이 ‘1차 방어선’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제적 잣대로 따져봐도 비용 효과는 크다. 기획재정부가 의료원 신축 규모를 축소해 줄인 예산은 615억 원이다. 반면, 지난 3년간 정부가 코로나19 환자를 받게 하려고 민간병원에 준 손실보상금은 총 8조5464억 원이다. 모두 일회성 비용이다. 돈으로 병상을 사는 걸 시스템이라고 할 순 없다. 공공의료에 미리 투자했다면 코로나19 유행을 효율적으로 넘길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공공병원은 민간병원이 많지 않은 지방에서 부족한 필수의료 기능도 메워준다. 주민들이 수도권으로 ‘원정진료’에 나서지 않아도 되는 거점병원이 될 수도 있다.

코로나19 출구전략이 한창인 요즘이다. 윤석열 정부는 110대 국정과제로 감염병·응급 등 공공의료 강화를 내놓은 바 있다. 코로나19 위기가 한국 사회에 던진 숙제 중 하나는 질 좋은 공공병원 확보다. 새로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다시 닥치기까지는 이제 2∼3년 남았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