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자 전문 번역에 시선 끄는 커버로 판매고
‘3권 2000페이지’ 몽테뉴 수상록, 중쇄 들어가
절판책 재출간·女작가 고전 등 참신한 기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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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누가 사겠어?’ 했는데, 일주일 만에 중쇄(책의 초판을 다 팔고 추가 인쇄에 들어가는 것)를 찍었다. 16세기 프랑스 사상가 미셸 드 몽테뉴의 ‘에세’다. 우리에겐 ‘수상록’으로 알려졌고, 지금의 ‘에세이’로 불리는 글쓰기 형식을 탄생시킨 책이다. 1965년 국내 초역한 책을 50여 년 만에 민음사가 새롭게 번역, 출간했다. 세 권 세트(7만8000원)를 합치면 2000페이지, 두께는 12㎝에 이른다. 발간 첫 주, 세트만 1000개 넘게 팔려 출판사도 놀랐다. 업계는 전공자의 전문적인 번역이 신뢰를 주고, 편집자의 시대를 읽는 기획력, 그리고 시선을 끄는 커버 등 조화롭게 이뤄진 결과라고 분석한다. 또한, 관계자들은 “여전히 고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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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는 38세에 공직에서 물러난 몽테뉴가 칩거하며 쓴 107편의 짧고 긴 에세, 즉 에세이들을 묶은 것이다. 종교·철학 중심의 중세적 자기 인식을 탈피하고 ‘나’라는 ‘정신적 개인’의 자아 탐구 과정을 담았다. 불문학 권위자인 심민화·최권행 두 역자가 10년을 번역했고 다시 5년의 감수 과정을 거쳤다. 담당 편집자인 이정화 민음사 차장은 “동물권 옹호, 사형제 폐지, 민족적 다양성 등 몽테뉴의 비판적 시선이 여전히 유효한 데다가, 코로나 이후 ‘에세이’ 같은 사적인 이야기가 더욱 필요한 시대가 됐기에, 충분히 읽힐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달 첫선을 보인 ‘인문학 클래식’도 이에 못지않은 호응을 얻고 있다. 문학·역사·철학·예술 분야 고전을 선별한 시리즈다.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의 ‘철학자의 위로’, 샤를 보들레르의 ‘우울의 고백’,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등 4권이 먼저 출간됐으며, 민음사는 최종적으로 100권의 리스트를 완성할 계획이다. 1차로 나온 4권의 책은 출간 한 달여 만에 3000부 이상 팔렸다. 각각 700∼800부로 고르게 나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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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만한 점은 관련 분야 전공자가 번역했다는 사실이다. 2015년 기획하고 이제야 첫 책이 나온 것 역시 번역에 특히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문학을 전공한 서양 고전학자가 완역한 ‘오뒷세이아’는 희랍어 원문의 의도대로 서사시의 운율을 살렸다. ‘철학자의 위로’ 역자는 로마 시대 ‘위안 문학’ 연구자이며, ‘메데이아’ 번역자는 고대 그리스 문학 권위자인 강대진 정암학당 연구원이다. ‘우울의 고백’은 프랑스 현대시 연구자에 의해 국내 최초로 번역됐다. 양희정 민음사 부장은 “원문의 뉘앙스를 살린 것과 함께 모든 판본을 비교한 주석의 충실함도 ‘전문가가 번역한 고전’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디자인에도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몽테뉴의 ‘에세’는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감각적인 양장본이다. “인문의 무게는 덜고, 몽테뉴 글의 발랄한 리듬을 연상케 하는 패턴을 넣었다”는 게 담당 편집자의 말이다. ‘인문학 클래식’은 중후한 그림과 사진을 표지 이미지로 활용하되 노랑·초록·파랑 등 알록달록한 색깔을 입혀 ‘고전은 어렵고 딱딱한 것’이라는 선입견을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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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들어진’ 고전은 기회를 잡는다. 대표적인 예가 단테의 ‘신곡’. 밴 클라이번 대회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판매량이 확 늘었다.

‘임윤찬 효과’인 것도 맞지만 ‘준비된’ 출판사들만 활짝 웃었다. 고전 독자들은 원문 번역의 중요성을 알기에, 가능하면 최근 개정판을 선호한다. 눈에 띄는 곳은 단연 열린책들과 민음사다. 모두 같은 기간 대비 3배 이상 ‘신곡’이 팔렸다. 올봄 개정판을 선보인 열린책들의 ‘신곡’은 독자들의 요청으로 귀스타브 도레의 삽화 130여 점을 싣는 열의를 보였고, 15년간 단테 연구를 해 온 김운찬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3000개의 역주를 추가했다. 이 흐름을 이어 민음사는 세계문학전집 ‘신곡’을 번역한 박상진 한국외대 교수가 방대한 주석을 단, ‘신곡’ 주해판도 출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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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번역과 구성으로 다시 빛을 보기도 하지만, 참신한 기획 자체로 승부하는 경우도 있다. 100% 여성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책을 선별하는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리즈도 한 계절에 4권씩, 벌써 두 계절 총 8권을 출간하며 좁은 문학 시장에서 활로를 개척하고 있다. 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 중 미래 고전이 될 작품을 소개하는 은행나무의 ‘에세 시리즈’도 눈길을 끈다.

교유서가의 ‘어제의 책’은 절판된 인문서 가운데 재출간 요청이 많은 책을 소개하는 시리즈다. 교유서가는 지난 4월 역사학자 로저 에커치의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를 출간한 데 이어 다음 주 이마미치 도모노부 전 도쿄대 교수의 ‘단테 신곡 강의’를 내놓는다. 미국과 일본에서 각각 2005년, 2002년 첫 출간된 이들 책은 ‘현대의 고전’으로 꼽히는 명저다.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는 초판 1000부 가운데 800부 이상이 팔려 2쇄를 준비 중이다. 출간을 앞둔 ‘단테 신곡 강의’의 기존 판본은 중고서점에서 25만 원 안팎에 거래되는 희귀 아이템이다. 신정민 교유서가 대표가 직접 쓴 시리즈 소개 글은 절판된 고전을 통해 미래를 조망하고자 하는 기획 의도를 잘 보여준다. “이제는 사라진 것들을 복원할 시간이다. 어제의 책은 오늘을 해석하고 내일을 비춘다. 그러므로 어제의 책은 오늘의 책이고, 내일의 책이며, 언제나 살아 있는 책이다.”

박동미·나윤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