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대외 균형 보여주는 경상수지까지 적자 전환
지속될 경우 대외 의존도 높은 한국 경제 수습 어려워
"경제계뿐 아니라 노·사·정, 여·야 정치권 모두 힘 모을 때"

한국 경제의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부터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나서서 "제2의 외환위기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별로 귀담아듣는 사람은 없다. 현재의 경제 위기가 주로 대외적인 요인에 의해 촉발됐기 때문에 정부가 아무리 애를 써도 ‘약발’이 먹히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가는 정책 당국자가 경제 주체의 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하는 말을 탓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을 생각해야 할 때(Thinking Unthinkable)’는 말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현재 글로벌 경제위기의 연원(淵源)

현재 글로벌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근원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돈을 풀었기 때문이다. 정책금리(또는 기준금리) 조정을 통한 경기 부양에 실패하자,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전 세계 주요국들은 소위 ‘양적완화(量的緩和·Quantitative Easing)’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에 직접 막대한 규모의 돈을 풀었다.

양적완화라고 하니까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연원을 따져보면 경제학에서 ‘족보’를 찾기 어려운 정책이다. 양적완화의 출발점은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의 늪에 빠져서 아무리 해도 경제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직접 돈 풀기에 나서면서 생긴 용어다. 오늘날 경제 용어 대부분이 서양에서 출발해서 동양으로 넘어왔지만, 양적완화는 드물게 동양에서 만든 용어가 서양으로 넘어간 사례다. 양적완화의 영어 ‘Quantitative Easing(QE)’은 일본의 한자 ‘量的緩和’를 그대로 영어로 직역한 것이다.

그러나 양적완화의 ‘종주국’인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 경제에서 양적완화에서 탈출에 성공한 나라는 아직 없다. 양적완화에서 탈출하려면 양적긴축(Quantitative Tightening·QT)와 정책금리 인상을 통해 시중에 풀린 유동성(돈)을 줄이면서도 경제가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관리가 가능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성공적으로 양적완화에서 탈출한 ‘선례(先例)’는 전무한 실정이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통화 당국이 진행하는 일이 바로 양적완화에서 벗어나려는 것인데, 아직 양적완화 탈출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과거의 데이터나 경험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세계 경제는 캄캄한 밤길을 등불조차 없이 걸어가고 있는 셈이다.

◇경제 위기 현실화한 한국 경제

경제학 족보에서도 찾기 어려운 양적완화라는 무리한 정책의 결과는 필연적으로 물가 폭등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시중에 천문학적인 돈이 풀리면 물가를 자극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EU 등 세계 주요국 대부분이 비정상적인 통화 정책인 양적완화를 추진하면서 전 세계에 풀린 유동성도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로 증가했다. 양적완화는 당장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이제 그것이 불러올 후과(後果·뒤에 나타나는 좋지 못한 결과)를 치를 시간이 닥쳐온 것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 경제에도 공짜가 없다. 현재 미국 등 세계 경제는 양적완화 등에 따른 과잉 유동성을 제어하기 위한 양적긴축이 환율의 급변동을 불러오고, 경기 침체를 촉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가장 타격을 많이 입는 카테고리(범주)에 속할 수밖에 없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의 침체와 중국 경제가 급강화하는 상황은 한국의 수출에 타격을 주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라는 돌발변수로 국제유가까지 폭등하면서 최근 우리나라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동안은 무역수지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해도 코로나19 등으로 해외여행 등이 막히면서 서비스수지 적자 규모가 줄고, 해외 투자 소득이 늘면서 본원소득 수지가 큰 폭의 흑자를 기록하면서 경상수지가 흑자를 기록해왔다. 그러나 올해 8월 마침내 우리나라 경상수지가 30억491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하면서 한국 경제에 ‘예고된 비상등’이 켜졌다.

이미지 크게보기. <자료: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

경상수지는 한국 경제의 대외 균형 상태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는 것은 한국 경제의 대외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한국 경제의 대내 균형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는 재정수지다. 우리나라의 재정수지는 급증하는 복지 수요와 문재인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용 등으로 무너진 지 오래다.

우리나라 관리재정수지(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4대 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수치)는 문재인 정부가 등장한 2017년 18조5000억 원 적자에서 2018년(-10조6000억 원), 2019년(-54조4000억 원), 2020년(-112조 원), 2021년(-90조6000억 원), 올해(2차 추가경정예산 기준 정부 전망치·-110조8000억 원)까지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19 핑계를 대고 있지만, 사실은 문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용이 한국 경제의 대내 균형을 무너뜨리는 데 가속도를 붙인 것이다.

경제의 대내 균형을 보여주는 재정수지가 천문학적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속된 말로 ‘수출로 먹고사는’ 국가의 수출 증가율이 급락하고 무역수지에 이어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전환한 상황을 ‘위기’라고 얘기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일부에서는 아직 위기를 피부로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시간문제일 뿐 결국 모든 국민이 조만간 위기를 실감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외환위기 시절처럼 모두 힘 모아야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 위기의 원인 ‘해외발(發)’이라는 점이다. 세계 경제가 침체 위기에 빠지면서 우리나라 물건을 과거보다 덜 사는 데 우리나라 정부가 나서서 강제로 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요인으로 국제유가가 폭등하는 데 한국 정부가 인위적으로 국제유가를 낮출 방법도 없다. 물론 정부가 각종 수출 지원과 경상수지 개선 대책 등을 그동안 내놨고, 앞으로도 내놓겠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기업들은 정부보다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겠지만, 위기에 빠진 경제를 정상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국민(경제주체) 모두 힘을 모으는 수밖에 없다. 일정 부분 국민 모두 고통을 분담하는 것도 불가피하다. 예컨대 금리가 급등한다고 정부가 재정(국민 세금)으로 모든 사람의 빚을 탕감해줄 수도 없고, 탕감해줘서도 안 된다. 정부가 ‘정치적인 결정’을 내릴 수도 있지만, 결국 그 대가는 국민 모두 몇십 배 혹독하게 치를 수밖에 없다. 다시 한 번, 경제에는 공짜가 없다.

기업과 노동자 등 평소 대척점(對蹠點)에 서 있던 집단도 한 발씩 양보하고 타협해야 한다. 미친 것처럼 대립하는 여·야 정치권도 조속한 시일 내에 타협할 것은 타협하고, 경쟁할 것은 경쟁하는 성숙한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외환위기 시절 노·사·정이 한 발씩 양보하고, ‘금 모으기 운동’을 했던 심정으로 협력하지 않으면 현재의 경제 위기는 앞으로 모든 경제 주체에게 더욱 큰 타격을 입힐 것이다.

올해 연말~내년 초 회사채 금리가 8~10%까지 오르고,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그동안 능력보다 과도하게 빚을 냈던 경제 주체는 스스로 자산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 노사 모두 힘을 모아야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조해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