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뒤로가기
검색/메뉴
검색
메뉴
방송·연예안진용기자의 그여자 그남자

‘짓밟힌 과거’ 증오 품은 두 남녀… 복수를 위해 ‘핏빛 칼춤’을 추다

안진용 기자
안진용 기자
  • 입력 2023-01-03 09:02
  • 수정 2023-01-03 09:37
댓글 폰트

이미지 크게보기



■ 안진용기자의 그여자 그남자 - ‘더 글로리’의 문동은·주여정

학폭 피해자였던 교사 문동은
가해자 딸 담임선생으로 부임
“사과하지마… 넌 벌 받아야지”

빼어난 외모 · 실력 갖춘 의사
그녀의 상처에서 자신을 보듯
“할게요… 망나니 칼춤 출게요”


이미지 크게보기

여기 한 여자가 있다. 그 여자는 매일 학창시절을 곱씹으며 산다. 여고시절이다. ‘어느 날 여고시절∼ 변치 말자 약속했던 우정의 친구였네.’ 이수미가 부른 ‘여고시절’ 속 학창시절은 낭만이다. 하지만 그 여자의 기억 속 학창시절은 달리 적힌다. “단 하루도 잊어본 적 없어. 어떤 증오는 그리움을 닮아서 멈출 수가 없거든.” 그를 학창시절로 되돌려놓는 감정의 정체는 분노와 증오다. 이런 그 여자를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다. 호감일까? 호기심일까? 웃음 한번 짓지 않는 그 여자가 궁금하다. 하지만 그 여자는 쉬 곁을 내주지 않는다. 그 여자가 짊어진 짐이 가볍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그 짐의 무게를 알게 된 순간, 그 남자는 그 여자를 위해 기꺼이 칼춤을 추겠다며 말한다. “할게요, 망나니.”

◇가난이 죄가 된, 그 여자

‘더 글로리’의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은 끔찍한 학교폭력(학폭)의 피해자다. 무슨 잘못을 해서 모진 일을 당해야 했을까? 가난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에는 괴롭힘의 이유가 된다. 그 여자에게는 가난이 죄가 돼 혹독한 벌을 받았다.

혹자는 묻는다.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느냐?”고. 문동은은 “도와달라” 외쳤다. 하지만 담임 교사는 든든한 부모를 등에 업은 가해자들을 두둔했고, 신고를 받은 경찰은 그런 선생에게 다시금 모든 것을 맡겼다. 가난한 문동은의 엄마는 가해자의 부모가 준 돈을 받고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돈의 논리 앞에 누구 하나 그 여자를 감싸지 않았다.

문동은은 바둑을 배웠다. 그 여자에게 바둑으로 마음의 평정을 찾을 여유 따윈 없었다. 그 여자는 “목적이 분명했고, 상대가 정성껏 지은 집을 빼앗으면 이기는 게임이라니, 아름답더라”라고 그 이유를 말한다. 학폭에 의해 철저히 망가진 그 여자는 성인이 되어 가해자의 정성이 깃든 집을 빼앗기 위한 또 다른 게임을 시작한다. 마치 바둑을 두듯.

기댈 곳 없는 가난한 한 여인이 권력과 재력을 가진 이들을 상대할 힘을 기르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문동은은, 그리고 문동은을 창조한 작가는 영리했다. 그에게 교사라는 직업을 부여했다. 그리고 가해자 딸의 담임이 된다. 부임 첫날 그 여자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앞으로 이 교실에서 다음 세 가지는 아무 힘도 없을 거야. 부모의 직업, 부모의 재력, 부모의 인맥.”

자식을 맡긴 부모는 약자다. 그런 부모조차 곁에 없었던 문동은을 철저히 짓밟던 가해자 역시 자세를 낮춘다. 딸의 담임이 된 그 여자 앞에서 여전히 센 척하지만 “원하는 만큼 돈을 주겠다”며 물러나 주길 원한다. 하지만 그 여자의 목적은 돈이 아니다. 돈은 쓰면 없어지지만, 그의 온몸에 남아 있는 학폭의 흔적은 영원하다. 그래서 그 여자는 사과를 거부한다. “사과하지 마. 사과받자고 10대도, 20대도, 30대도 다 걸었을까? 넌 벌 받아야지. 신이 널 도우면 형벌, 신이 날 도우면 천벌.”

이미지 크게보기 ‘더 글로리’의 주여정은 뻔한 백마 탄 왕자 서사에서 벗어난 인물이다.



◇백마 탄 왕자가 아닌, 그 남자

‘더 글로리’의 집필자는 ‘도깨비’ ‘시크릿 가든’ ‘상속자들’ 등으로 유명한 김은숙 작가다. 김 작가가 창조한 일련의 작품 속 남자 주인공은 백마 탄 왕자의 현신이다. 전지전능한 도깨비이거나, 현대 사회의 전지전능한 유일한 물질인 돈을 잔뜩 쥔 재벌이다. 그들은 각각 죽을 운명을 가진 고아, 가난한 스턴트우먼이나 사회배려자 전형으로 명문 학교에 입학한 여고생의 우산이 돼준다.

하지만 ‘더 글로리’의 주여정(이도현 분)은 전형적인 백마 탄 왕자와 결이 다르다. 빼어난 외모에 실력 있는 성형외과 의사지만 그 남자 역시 상처 입은 존재다. 연쇄살인범에게 아버지를 잃은 후 증오심을 품고 살아간다. 응급실에서 우연히 영양실조 상태인 그 여자를 보고 연민 섞인 호감을 느낀 것은 짙은 그늘에 깔린 그 여자의 얼굴에 자신의 모습이 투영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바둑을 잘 두는 그 남자는 “바둑을 잘 두고 싶지만, 이세돌은 모른다”는 그 여자가 더 궁금해진다. 분명 그 여자가 바둑을 두는 목적은 따로 있다. 가해자 남편의 취미가 바둑이고, 그 남편과 가까워지기 위해 바둑을 두는 그 여자의 속내를 그 남자가 알 턱이 없다. 하지만 그 남자는 꼬치꼬치 묻지 않는다. 그 여자의 과거를 존중하고, 기꺼이 동참한다.

한 발 더 가까워지려는 그 남자를 향해 그 여자는 선을 긋는다. “난 왕자가 아니라 나랑 같이 칼춤 춰줄 망나니가 필요하다”는 그 여자는 온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학폭의 기억을 드러낸다. 그 분노에 공감한 그 남자는, 사람을 살리는 메스를 들던 손으로 이제는 사람을 죽이는 칼을 들기로 결심한다.

◇왜 ‘더 글로리’(영광)일까?

‘더 글로리’는 학폭 피해자의 핏빛 복수극이다. 고2가 되는 딸을 둔 학부모인 김은숙 작가에게 학폭은 가장 가까운 화두였다. 작품을 준비하며 피해자들의 글을 읽은 김 작가는 피해자들이 ‘현실적 보상’보다는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현실적 보상이란 물론 돈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는 돈을 다루는 가해자들의 단상이 명징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여럿 있다. 기상캐스터지만 원고 한 줄 못 쓰는 가해자는 원고를 작성하는 작가를 쓰며 “푼돈으로 방금 내가 쟤 하늘이 됐어”라고 이죽거린다. 네 명의 가해자 사이에도 위계질서는 존재한다. 돈을 가진 자는 위에 군림하며 “놀아주니깐 아직도 친구인 줄 알지?” “우리 이제 고딩 아니야, 우정만으로 우정이 되니?”라고 상대방의 자존심을 짓이긴다. 특히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제일 쉬운 문제라니깐”이라는 그들의 대화는 현실적 보상 따위로 세상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이들의 추악함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김 작가는 “세속에 찌든 저로서는 진심 어린 사과로 얻어지는 게 뭘까 고민했고, 얻는 게 아니라 되찾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면서 “폭력은 인간의 존엄, 명예, 영광을 잃게 한다. 사과를 받아야 비로소 원점이고 거기서 시작이구나 해서 ‘더 글로리’로 제목을 지었다. 피해자들의 원점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이 기사를 친구들과 공유해 보세요.

관련기사
문화일보 주요뉴스
조국 딸 “본인들은 스스로에게, 가족에게 같은 잣대 적용하나”…父 선고일에 김어준 인터뷰
조국 딸 “본인들은 스스로에게, 가족에게 같은 잣대 적용하나”…父 선고일에 김어준 인터뷰 자신의 ‘입시 비리’ 의혹으로 부모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부가 재판을 받기도 한 조 전 장관의 딸 조민(32) 씨는 6일 공개된 인터뷰에서 “저는 떳떳하다.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밝혔다.조 씨는 이날 오전 공개된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의 인터뷰에서 “제가 지난 4년간 ‘조국의 딸’로만 살아왔는데 오늘(지난 3일) 아버지가 실형을 받으시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떳떳하지 못한가’라고 곰곰히 생각해보게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 조 씨는 아버지가 1심에서 실형 선고를 받은 것에 대해 “검찰이나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저희 가족을 지난 4년동안 이렇게 다룬 것들 보면은 정말 가혹했다고 생각한다”며 “과연 본인들은 스스로에게 아니면, 그들의 가족들에게 똑같은 잣대 적용하는지, 그것은 묻고싶다”고 말했다. 조 씨는 입시 비리 의혹 등에 관한 조 전 장관의 1심 재판 선고가 이뤄지던 지난 3일 해당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자 김어준 씨와 인터뷰를 녹화했다. 조 씨는 조 전 장관이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선고를 받고 나온 후 인터뷰 예정을 알렸다고 했다. 조 전 장관은 딸의 인터뷰 계획에 대해 “처음에는 말씀이 좀 없다가 ‘잘 다녀오라’고 했다”고 조 씨는 전했다.조 씨는 이번 인터뷰에서 ‘지난 4년 전 인터뷰 후 어머니(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수감됐다. 그때 심정이 어땠냐’는 질문에 “그때는 정말 정말 힘들었다”며 “제가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기에는 아버지가 장관직을 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조 씨는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당시인 지난 2019년 10월 4일 김 씨가 TBS라디오에서 진행하던 ‘뉴스공장’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한 바 있다 .조 씨는 조 전 장관이 1심 선고를 받기 전 ‘법정 구속’ 가능성에 대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조 씨는 “(지난 3일) 나가기 한 세 시간 전부터 양복 다 입더니 A4용지에 빼곡히 뭔가를 써서 대문에 붙여놨다”며 “몇 가지 이야기 하자면 ‘아버지가 신청한 어머니 면회 이런 것들을 다 취소해야 한다. 그래야 어머니 면회 횟수가 보장된다’, ‘공과금·세금 이런 것 몇월 언제 내라’ 이런 것들(이 쓰여 있었다)”이라고 말했다. 조 씨는 또 “(조 전 장관이) 대문 앞에 책을 이렇게 다 쌓아 놓았다”며 “쌓아 놓은 책 순서대로 10권씩 본인한테 넣어달라 이런 말씀이 적힌 것”이라고 말했다. 조 씨는 또 “아버지까지 만약에 구속되면, 제가 가장이란 생각에 어제 사실 잠을 한숨도 못 잤다”고 덧붙였다.조 씨는 ‘입시 비리’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제 방식대로 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주변에서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의사 생활을 하는 게 어떠냐는 조언은 없었냐’는 질문에 “해외로 가서 다시 시작하라는 분들이 정말 많다”며 “실제로 도와주겠다는 고마운분들도 몇분 계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 씨는 “저는 도망가고 싶지 않다”며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떳떳하다, 친구들이랑 가족들도 다 변함없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가끔 언론 때문에 힘들긴 하다”며 “저는 한국에서 정면으로 제 방식대로 잘 살 것”이라고 덧붙였다.조 씨는 ‘입시 비리’ 논란에 관한 핵심 의혹이었던 ‘가짜 표창장’ 문제에 관해서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표창장으로 의사가 될 수는 없다”며 “그 당시에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에 필요했던 항목들에서 제 점수는 충분했고 그리고 어떤 것들은 넘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생활을 한 지 2년 됐는데, 동료 선배들이 본인의 의사로서 실력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자질이 충분하다고 들었다”며 말했다. 한편 조 씨는 이번 인터뷰에서 맨얼굴을 공개하고 향후에도 공개적으로 의료 관련 봉사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조 씨는 ‘그동안은 조용하게 숨어서 일했던 병원에서는 계속 일하기 힘들텐데’라는 질문에 “그래서 더이상 병원에서 일하지 않기로 했다, 피해주기 싫어서”라며 “저와 관련된 재판이 끝나기 전에는 제 의료지식을 의료봉사에만 사용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이어 “국내여행도 다니고 맛집도 다니고 SNS도 하고, 모두가 하는 평범한 일들을 저도 하려고 한다”며 “더 이상 숨지 않고”라고 말했다. 그는 ‘SNS 주소를 공개해도 되냐’는 질문에도 “공개해도 된다”며 “(댓글로 괴롭히는 사람이) 오셔도 된다. 많은 의견 달라”고 덧붙였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
가장 많이 본 뉴스
안내 버튼

최근 12시간내
가장 많이 본 뉴스

기사 댓글

댓글 영역은 접힘 상태로 기본 제공되며, ON/OFF 버튼을 통해 댓글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본문 글자 크기를 조절하세요!

※ 아래 글자 크기 예시문을 확인하세요.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본인에 알맞은 글자 크기를 설정하세요.

닫기
좋은 기사는 친구들과 공유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