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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100세 시대 名士의 건강법

건강한 삶 원천은 사랑·나눔 실천…하고 싶은 말하며 마음 편안히 가져

박현수 기자
박현수 기자
  • 입력 2022-12-15 09:27
  • 수정 2022-12-2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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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7일 서울 중구 장충동 서울클럽에서 만난 봉두완 한미클럽 명예회장은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한 것은 "하나님의 은총과 하고 싶은 말 거리낌 없이 해가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가진 덕분"이라고 말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 100세 시대 명사의 건강법-봉두완 한미클럽 명예회장

‘더듬이 촌철살인’1호 앵커맨
자서전 ‘앵커맨 삶’초판 완판
2년시한부 삶 선고받고 회복중

야채·샐러드·샌드위치가 主食
짜고 매운 음식은 일절 입 안돼
보청기 사용이 치매 예방 도움


글·사진=박현수 기자

‘더듬이 촌철살인’. 1970년대 대한민국 방송계를 풍미했던 대한민국 1호 앵커맨 봉두완 한미클럽 명예회장을 지칭하는 말이다. 말투가 어눌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을 거쳐 1969년부터 10년간 TBC-TV 저녁종합뉴스 ‘TBC 석간’, 일요특집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 TBC-라디오 ‘뉴스전망대’ 등을 진행하며 거침없는 언변으로 온 국민이 힘들어할 때 국민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19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으로 TBC를 떠난 후 총선에 뛰어들어 11·12대 국회의원과 국회 외무위원장을 지냈다. 정계를 떠난 후에는 성라자로마을돕기 회장, 천주교한민족돕기회장,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등을 맡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일에 앞장서 왔다. 특히 한센병 환우들을 위한 봉사에 매진했다.

그동안 세간에 잊힌 그가 최근 자서전 ‘앵커맨의 삶과 꿈-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를 펴내 건재를 과시하며 주목을 받았다. 초판 2000부가 1개월 만에 모두 팔리고 2쇄를 제작 중이다. 88세 고령에 자서전을 집필할 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있어 비결을 듣기 위해 지난 7일 서울 중구 장충동 서울클럽에서 만났다. 그는 평화의 상징인 빨간 적십자 모자와 빨간 목도리, 분홍색 셔츠를 입고,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밝은 옷차림이 긍정적 에너지를 줬다. 어눌한 말투의 달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적십자 모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손녀(현재 미국 변호사)가 초등학교 다닐 때 외할머니를 따라 스위스 여행을 갔다 사온 선물로 “할아버지 꼭 쓰고 다녀야 해” 하며 손가락 걸고 약속한 이후 어디를 가나 늘 쓰고 다닌다. 지난 2000년 남북적십자 이산가족 상봉 남측 단장으로 평양에 갔을 때 당시 방송으로 진행된 영상을 보고 모자를 사 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덥수룩한 수염은 일부러 기른다. 17년째 겨울 3개월, 여름 2개월 동안 하와이에 머무는데 그곳에서 수염을 기르지 않으면 ‘촌놈’소리 듣는다며 가기 전에 미리 기른다고 했다. 올해는 오는 20일 출국해 내년 2월 말 귀국할 예정이다. 하와이행은 고혈압으로 고생하는 부인을 위해서다. “장인과 손위 처남이 고혈압으로 돌아가셨는데 집안 내력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하와이처럼 따뜻한 기후가 고혈압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전문가의 조언으로 매년 빠짐없이 간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2020년 경기 의왕시 성라자로마을에서‘라자로돕기 50년 특별봉사상’을 받은 기념으로 나환우 가족들과 박현배 야고보 원장 신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봉두완 한미클럽 명예회장 제공

그런데 건강해 보이는 그와의 인터뷰에서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재작년 12월 의사로부터 2년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현재 회복 중이라는 것이다. 무릎에 통증이 심해 수술을 해야 했으나 수술을 하지 않기 위해 약을 복용했는데, 그 약 속에 신장 기능을 떨어뜨리는 성분이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 의사 처방에 따라 “미국 사람처럼 식단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정기적으로 병원 진료를 받아가며 60년 넘게 다니던 서울 을지로 4가 우래옥 냉면과 매운탕 같은 짜고 매운 음식은 일절 입에 대지 않는다. 야채와 샐러드, 샌드위치를 주식(主食)으로 먹고, 주 1회 고기를 섭취한다. 처음엔 식단 관리가 힘들었지만, 이제 제법 적응해 가고 있다. “예수가 부활한 것처럼 죽다 살아났다”며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

미국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손녀가 결혼해 아기를 낳으면 첫 기저귀를 갈아주기로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기 위해 “90세까지는 꼭 살고 싶다”며 삶의 강한 의지를 보였다. “지인들은 내가 아픈 것을 모른다”며 “매우 건강한 것처럼 말과 행동을 해왔는데, 현재 건강상태를 알게 되면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동부이촌동이 집인 봉 명예회장은 매일 아침 걸어서 10분 거리인 한강시민공원에서 한 시간 정도 걷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이어 서울클럽으로 출근 아닌 출근을 한다. 이곳에서 여름에는 수영을 하고, 겨울에는 헬스클럽에서 한 시간 정도 근력을 다지고 골프연습도 한다. 지인들을 만나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인사 다수가 이곳에서 체력관리를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오랫동안 새벽 미사도 다녔으나 건강을 염려하는 주위 권유로 요즘은 나가지 않고 있다. 수첩을 보여줬는데 깨알 같은 글씨로 낮과 밤 일정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보청기도 필요할 때 사용한다면서 “보청기 사용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한 것은 “하나님의 은총과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 거리낌 없이 해가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가진 덕분”이라고 했다. 정계를 떠난 후 성라자로마을돕기 회장을 맡아 50년 넘게 봉사활동을 이어가며 봉사와 사랑을 실천해 온 ‘나눔 인생’이 건강한 삶의 원천으로 보였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2009년 12월 1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09 한미클럽 송년의 밤’ 행사에서 한미클럽 봉두완(왼쪽서 네 번째) 회장, 한나라당 정몽준(두 번째) 대표, 캐슬린 스티븐슨(왼쪽서 세 번째) 주한 미 대사, 유명환(오른쪽서 첫 번째) 외교통상부 장관 등 내빈들이 케익커팅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그는 고 김동길 박사가 생전에 강조했으며 자신도 공감한다며 이 말을 꼭 기사화해 달라고 당부했다.

“6·25전쟁 이후 나라가 온통 쑥대밭이 되어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어서 대부분 국민이 초근목피로 하루하루 버텼던 게 엊그제 일 같은데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된 것은 세 사람의 위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왕년의 ‘TBC 뉴스전망대에서 봉두완이 바라본 오늘의 세계’에 대해 촌철살인의 멘트를 부탁했다. 그러자 봉 명예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 정치인들, 이젠 우리 국민은 안중에도 없습니까? 제발 정신 좀 차리시요.”

■ 봉두완 한미클럽 명예회장이 걸어온 길

봉두완 회장은 1934년 황해도 수안군에서 태어났다. 경복고와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고 아메리칸대학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59년 동화통신 정치부 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디뎠고, 이어 1962년부터 6년간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1969년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동양방송(TBC) 논평위원을 지내며 TBC-TV 저녁종합뉴스 ‘TBC 석간’, 일요특집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 TBC-라디오 ‘뉴스전망대’ 등을 진행했다. “10년 동안 마이크 잡고 떠들었던 그때가 언론인의 삶 가운데 가장 보람있고, 신나고 재미있었던 황금기였다”고 회고했다. 이 기간 제28차 유엔총회 한국대표와 관훈클럽 총무도 지냈다.

19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으로 TBC를 떠난 후, 정계에 진출해 제11대 국회의원 선거(민주정의당·서울 용산·마포)에서 인기 영화배우 신성일과의 대결에서 16만 표를 획득해 전국 최다 득표로 당선된 데 이어 12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제11·12대 국회 외무위원장과 한·캐나다의원 친선협회 회장도 지냈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봉두완 명예회장 자서전 ‘앵커맨의 삶과 꿈-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표지.

정계를 떠난 이후 경기 의왕시에 있는 한센병 환자 정착촌인 성라자로마을에 들어가 성라자로마을돕기 회장을 맡으면서 50년 넘게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광운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서울태권도협회 회장, 바른사회시민회의 의장, 미국 아메리칸대 한국동문회 회장, 생활개혁실천협의회 의장, 천주교 북한선교후원회장, 천주교 서울대교구 한민족복음화추진회장, 세계가톨릭꾸르실료협의회 의장,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대한적십자사 봉사회전국협의회 의장, 천주교한민족돕기회장 등을 맡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일에 앞장섰다. 90세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도 끊임없이 나눔과 봉사의 삶을 살고 있다. 현재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도 맡고 있다.

한미클럽은 미국 특파원 출신 전·현직 언론인들 모임으로 한국과 미국 관계를 돈독히 하는데 일조한다는 취지에서 2006년 설립됐다.

저서로 ‘워싱턴 정가’,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 ‘뉴스전망대’,‘정치전망대’, ‘봉두완의 목소리’, ‘봉두완의 세상 읽기’ 등이 있다.

상훈은 대한민국 방송대상(해설부문), 대한적십자 특별봉사상(은성)훈장, 성라자로마을(한센인)돕기 50년 특별봉사상을 수상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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