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인천 신송중 학생들이 지난 5월 29일 교내 공간 ‘에이블 실’에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 인천 송도 신송중 이지혜 교사의 ‘미술 실험’

‘미술을 잘하기보다 사랑하자’
평가 틀에 맞춘 수업방식 탈피

이케아 설계 프로그램 활용해
원하는 대로 교내 특별실 꾸며

코로나 시기 메타버스서 축제
스스로 준비 · 진행 생생한 경험

“경쟁과 점수라는 부담감 없이
창작과 협업 느끼게 하고 싶어”

‘학생들이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해 기획한 축제, 공간설계 프로그램으로 디자인한 교실….’

인천 송도 신송중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이지혜(28) 교사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 중 하나는 “학생들이 자기 뜻대로 자유롭게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규범적인 삶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학교 교육과정 속에서 아이들이 평가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손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미술을 즐길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는 학생들이 온라인 축제를 하나부터 열까지 준비·진행하게 했고, 학교 공간 혁신 사업을 통해 교내 특별실을 직접 설계해보도록 했다.

지난해 12월 29일 신송중 전교생은 각반 교실에서 메타버스 플랫폼인 개더타운의 ‘신송제(축제)’ 링크에 접속했다.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오프라인 축제를 열기 어렵게 되자, 학생들이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가상의 공간을 직접 설계해 그 안에서 영상 콘테스트와 공연제를 연 것이다. 학생들은 방탈출·미로찾기 게임, OX퀴즈, 선생님 캐릭터와 사진찍기 등 다양한 이벤트까지 개최해 어느 때보다 특별하고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을 만들어냈다. 이 교사는 “메타버스 축제를 함께 기획한 6명의 학생이 하나부터 열까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과정이 아직도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다”며 “한 학생은 이번 축제 기획을 통해 진로를 구체적으로 계획하게 됐다고 해서 정말 감사하고 뿌듯했다”고 회고했다.

신송중의 자랑인 ‘에이블 실(able 실)’도 학생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 교사는 지난해 학교 공간 혁신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건축가, 교사, 학생이 함께 디자인하는 공간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미술수업과 연계해 학생들이 이케아 공간설계 프로그램으로 공간을 디자인해보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이곳의 이름도 학생들이 공모해서 직접 정했다. 이 교사는 “우리 학교에 있는 에이블 실은 모두에게 언제나 개방되어있는 텅 빈 공간”이라며 “이 공간이 학교와 학생들에게 작은 숨통을 트이게 해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벽이나 교실은 당연하고 계단까지도 각종 격언과 속담으로 가득 차 있는 학교 공간에서, 에이블 실만큼은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학생들이 직접 생각하고 경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 교사의 교육 철학에서 비롯됐다. 이 교사는 “경쟁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교육받은 우리는 정해진 시간 내에 완성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서 눈에 바로 보이는 능숙한 기술을 연마하기 바쁘다”며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경험이고, 경험이 있어야 힘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혼자가 아닌 동료와 함께라면 얼마나 더 근사할 수 있는지도 학생들이 경험을 통해 직접 느끼게 되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사실 이 교사는 미술 교사로 처음 부임했을 당시 아이들에게 정해진 기준과 틀에 맞춰 수업하는 자기 자신을 보며 부족함을 느꼈다고 한다. “형태·비율이 맞는지, 얼마나 성의있게 꽉 채워 그렸는지를 평가하는 제 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 이 교사의 뒤늦은 고백이다. 그러던 중 조형예술가, 문화예술교육기획가 등으로 활동중인 ‘제롬(Jerome)’ 작가의 강연을 접한 뒤 미술을 잘하기보다 사랑하는 데 무게를 두게 되면서 스스로의 수업에도 자신감을 갖게 됐다. 당시 제롬의 드로잉 클래스와 드로잉 워크숍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과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아져 여러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고 한다. 이 교사의 마음가짐이 달라지자 현장의 아이들도 반응했다. 이 교사는 “평가자를 의식하며 선뜻 본인을 드러내지 못했던 아이들이 손 가는 대로 막 그릴 때, 누군가가 보면 휘갈긴 낙서에 불과하겠지만 씩 웃으며 ‘이런 게 예술이지’라고 말하는 학생들을 볼 때, 교사인 제 마음까지 시원해진다”며 웃었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