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한 食·醫·藥, 국민건강 일군다 - 식약처 ‘국산백신’ 적극 지원

코로나 사태때 겪은 ‘백신대란’
‘자국백신’의 중요성 느낀 계기

2년전 허가전담심사팀 꾸리고
올해는 제품화전략지원단 출범

SK바사 ‘스카이코비원’ 탄생
mRNA 백신 플랫폼 개발 박차


백신학 교과서에서 2020년은 역사적인 해로 기록된다. 백신은 에드워드 제너와 루이 파스퇴르가 썼던 약독화 백신부터 불활화 백신, 단백질 재조합 백신, DNA 백신,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까지 220년 동안 천천히 진화했다. mRNA 백신은 1970년대 미국 필 샤프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기초 원리를 개발했지만 상용화 속도는 더뎠다.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터지자 의과학자들은 ‘원인 미상’이었던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유례 없는 규모로 연구에 뛰어들었다. 몇 달 만에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이루는 유전자 구조를 낱낱이 알아냈으며 어떤 경로로 감염시키는지도 파악했다. 이를 토대로 글로벌 제약사들은 앞다퉈 백신 개발 경쟁에 나섰다. 그 결과 약 1년 만에 코로나19 백신이 세상에 나왔다.

의료계에 따르면 백신 개발은 보통 10∼20년이 걸린다. 백신 개발은 비임상, 임상 1상, 2상, 3상 등 과정을 거쳐야 해 짧게 잡아도 최소 5년 이상 걸린다. 개발 비용만 수조 원에 달하고 성공 확률도 매우 낮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은 교과서의 모든 원칙을 뒤엎었다. 현존하는 모든 백신 기술과 개발 시스템이 동원됐고, 개발·생산·배분·접종까지 한 번에 이뤄졌다. 이에 백신 연구자들은 코로나19 백신을 제너와 파스퇴르의 백신과 더불어 3대 백신 개발로 꼽기도 한다.

막상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자 ‘백신 주권’을 가진 나라와 가지지 못한 나라에서는 희비가 엇갈렸다. 영국과 미국은 2020년 12월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백신 접종에 나섰지만 한국을 비롯한 대다수 국가는 백신을 구하는 데 사활을 걸어야만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정부 부처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더라도 백신 주권을 확고하게 다질 수 있도록 백신 개발을 전면 지원하기로 했다. 신종감염병 위기가 5∼6년 주기로 반복되는 만큼 필수의약품 확보가 ‘보건 안보’와 직결된다는 점을 절감해서다.

◇백신 주권 강화 박차 = 식약처는 지난 6월 29일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한 ‘스카이코비원’에 국내 품목허가를 내줬다.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한국도 코로나19 백신 보유국 대열에 올랐다. 식약처는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국산 코로나19 백신이 빠르게 개발될 수 있도록 ‘우리백신 프로젝트’를 가동해 체계적으로 지원했다. 2020년 9월부터 코로나19 백신·치료제의 개발과 제품화를 지원하기 위해 심사 경험이 풍부한 심사자로 구성된 ‘허가전담심사팀’을 꾸렸다. 비임상·임상·품질 단계별 맞춤형 상담과 사전 검토도 실시했다. 제품 개발의 핵심 단계이자 대규모 환자 모집이 필요한 3상 임상시험이 과학적이고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면역원성 비교임상시험’ 방식을 선제적으로 도입했다. 식약처는 면역원성 비교임상 방식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규제기관 간 회의에서 주도적으로 논의를 이끌어냈다.

스카이코비원은 8월 말 출하돼 9월 5일 코로나19 백신 1·2차 기초접종에 투입됐다. 독감 백신에 활용되는 단백질 재조합 방식으로 개발돼 mRNA 백신보다 이상반응이 적은 편이었다. 스카이코비원은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이란 이정표를 세웠지만 시장 성과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와 의료계는 국산 1호 백신 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이 앞으로 다른 백신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빛의 속도로 코로나19 백신을 내놓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에볼라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실패했던 백신 기술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서는 주류 기술인 mRNA 백신 플랫폼 개발이란 큰 과제도 남겨두고 있다.

◇백신·제약 연구·개발(R&D) 전방위 지원 = 식약처는 새로운 의약품을 글로벌 시장에 빠르게 진입시키기 위한 ‘제품화전략지원단’을 4월 말 출범시켰다. 신종감염병 재난 상황 등 공중보건위기에서는 의약품 제품화를 속도감 있게 지원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과 보건 안보와 직결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원단은 의약품·의료기기 등 제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허가 이후 제품화까지 전 단계를 과학적으로 지원하는 전담 조직이다. 지원단으로 상담, 임상심사, 허가심사 기능을 통합해 지원체계를 총괄하고 있다. 연구·개발(R&D), 임상시험, 시판허가 등 개발단계별 연계성도 전략적으로 강화했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장 직속 조직인 지원단은 △제품화지원팀 △혁신제품심사팀 △임상심사팀으로 구성된다.

지원대상 제품은 공공성이 높은 ‘공중보건 위기대응 의약품’ ‘희귀의약품’이나 산업 가치가 높은 ‘국내 개발 신약’ ‘혁신의료기기’ ‘신기능성 식품 원료’ 등이다.

제품화지원팀은 품질·비임상·임상 등 분야별 심층 상담을 제공하는 등 개발 계획을 돕는다. 인허가 심사자료 준비가 어려운 신기술·신개념 제품에 대해서는 각 심사부서와 연계해 규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혁신제품심사팀은 신속심사 대상 제품을 개발단계부터 지정하고 최종 개발 제품의 허가심사 기간 단축을 위해 ‘수시동반심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수시동반심사는 유망한 치료제에 대해 최종 허가단계가 아닌 임상 등 진행단계 중간마다 수시로 자료를 제출받아 검토하는 프로그램이다. 임상심사팀은 비임상·임상자료, 임상시험계획서를 심사한다. 독성·약리·임상시험 심사와 심층 상담을 지원해 임상시험계획을 상세히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1월 10일 전남 화순군 화순백신특구에 문을 연 백신안전기술지원센터 모습. 본부동은 지상 2층, 총면적 4335㎡ 규모이며, 교육동은 지상 3층, 4800㎡ 규모로 운영된다. 뉴시스

검체분석부터 인증지원까지… ‘K-백신’ 해외수출 발판

■ 백신안전기술지원센터 개소
신약 인허가 난관도 해소 기대

백신안전기술지원센터가 지난 11월 문 열면서 국산 백신 개발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백신안전기술지원센터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0년 6월 설립 허가한 재단법인이다. 총 사업비 263억 원(국비 193억 원, 지방비 70억 원)을 투입해 지상 2층, 총면적 4335㎡(약 1300평) 규모로 세워졌다.

이곳은 국내 백신 개발에 필요한 전주기 기술 지원 업무를 맡는다. 주요 업무는 △백신 임상시험 검체분석 지원 △백신 품질검사 △백신 제품화를 위한 기술정보지원 △국가 셀뱅크 구축 등이다. 업계는 이 같은 지원이 제약기업의 백신 개발과 해외 수출을 돕는 발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백신 인증 지원에도 나선다. 그동안 국내 의약품 규제과학 전문인력이 부족해 제약기업들이 겪고 있는 신약개발과 각종 인허가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인력양성 사업비로 380억 원을 확보해 백신인증 교육동을 지난 10월 착공했다. 내년까지 시설을 구축하고 이듬해부터 시범교육을 시작해 매년 300명 정도로 규제과학 전문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필수 백신의 안정적 공급과 신종 감염병 발생에 대비한 체계적 관리체계 마련을 통해 국가적 보건 위기에 신속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