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동미 기자의 두근두근 정주행 - 일본드라마 ‘오늘 밤은 코노지에서’

고독한 미식가·심야식당류
전형적인 日 구루메 드라마

서민적이고 예스러운 술집
ㄷ자 자리에 옹기종기 앉아
간섭하고 훈수 두는 사람들
소소한 삶의 온기·기쁨 찾아

이미지 크게보기 ‘오늘 밤은 코노지에서’의 포스터(위)와 드라마 속 한 장면(아래).

요행을 적극적으로 바라는 건 아니지만 때론 떠밀려서 가보고 싶다. 가끔은 누가 내 인생에 마구 참견해 줬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내 의지와 소망만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곳에, 조금은 쉽게 당도해 있을 것만 같아서. 이런 생각을 한 건 일본 드라마 ‘오늘 밤은 코노지에서’를 보던 중이었다. 처음 가는 술집 앞에 혼자 서서, 쭈뼛대던 주인공 요시오카(아사카 코다이)가, 뒤에 온 건장한 손님의 기세에 밀려 ‘훅’ 하고 안으로 빨려 들어갈 때,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여하튼, 입성했다. 얼떨떨해하던 요시오카도 곧 환해진다. “아, 이런, 휴, 다행”이라는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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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지’는 일본어 가타카나 ‘코(コ)’자 형태 카운터가 있는, 서민적이고 옛 정취가 풍기는 일본 술집이다. 가게 주인이 ‘コ’자 속에 들어가 음식과 술, 말을 건넨다. 상석도 말석도 없는 평등한 자리다. 눈치챘으리라. ‘오늘 밤은 코노지에서’는 ‘고독한 미식가’ ‘심야식당’ ‘와카코와 술’ 등을 잇는, 일본식 ‘구루메(미식) 드라마’다. 미식 드라마가 식상하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회당 22분, 총 12편의 드라마를 단숨에 정주행했다. 용기보다 센 외력 덕에 코노지에 입문한 요시오카가 꼭 나 같아서. 투박하고 낡은 술집의 매력에 푹 빠진 요시오카의 발걸음에 털썩 마음을 실었다.

주인공 요시오카는 광고회사에 다니는 30대 남성이다. 요즘 고민은 자유분방한 회사 후배. 마감을 당겨달라는 상사의 부탁에, 요시오카는 동창회도 포기하고 야근을 하지만, 후배는 다르다. 정시 퇴근에, 업무 후 맥주 한 잔 하겠느냐는 권유엔 늘 “그거 업무와 관련된 건가요?”라며 선을 긋는다. 헤이세이(平成·1989∼2019) 시대에 태어나 자란 요시오카는 젊은 후배를 보며 “레이와(令和·2019∼) 시대 입사자들은 다 이런가” 하며 불평한다. 양쪽 입장 모두 이해할 만하지만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에 끼인 요시오카에게 마음이 기운다. 우리로 치면 Z세대 신입사원과 친해지고픈 밀레니얼 세대 팀장 같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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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합류한 동창회에서 요시오카는 대학 선배 게이코(나카무라 유리)를 만나고, 그녀의 권유로 코노지 세계에 눈뜬다. 기름진 안주에 시원한 맥주 그리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격의 없이 어울린다. ‘안과 밖’ ‘나와 너’의 구분이 엄격한 일본 사회지만, 코노지에서는 자연스럽게 선을 넘는다. 요시오카는 매회 새로운 코노지를 탐방하며 엉겼던 마음을 하나씩 풀어나간다. ‘바싹’ 붙어 앉아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 속에서. 맛있고 즐거운 카타르시스를 안기며.

드라마를 보고 또 봤다. 요시오카가 말 많은 손님들, 또 짝사랑하는 게이코와 먹고 마시고,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좋았다. 그 ‘소리’가 그리웠다. 멀찍이 떨어져 앉아 대화를 삼가야 하는 시절을 보내며, 바싹 붙어 앉고, 떠들고 싶었다. 게다가 이 드라마엔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간섭’과 ‘참견’이 난무했다. 코노지 마니아인 게이코는 요시오카에게 매번 다른 가게를 알려주고, 가보라며 ‘명령’한다. 손님들은 요시오카에게 “이 형씨한테 보리멸 튀김!” 하며 마음대로 주문을 넣고, “참치 낫토엔 무조건 간장”이라며 먹는 법까지 간섭하고, 그걸 또 지켜본다. 이뿐이랴. 근심을 알아차리고는 “털어놔 보라”며 훅 치고 들어오고 후배 뒷담화엔 “그 후배도 언젠가는 성장하겠지”라며 훈수를 둔다. 느닷없고 황당한 상황들이긴 한데 그걸 보는 게 그렇게 기분 좋았다. 요시오카도 그랬는지, 코노지 경력이 쌓일수록 얼굴은 밝아지고, 자신감도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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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만화가 원작이다. 2016년 출간된 한 권짜리 만화는 가토 점프가 스토리를 썼다. 요즘도 SNS에 코노지 사진을 올리는 작가는 공식 프로필에 ‘코노지 술집 경력 4반세기. 400군데 넘는 코노지 술집을 알고 있음’이라고 쓸 정도로 코노지 마니아다. 구루메 만화나 드라마가 보통 특정 음식과 술, 인물을 중심으로 한 편 한 편 완결된 에피소드로 진행되는 데 반해, ‘오늘 밤은 코노지에서’는 요시오카와 게이코의 일과 꿈, 그리고 애정전선 흐름을 따라 이어진다. 그리고 코노지는 언제나 왁자지껄. ‘혼술’ ‘혼밥’이 콘셉트인 ‘고독한 미식가’나 그것의 여성 버전인 ‘와카코와 술’보다 덜 외롭고, 저마다 드라마틱한 사연을 품고 자정을 넘겨 찾아오는 ‘심야식당’보다 덜 어둡다. 오늘도 어디선가 본 듯한 평범한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떠든다. 일상적이고, 그래서 더 친근한 게 이 작품의 미덕이다. 드라마(시즌 1)는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에서 볼 수 있다. 얼마 전 일본에서 시즌 2를 시작했다고 한다.

드라마를 반복해서 보니 손님들 얼굴까지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추천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요시오카를 보며 왜 그렇게 흐뭇해하는지, 왜 자꾸 간섭하고 참견하며 즐거워하는지.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쉽고 흔하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게 놀랍고 새삼 감동이다.

게이코는 요시오카에게 코노지를 “지금 너에게 꼭 필요한 장소”라고 했는데, 팬데믹의 터널을 뚫고 나오는 지금, 게이코의 이 말을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드라마”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참견한다는 건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고, 그것은 서로를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알기 위해 우린 들어야 하고, 잘 듣기 위해선 ‘바싹’ 붙어 앉아야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