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워인터뷰 -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미지 크게보기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예술·문화·스포츠 분야의 사람들을 존경한다면서 현장에서 그들과 대화하며 정책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김호웅 기자

문화예술에서 ‘자유’ 독보적
창의력·혁신 구현 적극 지원

靑‘고품격 문화 공간화’주력
민관협력 롤모델 되게 하겠다

기자생활하며 문명·역사 관심
외국 나가면 박물관부터 찾아
그 나라 정체성 등 알 수 있어

“문화매력으로 한국 문화가 번창하는 시대에 들어갔습니다. 한국 위상의 지평이 거침없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예술인의 창의력, 기량, 대담한 파격, 혁신이 구현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방탄소년단(BTS)부터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게임’까지 K-컬처가 전 세계에서 뜨거운 환호를 받는 유례없는 한국 문화의 시대에,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문화매력으로 세계를 사로잡겠다”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 ‘한류’라는 말이 생길 때만 해도 일시적 유행으로 평가절하되던 K-컬처는 이제 웹툰 같은 새로운 분야로, 요리·패션 같은 인접 영역으로 빠르게 퍼져가고 있다. 모두가 K-컬처의 영향력을 말하고 수십조 원대의 한류 부가가치를 언급하지만 정작 문화예산은 전체 예산의 1%대에 머물러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에서 어느 때보다 영리한 문화정책이 요구되는 가운데 지난달 29일 박 장관을 서울 용산구 서계동 문체부 저작권보호과 서울사무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언론인 출신의 박 장관은 여러 문화 정책 중 개방된 ‘청와대 활용’ 문제를 가장 주력 분야로 꼽았다. 이와 관련해 문화재와 학계 등에서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박 장관은 이달 말 청와대 프로젝트의 첫 행사로 장애예술인 특별전을 여는 등 청와대를 고품격 문화예술 역사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재차 밝혔다.

―취임 후 세 달째에 접어든다. 현장 간담회를 잇따라 갖고 있는데 어떤가.

“기자생활을 하면서 문명·역사·문화와 리더십에 관심을 갖고 현장에서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추적하며 그런 기사를 많이 썼다. 구소련 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보고 문화적 자극을 받았다. 그 뒤 외국에 나가면 박물관, 미술관부터 먼저 간다. 그 나라의 정체성, 흥망성쇠 그리고 리더십을 압축적으로 알 수 있다. 그걸 포착하고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뉴욕, 파리, 런던, 암스테르담, 베이징(北京), 도쿄(東京),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로마, 로스앤젤레스(LA) 등 참 많이 다녔다. 이런 오랜 경험이 문체부와 여러 면에서 연관돼 있다. 나의 시각과 경험을 정책으로 펼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현장을 강조한다. 생생한 의견을 바탕으로 짜임새 있는 정책을 만들려 한다. 보람차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자신감인가.

“자신감은 부적절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문화매력국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어떤 의미인가.

“일류국가는 부국강병, 즉 경제력과 군사력이 아니라 문화가 꽃펴야 완성된다. 경제력·군사력은 압도하고 누르는 의미가 강한데 문화는 직설적으로 우월감을 표하는 게 아니라 상대 마음에 스며들어 자리 잡는다. ‘매력’은 문화의 독특한 특성으로 상대의 마음에 스며들어 사로잡는다는 개념이다. 차별화되고 지속성 있는 말이다. 2차대전 후 100여 개 신생국이 생겼지만 우리는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했다. 국방력도 단단하다. 이제 문화 번영의 시대다. 문화매력으로 한국 문화가 번창하는 시대에 들어갔다. 한국의 위상이 거침없이 확장되는 시점이다.”

―한국 문화는 이미 ‘세계적’으로 ‘매력적’이다. 한국 문화는 때론 국가주도 문화로 해석된다. 문화를 국가와 일치하는 게 오히려 짐이 되고 있다. 이런 시대 정부의 역할은.

“문화예술에서 자유의 의미는 독보적이다. 자유는 문화예술의 독창성, 감수성, 상상력의 원천이다.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면서 예술인이 창의력과 기량, 대담한 파격, 혁신을 구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다만 인력양성·제도개선·금융지원 등 민간이 하기 힘든 분야가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관’의 역할이다.”

박 장관은 “지금까지 우리는 정치, 경제 발전을 따지고 문화는 후순위였지만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문화를 어떻게 발전시켰는가가 평가의 잣대가 돼야 한다”며 이번 정부는 대통령 치적 평가에 문화가 확실하게 들어가는 첫 정권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재임 기간 중 중점을 둘 분야는.

“개방된 청와대 정책이다. 청와대 개방은 권위주의 정치, 제왕적 정치와 결별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의 산물이다. 거대한 청와대가 국민 속으로 들어왔다. 청와대는 백악관의 3.2배 크기에, 문화예술 콘텐츠가 있다. 예술품이 600여 점, 빼어난 작품이 340점이나 된다. 5만여 그루의 잘 가꿔진 나무와 꽃 정원이 있다. 1948년 이후 대통령 역사 문화 현장이며 통일신라시대 불상 등 전통 유적도 있다. 청와대 본관, 관저, 영빈관, 춘추관 등의 건물과 콘텐츠 요소를 세련되고 짜임새 있게 조합해 고품격 문화예술 역사 공간으로 만드는 데 주력하겠다. 문화번창은 거기서 시작할 수 있다. 문체부가 주도하면서 대통령관리비서관실, 문화재청과 긴밀히 협력하고 청와대 활용 자문단과 머리를 맞대 여러 프로젝트를 만들고 검토하겠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청와대 활용 방안은 민관 협력의 롤모델이 되게끔 진행하겠다. 장관 취임 직후부터 기초조사, 전문가 의견 모으기, 관람객 아이디어 듣기를 통해 정밀하게 의견을 모아왔다. 문화예술, 문화재, 수목 등 최고 전문가와 국민의 지혜를 모으는 절차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 대통령 업무보고 때 발표한 계획을 더 탄탄하게 만들어 나가겠다.”

―청와대 문화예술복합공간 프로젝트의 첫 행사로 오는 31일 장애예술인 특별전이 열린다. 어떤 의미인가.

“장애예술인 특별전은 청와대 관람에서 콘텐츠와 건축물을 결합하는 첫 행사로 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와 함께 준비하고 있다. 전시 장소인 춘추관 2층은 과거 대통령 기자회견장으로 쓰였던 곳이다. 현장을 사전답사한 참여 작가들이 ‘청와대 특별전을 장애인 미술전으로 장식하게 돼 뜻깊고 기쁘다며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지 않는 어울림의 축제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향후 추진 일정은?

“청와대의 많은 소장 미술품을 국민께 보여드릴 계획이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 당대 최고 그림들이 기증됐다. 의재 허백련, 청전 이상범, 월전 장우성, 남농 허건, 운보 김기창, 산정 서세옥 등 한국화 거장들의 걸작들이 있다. 은밀한 권력 세계에서 소수의 사람만이 보고 즐겨왔는데, 이제 모든 국민이 보고 즐기는 기회를 마련하려 한다. 올가을이 가기 전 전시회를 열 계획으로 민간협력의 롤모델로 기획하고 있다. 장소는 박정희 시대에 완공된 영빈관(국빈만찬장소) 2층을 검토 중이다.”

―대통령 집무실 관련한 논란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91년에 청와대 본관이 지어졌다. 하지만 1948년부터 1991년 사이 청와대 대통령 역사는 증발된 상태다. 1993년 철거된 청와대 옛 본관은 조선 총독 관저 건물로 시작된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6년간 3명의 조선 총독이 살았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가난한 시절, 대통령이 들어가 43년간 우리 역사에 편입됐다. 그동안 그곳에 대통령 집무실과 숙소가 함께 있었다. 청와대 관람객 사이에서 초소형 미니어처를 만들어 집무실과 숙소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달라는 의견이 있었다. 43년 격동의 역사 속에서 리더십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대통령들의 고뇌와 결단의 순간이 어떠했는지, 최소한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책상 위에 놓는 정도의 초소형 미니어처로 할지, 사진으로 할지 의견을 모으고 있다. 대통령 문화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보여줄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모으고 있다. 조혜자(이승만 대통령 며느리), 윤상구(윤보선 대통령 아들), 박지만(박정희 대통령 아들, 박근혜 대통령 동생), 노재헌(노태우 대통령 아들), 김현철(김영삼 대통령 아들), 김홍업(김대중 대통령 아들) 씨 등이 조언그룹으로 기억을 회고하고 있다.”

―너무 정치적인 것 아닌가.

“아니다. 통합이다. 민주화에 힘쓴 대통령 자제도 있고 산업화 시대의 대통령 자제도 있고…. 그분들이 함께 모인 적이 없다고 한다. 국민 통합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게 여러 사람의 의견이다.”

―청와대 활용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현재 우리 문화정책에서 가장 중요한가라는 의문이 든다. 어떠신지.

“그걸 앞세웠지만 기본적인 문화정책에 절대 소홀함이 없을 것이다. 특히 K-컬처는 글로벌시대 국가경쟁력이고 핵심은 콘텐츠다. 콘텐츠 산업은 저성장 시대에 국가 경제성장을 이끌 대표적인 창의 산업이자 특급 루키다. 지금까지 한국의 대표 브랜드가 반도체였다면 이제 콘텐츠를 한국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지원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정책은.

“‘좋은 콘텐츠’가 계속 나오려면 창의성과 예술성을 갖춘 인력이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민간의 창의력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는 정책으로 인력 양성, 정책금융, 해외진출 지원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콘텐츠와 첨단기술 양쪽에 모두 능한 융복합 미래인재를 비롯, 수출전문 인력, 영화·게임 등 장르별 전문인력을 포함해 3년간 1만 명의 인재를 양성, K-콘텐츠 수출 전선의 첨병이 되도록 하겠다. 또 콘텐츠 제작업체들은 영세한 곳이 많아 아이디어와 상상력만으로 은행권 대출 문턱을 넘기 어렵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금융을 5년간 4조8000억 원 공급할 예정이다. 특히 세계적인 지식재산권(IP) 보유 기업 육성을 위해 콘텐츠 IP 펀드, 모험투자 펀드, 가치평가와 연계한 밸류펀드 등 6종의 맞춤형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콘텐츠의 해외진출을 위해 재외 공공기관의 해외지사 역할을 강화하고, K-콘텐츠 열풍이 연관산업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의 협력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박 장관은 밝혔다.

―지난 6월 서울도서전에서 K-컬처의 바탕은 책이라고 했다. 관심이 인기 분야로 몰릴 수밖에 없는데 문화의 근본을 키우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 어떤 정책이 있나.

“출판과 책은 K-컬처의 근원으로 거기서 영감을 얻는다. 이 분야가 약해지면 콘텐츠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초예술의 기반을 다지는 데 힘을 기울이려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의 인재양성역할을 강화해 K-클래식 영재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클래식·무용·뮤지컬 등 장르별 전용 공연장을 마련하겠다. 또 미술진흥법을 제정해 미술작품 창작과 전시, 해외진출 등 미술 생태계 기반을 강화하려 한다. 현지 번역·출판을 지원해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도모하고 5차 출판문화산업 진흥 계획도 추진한다.”

박 장관은 K-컬처에 대한 관심으로 한국어 교육 수요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며 현재 84개국 244개소인 세종학당을 매년 20개 안팎 신설하고 교원 파견과 한국문화강좌도 확대하겠다고 덧붙였다.

―BTS 병역 특례는.

“이와 관련해 첫째, 병역은 신성한 의무이고, 둘째, BTS가 한국을 알린 역할을 했고, 셋째, 기초순수예술과 대중예술과의 형평성을 바탕으로 한 국민 여론이라는 세 원칙이 있다. 이 입장에서 지켜보고 있다.”

―체육정책의 기본 방향은.

“모든 국민은 자유롭게 즐기고, 전문 체육인들은 마음 놓고 운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생애주기별 스포츠 활동을 지원하고, 스포츠클럽 활동 등을 인증하면 마일리지를 제공하는 제도도 추진한다. 전문 체육인들을 위해선 국가대표 선수와 지도자 수당을 현실화하고, 학교운동부와 실업팀 지원도 확대할 계획이다. 이달부터 시행되는 체육인복지법은 메달리스트 중심이 아니라 체육인 전체로 복지 혜택이 확대되도록 했다. 지원체계를 촘촘히 갖춰나가겠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관광분야가 곤란을 겪고 있다. 대책은?

“코로나19 변이 발생과 재확산 우려가 변수지만 점차 세계적으로 큰 흐름은 국제관광 재개다. 주요국의 외래객 유치 경쟁이 심화 되는 상황에서 방한 관광시장 조기 회복을 위한 국제관광수요 선점은 중요하다. 현재 외국인 관광객은 입국 전후 의무적으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7월 말 기준으로 인천취항 59개 국가(지역) 중 54개 국가(지역)에서 백신접종 완료자에 대한 입국 후 유전자증폭(PCR) 검사 의무를 해제한 상황이라 다른 주요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다. 앞으로 방역상황을 면밀히 살피면서 입국 후 PCR 검사 폐지 또는 신속항원검사 병행인정 등 추가 완화에 대해 관계부처와 지속 협의해 나가겠다.”

인터뷰는 청와대 활용계획에서 K-컬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대 관광 정책을 거쳐 2019년에 출간한 ‘결정적 순간들-리더십은 역사를 연출한다’라는 책으로 이어졌다.

―‘결정적 순간들’에선 여러 지도자의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금 한국 사회가 필요한 리더십은.

“리더십의 바탕은 국민과 함께, 국민과 어울려서 간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이 아니라 시대적 소명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포착하기 위해 자질, 소양, 역사 공부 등을 해야 한다. 균형 감각을 갖고 좋은 역사는 계승, 발전시키고, 나쁜 역사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런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정책적인 어젠다를 만들고 국정을 설계할 때 정밀해지고, 추동력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 리더들에게 필요한 시대적 소명은 무엇인가. 이에 그는 “나라를 다시 한 번 도약시켜 달라는 것.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답했다.

인터뷰=최현미 문화부장
정리=박동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