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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100세 시대 名士의 건강법

매일 아침 팔다리 운동 100번씩… 수천보 걷고 그림수집 취미 즐겨

박현수 기자
박현수 기자
  • 입력 2023-01-05 09:08
  • 수정 2023-01-0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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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지난달 2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에서 만난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은 “나이가 들수록 모음보다 나눔의 즐거움과 행복이 더 크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 100세 시대 명사의 건강법 - 유상옥 코리아나 화장품 회장

양재천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
매일 9시 정시 출근, 6시 퇴근

각종 조찬강연회 빠지지 않아
주말엔 갤러리서 미술품 감상
최근 11번째 책 ‘양재천’ 출간


글·사진=박현수 기자 phs2000@munhwa.com

이번 주 명사의 건강법 주인공은 유상옥(90) 코리아나 화장품 회장이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이 추천했다. 유 회장을 만나기 위해 지난달 23일 집무실이 있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스페이스 씨(C)’를 찾았다. 스페이스 씨의 ‘C’는 코리아나(Coreana)와 문화(Culture), 공동체(Community)의 공통된 머리글자 C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전통문화와 현대문화의 조화와 창조를 위한 문화경영을 상징한다. 이 건물의 설계자는 프랑스에서 16년간 활동한 유명한 정기용 건축가다. 집무실 입구와 내부는 갤러리 그 자체였다. 삼국시대 토기에서부터 미인도, 프랑스 조각가 샤를 고티에가 1890년에 제작한 ‘르 마르탱(Le Martin, 아침)’에 이르기까지 수십 점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가 어렵게 모은 유물들이다.

그는 일찍이 1970년대부터 감성을 키우고 마음과 정신 수양법 차원에서 미술품 컬렉터로서 그림, 조각, 서예 작품을 수집해오고 있다. “고미술품과 민속품을 비롯해 화장품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여성 생활용품뿐 아니라 여성의 모습을 그린 미인도를 수집하는 것이 크나큰 즐거움이요 보람”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옛 여성들이 사용하던 화장 관련 유물들을 주로 모았다. 평생 즐겁게 모은 미술품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그것들이 지닌 역사적 가치를 혼자서만 소유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강남 한복판 스페이스 씨에 국내 최초로 화장박물관과 코리아나미술관을 세워 2017년 개인 유물 4826점을 코리아나 화장품 법인에 기증했다. “나이가 들수록 모음보다 나눔의 즐거움과 행복이 더 크게 다가온다”고 했다.

유 회장은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편의 성공신화다. 그는 일찍이 은행원이 되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덕수상고에 편입하고 고려대 상대를 졸업했으나 은행원 시험에 낙방하고 1959년 동아제약 공채 1기로 입사한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30년간 근무하면서 영업총괄 임원을 맡아 ‘박카스 신화’를 성공시켰고, 자회사인 라미화장품 CEO를 거쳐 1988년 코리아나 화장품을 창업했다.

유 회장은 지금도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건강비결은 뭘까 궁금했다. “아침 7시에 눈을 뜹니다. 습관대로 팔다리 운동을 100번씩 한 후 이를 닦습니다. 이를 잘 관리하려고 매일 아침밥 먹기 전 이 닦는 것이 습관이 됐어요”. 덕분에 치아 건강이 양호해 음식을 가리지 않고 뭐든 잘 먹는다. 그리고는 양재천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1만 보에서 8000보, 7000보로 줄어들었다가 요즘은 3500보 정도 걷습니다”. 그의 걷기는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남 청양중학교와 청양농고에 다니는 동안 10km에 달하는 등굣길을 걸어 다녔어요.” 서울로 유학해 덕수상고를 다닐 때 서울신문 보급소를 운영하며 신문 배달을 시작, 동아제약에 입사할 때까지 계속했다. 이러한 걷기가 현재 건강한 노년의 밑거름이 됐다.

유 회장은 지금도 오전 9시에 출근해 정상적으로 업무를 본다. 그는 일에 대한 의욕이 넘친다. 지금도 임원회의와 전략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내고 업무지시도 내린다. 일에 대한 열정과 의지, 남다른 정신력이 건강비결이다. 가족들이 ‘회사 일에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조언할 정도다. 오후 6시에 퇴근, 8시쯤 저녁 식사를 하고 11시에 잠자리에 든다. 불면증을 걱정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하루 8시간 정도 충분히 잔다. 이러한 일과가 규칙적이다.

또 한강포럼과 고려대 등에서 열리는 각종 조찬강연회도 빠지지 않고 다닌다. 주말엔 수시로 갤러리에 들러 미술품을 감상한다. 아울러 틈틈이 걸으려고 노력한다. 예컨대 양재천을 걷지 못한 날에는 출근길에 강남 압구정동에 있는 도산공원에 들러 몇 바퀴 걷고 그곳에서 신사동 회사까지 걸어서 출근한다. 또 골프를 좋아해 주 1회 정도 친구나 형제들과 즐긴다. 그럴 때마다 골프 칠 정도로 기운이 남아 있다는 것에 만족해 한다.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 등 특별히 아픈 곳이 없어 병원 출입도 거의 하지 않는 건강체질이다. 어려서부터 잔병치레도 하지 않았다.

유 회장은 글 쓰는 CEO로도 유명하다. 코리아나 화장품을 창업한 이후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펴낸 ‘나는 60에도 화장을 한다’는 경영수필집을 비롯, ‘모으고 나누고 가꾸고’에 이어 최근 11권째 책인 포토에세이 ‘양재천을 거닐며-아흔의 경영인’을 펴냈다. 책 제목대로 매일 아침 양재천을 거닐며 사계절 별로 아름다운 풍광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유 회장은 2009년 개인 소장 유물 200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것을 비롯해 모교인 덕수고 100주년 기념관, 고려대, 청양군 백제역사문화체험박물관 및 농업박물관, 코리아나 법인 등에 5400여 점의 소장 유물과 미술품을 기증했다. 이러한 공로로 지난해 10월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98년 국민훈장 모란장과 2009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은 데 이어 세 번째 훈장 수훈이다. 최근 사립미술관협회 관장들을 초청, 문화훈장 수훈 축하자리를 마련했다. “참석자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는데도 소감 연설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기운 넘치게 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고 행사에 참석한 김종규 이사장이 전했다. 잘 먹고, 잘 자며 공부하고, 많이 나누며 열정적으로 일하는 게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로 보였다. 유 회장은 상황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마음속으로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 정주영 회장의 유명한 명언인 “해 봤어? 해 봐” 그대로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다.

이미지 크게보기 유상옥 코리아나 화장품 회장이 집무실 입구에 있는 조각품을 둘러보며 깊은 상념에 잠겨있다.



■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이 걸어온 길

유상옥 회장은 1933년 충남 청양군 대치면 상갑리 가파마을에서 태어났다. 서울로 유학해 덕수중학교 재학 중 6·25 전쟁이 터지자 고향으로 내려와 청양중학교를 졸업하고 청양농고를 다니다 휴전 후 서울로 다시 유학해 덕수상고와 고려대 상학과(현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59년 동아제약 공채 1기로 입사해 상무이사, 라미화장품 사장을 역임했고, 1988년 코리아나 화장품을 창업했다.

그의 학구열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동아제약 재직 시절 모교인 고려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미국으로 유학해 1981년 유니언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와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공부하는 경영자로서 평생에 걸쳐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不亦說乎兒)’를 실천하고 있다. 고려대, 이화여대, 중앙대 겸임교수로 후학 양성에도 공헌했다.

1998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하고, 2002년 조선일보가 발표한 ‘한국을 움직이는 100대 CEO’로 선정됐다. 2003년에는 한국능률협회가 선정한 ‘2003년도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했고, 2009년 문화훈장 옥관장, 2022년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또 한국수필가협회 수필문학상(2003) 등 여러 문학상을 받았으며 2009년부터 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을 맡아 수필 문학 발전에 기여해 오고 있다.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대한화장품협회 회장과 한국 CEO포럼 공동대표를 역임했으며 국립중앙박물관회 회장, 서초경제인포럼 회장직을 맡은 바 있다. 2003년부터는 서울 강남구 언주로에 50년 넘게 수집한 유물과 미술품을 기반으로 스페이스 씨를 설립해 코리아나 화장박물관과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파리, 런던 등 해외 전시를 통해 문화 융성에 이바지해 문화 CEO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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