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신달자(가운데) 시인이 무산선원에서 권영민(왼쪽) 서울대 명예교수, 선일 스님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천주교’신달자 시인, 무산선원 ‘詩 낭독회’ 제안한 까닭

“남편 떠나고 우울증 겪던 시절
무산스님 격려에 큰 감동 받아”

삼청각 옆에 문 연 ‘무산선원’
만해축전 만든 스님 뜻 기려
매월 마지막주 詩 낭독회 개최

종교 넘어 문화예술공간 활용
각박한 시대 위로의 場 기대

글·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무산(霧山) 스님은 제 인생에 큰 감동을 줬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은 그분의 정신을 아주 조금이나마 받드는 것이지요.”

신달자 시인은 ‘만해·무산 기념 시 낭독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일 서울 성북동 무산선원에서 열리는 낭독회는 이름 그대로 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 선사와 무산 조오현(1932∼2018) 대종사의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스님의 제자들이 이끄는 설악만해사상실천사상선양회가 서울 한복판에 무산선원을 개원한 것을 계기로 신 시인이 제안해 성사됐다.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오후 6시 30분에 정례적으로 열기로 했다.

첫 번째 낭송회에서는 안숙선 명창이 기념 공연을 한 후 정호승·도종환 시인이 자작시를 읊는다. 무산 스님과 특별히 가까웠던 이근배·오세영 등 원로 시인도 낭송을 한다. 신 시인은 “특별 초대 손님으로 조정래 소설가,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참여한다”고 전했다. 주 의원은 불자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국회정각회 회장을 맡고 있다. 만해대상을 받은 바 있는 조 작가는 부친(조종현)이 시조시인이자 승려였기에 불가와 인연이 깊다.

신 시인은 한국가톨릭문인회장을 했을 정도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 그런 그가 무산 스님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거리의 암자’라는 시 덕분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신달자(오른쪽) 시인이 지난 2018년 3월 백담사에서 무산 스님과 다담을 나누고 있다. 스님이 입적하기 70여 일 전이다. 신 시인 제공

“지난 2000년 남편이 세상을 뜨고 우울증이 심하니 의사가 등산을 권해서 대모산 근처 수서로 이사를 갔습니다. 수서역 주변에 포장마차가 많았는데, 거기 가서 잘하지도 못하는 술을 한잔씩 먹곤 했습니다. 그때 포장마차를 소재로 ‘거리의 암자’를 썼습니다. 백담사에 계셨던 스님이 저를 찾는다기에 만났는데, 여러 스님들 앞에서 ‘여러분들 3개월 수행한 것보다 이 시 한 편이 더 불경에 가깝다’고 하셨습니다. 시가 잘되지 않아서 절망하고 있던 저를 그 말씀이 살렸습니다.”

강원 대표 사찰인 신흥사와 백담사 조실(祖室)이었던 무산 스님은 호방한 언행으로 ‘무애(無碍)도인’으로 불렸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만해 스님의 사상을 잇는 일에 힘써 만해마을과 만해축전, 만해대상을 만들었다.

시조의 대가이기도 했던 스님은 문화예술인들과의 교류를 즐기고 남모르게 후원을 했다. 신 시인은 “문단 곳곳 음지에서 겨우 눈 뜨고 살아가는 문인들의 손을 잡아주신 분”이라고 표현했다. 가톨릭문인회가 사무실을 마련하기 위한 바자회를 할 때도 그림 한 점을 기꺼이 희사했다.

스님은 성당에 가서 설법을 할 정도로 종교 간 화합을 지향했다. 무산선원의 불탑 옆에 2m 크기의 성모상을 세우는 것은 그런 뜻을 기리기 위해서다. 무산선원 주지인 선일 스님은 “불자만 아니라 모든 분이 편하게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선일 스님은 무산 스님의 제자로, 사형(師兄)인 삼조 스님 등과 함께 선원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그는 “경계를 넘어서 상생과 화합을 강조한 큰스님의 정신을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 성북동 삼청각 옆 계곡에 자리한 무산선원은 약 661㎡(200평)의 규모로 강당과 법당, 살림집인 요사채로 구성돼 있다. 수행용 선방뿐만 아니라 시낭송회, 음악회, 전시가 어우러지는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한다.

선원 곳곳에 무산 스님의 그림과 글씨가 있다. 스스로 여기(餘技)로 여기며 자유스러운 필치로 그린 그림엔 인간과 만물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담겨 있다. 신 시인은 스님의 글씨(雲門廚庫三門·운문주고삼문, 일상 속 수행이 중요하다는 뜻) 아래에 자리한 그림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너와 나, 우리가 더불어 있는 모습으로 인간의 화합이 무언가를 보여줍니다. 외로운 사람도, 슬픈 사람도, 굶은 사람도 없는….”

신 시인과 함께 무산선원의 문화모임을 이끄는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는 “2005년 만해축전의 하나였던 세계평화시인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으며 무산 스님과의 인연이 시작됐다”면서 “스님을 통해 우리 문화 전통인 시조의 중요성을 새삼 자각했다”고 했다. 그는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살기 어려워지는데 무산선원의 시낭송회 등을 통해 서로 위로를 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