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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기아자동차·㈜효성·STX 등에서 귀족노조의 고용 세습 관련 논란이 계속되고, 공공기관인 한국토지주택공사·서울토지주택공사·경기주택공사·철도공단·도로공사·가스공사·서울교통공사 등에서도 노조의 고용 세습이라는 병리적 현상이 보도되곤 했다. 그런데 급기야는 지방정부인 서울 송파구청에서 노조 간부 인사는 사전 합의하고, 5급 승진 대상자 범위는 사전 협의하며, 노조가 지목하는 사람은 노무와 인사 업무에서 배제토록 하는 등 공정해야 할 인사에 노조가 적극 관여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이 밝혀져 경악하게 한다.

조합원 자녀의 고용 세습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의 꿈을 좌절시키는 불법 부당한 행위라는 점에서, 인사에 관여하는 단체협약 역시 공무원노조법에 정면 위배된다는 점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제8조에 따르면 정책 결정과 임용권의 행사 등은 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을 예상한 듯 송파구청의 단체협약에는 ‘정부 명령·지침보다 노조와 맺은 본 협약이 우선한다’는 규정까지 뒀다는 점에서 사전에 이러한 위법성을 알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노조의 역할은 중요하다. 노조는 직원들의 불만과 고충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에서는 노조와 별도로 직원협의회(staff council)를 설치한다. 인사 사항을 포함한 거의 모든 문제를 직원협의회에 알리고 협의한다. 인사의 불공정성과 자원의 불균등한 배분 등은 직원협의회와 논의 사항으로, 기관장은 특정 결정을 하게 된 배경과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다만, 노조와 직원협의회가 다른 조직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 국가의 직원협의회는 우리나라의 직장협의회와 성격이 유사하다.

우리나라의 공무원 노조가입률은 노조가 설립된 이후 점차 늘어 지난해 기준 88.5%를 웃돌고, 공공부문의 경우 69.3%, 교원은 16.8%이다. 정규직 근로자의 민간부문 노조가입률이 11.3% 수준인 점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편이다. 공공부문의 적극적인 노조 활동을 기대하게 하는 통계라 할 수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민주화의 일환으로 노조의 역할을 자리매김해 온 부분은 충분히 공감한다.

최근 공공 노조의 한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노조의 위험 요인인 권력화, 관료주의 과잉, 조직이기주의, 민주주의 결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불합리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건강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노조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에 이견을 달기 어렵다. 하지만 인권을 보장하고 공정하며 영혼과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직장을 만드는 노조의 역할은 당연히 법치의 테두리 안에서 제도적으로 균형 잡아야 한다.

보수·복지·근무조건을 넘어서 고용 세습이나 갑질 수준의 단체협약을 통한 인사 관여는 결코 용납돼선 안 된다. 정부는 노동개혁을 연금·교육 개혁과 함께 핵심 역량을 기울여 성과를 내야 할 3대 과제로 꼽고 있다. 노동개혁의 핵심은 상생과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하고 투명성과 법치를 기둥으로 세워 나가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자유와 공정, 그리고 투명성 제고와 소통을 통해 본연의 업에 충실한 노동개혁의 성과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