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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나윤석 기자의 고전을 묻다

“내 영혼의 피 냄새 같은 ‘허무’… 더불어 살면 삶이 더 평안해져”

나윤석 기자
나윤석 기자
  • 입력 2022-12-13 09:09
  • 수정 2022-12-2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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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김영민 서울대 교수의 신간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중국 문인 소동파의 11세기 산문 ‘적벽부’를 토대로 허무감에 휩싸여도 비참해지지 않는 삶의 가능성을 사유한다. 김영민 교수 제공



■ 나윤석 기자의 고전을 묻다
- 김영민 서울대 교수 신작에 영감 준 소동파의 ‘적벽부’

“적벽부, 한문 산문 중 가장 유명
새 에세이 ‘인생의 허무를…’ 이
이 작품의 ‘유연한 주석’ 됐으면

소동파의 허무는 긍정적인 감정
필멸자 인간의 숙명이라 생각땐
세속 가치 · 명예 욕심 떨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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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상사 연구자이자 칼럼니스트인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최근 출간한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사회평론)는 불멸을 향한 꿈 앞에 번번이 좌절하는 인간이 허무와 더불어 사는 삶을 모색한 에세이다. 김 교수는 중국 북송(北宋) 때
문인인 소동파가 쓴‘적벽부’에서 영감을 얻었다. 영화·그림·문학 등 동서고금의 다양한 텍스트를 가로지르면서도 서문에서 “‘적벽부’에 대한 유연한 주석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힌 이유다. 책 부록에는 김 교수가 직접 우리말로 번역한 ‘적벽부’ 전문이 실려 있다. 김 교수는 이달 중 ‘적벽부’에 대한 상세한 해설과 300점이 넘는 도판을 담은 책도 출간할 계획이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사회평론에서 김 교수를 만나 ‘필멸자’의 허무한 숙명을 받아들이되 자유롭고 충만한 생을 가꾸는 길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적벽부’는 어떤 작품인가.

“소동파가 유배 시절 양쯔(揚子)강을 유람하며 지은 글이다. 한문으로 쓰인 글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산문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좋은 고전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성격을 지니는데, ‘적벽부’ 역시 인류의 보편적 주제인 허무를 다루는 동시에 당대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코멘트를 담았다.”

11세기에 쓰인 ‘적벽부’는 어느 가을밤을 배경으로 삼는다. 작중 화자인 소동파 선생은 ‘손님’과 함께 맑은 바람이 불어오는 강물에 배를 띄어놓고 술잔을 기울인다. 손님은 ‘취기 어린 즐거움’이 달아오른 순간 문득 삶의 무상함과 허무함을 절감한다. 한때 ‘일세의 영웅’이었다 몰락한 조조의 운명을 떠올린 그는 “인생이 잠깐임을 슬퍼하고 장강이 무궁함을 부러워하네”라고 읊조린다.

이에 소동파는 “불변의 관점에서 보자면 만물과 나는 모두 다함이 없으니, 달리 무엇을 부러워하리오?”라며 “밝은 달은 귀가 취하면 소리가 되고, 눈이 마주하면 풍경이 되오. (중략) 이것이야말로 조물주의 무진장(고갈되지 않는 창고)이니,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길 바이외다”라는 답을 들려준다. ‘적벽부’는 이로부터 깨달음을 얻은 손님이 소동파와 함께 동쪽에서 날이 밝아오는 것도 잊은 채 순간의 향취를 만끽하는 장면을 비추며 끝난다. 김 교수는 “허무를 느끼다 평안의 상태에 이르는 결말은 일종의 해피엔딩”이라며 “‘허무하니까 인간이 비참하네’가 아니라 ‘허무해도 삶은 향유할 만하다’는 긍정이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적벽부’에서 출발하는 산문집을 기획한 이유는.

“우리 삶의 기본 조건인 허무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짐승과 구별되는 인간은 ‘생식’과 ‘번식’ 이상의 과업을 바란다. 하지만 언젠가는 죽는 존재, 즉 ‘필멸자’인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이 바람을 완벽히 구현할 수 없다. 책에 쓴 문장처럼 ‘허무는 영혼의 피 냄새’와 같은 것이고, 영혼이 있는 한 허무는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허무는 인간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일 뿐 아니라 삶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감정인가.

“그렇다. 인간은 허무를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진실을 직면하면 여러 세속적 가치나 명예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 ‘완벽한 정답’이 있는 것처럼 우리를 유혹하는 사이비 종교에도 덜 휘둘릴 수 있다. ‘허무하니까 다 포기하고 막살자’라는 시각은 소동파가 전하는 메시지와는 상극이다.”

―‘적벽부’에서 정치 상황을 비판한 대목은 무엇인가.

“소동파는 ‘무릇 천지간의 사물은 각기 주인이 있소. 진정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터럭 하나라도 취하면 아니 되오’ 같은 문장을 통해 정부의 권력 확대를 꼬집는다. 11세기 북송에서 가장 유력했던 정치인은 왕안석이다. 그는 세금을 많이 거둬 정부 힘을 키우는 데 주안점을 뒀다. 획일적인 ‘공무원 시험’을 통해 입맛에 맞는 인적 자원을 선발한 제도 역시 왕안석의 뜻이 담긴 방침이었다. 하지만 자유로운 삶의 가치를 강조한 소동파는 정부의 힘이 커져도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영역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적벽부’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국가가 일률적 가치관을 주입하는 것에 대한 소동파의 비판은 ‘경쟁이 일상’인 한국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소동파는 동아시아 지식인 가운데 다양성을 특히 중시한 사람인데, 한국처럼 하나의 가치나 기준으로 수렴되는 획일적 사회도 많지 않다. 어느 정도의 경쟁은 불가피하지만, 경쟁이 너무 격화되면 삶의 모든 영역을 ‘제로섬 원리’가 작동하는 곳으로 보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다원적이며 자원 역시 다원적이다. ‘적벽부’에 나오는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 사이의 밝은 달’은 전형적으로 제로섬 경쟁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바람을 쐬고 달을 쳐다봐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늘리기 힘들다면, 사람들의 목표와 취향을 다원화해 경쟁을 감소시키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에필로그 제목은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위하여’다. 김 교수는 이 글에서 자신을 ‘산책 중독자’라고 명명한다. 그에게 산책은 쇠퇴해가는 심장과 폐를 활성화하는 ‘구원’이자 글감을 얻는 ‘생업’이다. 하지만 어떤 목적을 갖고 산책에 나서는 건 아니다. 그저 목표를 달성할 수 없어 오는 초조함도, 목표를 달성했기에 오는 허탈감도 없이 걷는 순간을 즐길 뿐이다.

김 교수에게 “산책하듯 인생에서도 ‘순간의 기쁨’을 만끽하려면 ‘거창한 목적’은 세우지 않는 편이 좋을까”라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모두의 삶에 적용되는 ‘단일한’ 목표 따위는 없다. 누군가 그런 것을 알려주겠다고 나서면 조심해야 한다. 다만 ‘주입된 목표’가 아닌 ‘각자 발견한 목표’는 필요하다. 그 목표가 꼭 장기적일 필요는 없다. 단기적인 목표도 의미 없는 루틴으로 채워진 일상에 리듬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는 ‘인생에서 아무런 위험도 감수하지 않은 자가 패배자’라고 말했는데, 나만의 목표가 있다면 허무와 더불어 살면서도 도전하며 위험을 감수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 소동파의 ‘적벽부’. 대만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이 소장하고 있다.




■ 소동파, 글 · 그림 실력 탁월… 동파육 레시피 개발한 ‘송나라 르네상스인’

이미지 크게보기 원나라 화가 조맹부가 그린 소동파 인물화. 대만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이 소장하고 있다.



김영민 교수는 소동파를 “다방면에 걸쳐 재능을 발휘한 르네상스인”이라고 정의한다. 실제로 소동파는 탁월한 글재주와 그림 실력을 갖춘 예술가인 동시에 정치가·행정가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또한 달짝지근한 돼지고기에 채소를 곁들인 ‘동파육’의 레시피를 개발했다고 전해질 만큼 요리에도 발군이었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는 ‘적벽부’ 외에 소동파의 사상과 철학을 잘 보여주는 글이 여러 편 실려 있다. 우선 ‘제서림벽’은 소동파가 1084년 봄 장시(江西)성에 있는 여산을 다녀온 뒤 쓴 글이다. 그는 이 글에서 ‘여산을 정복했다!’고 외치는 대신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음에 따라 모습이 각기 다르네./ 여산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는 건,/ 내가 여산 속에 있기 때문이지’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전모를 알기 어려운 삶을 드러내는 글이라고 해석한다. 각자 본 것에 기초해 이름 짓고, 보지 못한 바에 대해 억측을 일삼는 이들에게 미약한 인간의 한계를 일깨운다는 것이다.

‘보회당기’는 집착과 초연에 대한 생각거리를 남기는 산문이다. 김 교수의 설명처럼 무언가를 제대로 좋아하는 일은 어렵다. 너무 좋아하면 집착이 생기고, 집착은 욕심과 상처를 낳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좋아해도, 좋아하지 않아도 문제지만 소동파는 ‘일단 좋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인정한다. ‘보회당기’에 나오는 ‘뜻을 대상에 깃들이면 아무리 하찮은 대상이라도 즐거움이 될 수 있고, 아무리 대단한 대상이라도 병통이 될 수 없다’는 문장은 세속의 쾌락에 대한 소동파의 흔쾌한 긍정을 담고 있다. 다만 그는 대상에 뜻을 깃들이되 ‘뜻을 대상에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무언가를 좋아해도 그 대상에 함몰되지는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경직되지 않는 유연한 마음이다. 마음의 중심이 있다면 기꺼이 좋아하는 대상을 받아들이고, 또 그 대상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말한다. “인생을 즐기고 싶은가. 그렇다면 좋아하는 대상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환멸을 피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좋아하는 대상에 파묻히지 말아야 한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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