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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싸이 ‘댓 댓’

“이 형은 아직도 이러고 있네.” 자존심 상할 법도 한데 싸이는 통 크게 받아들인다. “20대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면 가장 큰 성공일 것이다.” 이 자신감은 도대체 뭐지. 근원과 정체가 궁금해 사부작사부작 뜯어보기로 한다.

형이라는 살가운 호칭. 이분, 이 아저씨가 아니다. 40대 중반(1977년생)이 20대에게 형이라 불리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고 그걸 자연스럽게, 자랑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또한 대담한 처세다. 또 한 가지. ‘저 형은 아직도 저러고 있네’가 아니라는 데 주목하자. 이 형과 저 형은 어감(거리감)에서 사뭇 차이가 난다. 저 형은 시야(트렌드)에서 벗어난 형인데 이 형은 아직도 이 동네에서 움직인다. 그렇다. 우선 감각이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야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까먹었지’(싸이 ‘댓 댓’ 중). 일찍이 음악계에서 사망이나 실종선고를 받았다면 ‘아직도 이러고’ 소리조차 못 듣는다.

이미지 크게보기 주철환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

운동장에서 박지성과 손흥민이 함께 뛰는 경기는 아마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무대에선 싸이와 방탄소년단(슈가)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제부턴 초점을 ‘이러고’에 맞춰본다. 오랜만에 만나 “요즘 어떠세요”라고 물으면 “그냥 이러고 살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올 때가 있다. 과연 싸이의 ‘이러고’는 어떤 모습일까. 이번 앨범제목 ‘싸다9’는 ‘싸이의 다채로운 9집’을 줄인 말이다. 축소지향이 아니라 축약지향. 작아진(small) 게 아니라 빨라진(speedy) 것이다. 유머는 기본이다. ‘싸다9’라고 하면 얼핏 싸대기가 연상되지 않는가. ‘그대의 연예인이 되어 항상 즐겁게 해 줄게요’(싸이 ‘연예인’ 중). 팬들을 즐겁게 못 만들면 귀싸대기 맞을 각오로 만든 앨범, 그러나 고급스러운 품격보다는 부담 없이 저렴한(싸다구!) 앨범이라는 걸 은근히 강조한다.

무대를 접한 사람들의 평가는 얼추 비슷하다. “난리가 났죠.” 기본적으로 싸이의 공연은 안정보다 환장에 가깝다. 무대에선 발광하고 객석에선 열광한다. ‘나의 그대가 원한다면 어디든 무대야’(싸이 ‘연예인’ 중). 그런데도 옛날얘기 주워 담는 게 아니라 숨 가쁘게 변하는 ‘지금 여기’를 환기시킨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선포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라는 용어를 노래 가사(Pandemic’s over)에 버젓이 등장시킨 건 싸이의 ‘댓 댓’이 처음 아닐까.

데뷔곡 ‘새’에서부터 그는 “남의 시선 남의 이목/ 남의 크고 작은 목소리 되게 신경 쓰는 당신”에게 경고한 바 있다. 본인도 얼굴이나 몸매는 TV가 정한 미의 기준으로부터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있었다. 외로움과 심심함을 놀이문화로 전환하는 것이 특기라고 밝혔지만 ‘웃고 울고 지지고 볶고’(싸이 ‘댓 댓’ 중) 사는 세상에서 주관을 지키며 사는 게 쉬웠을까. 다시 들어보니 ‘새’의 초심은 그를 주저앉지 않도록 만든 날개였다. ‘가로세로 전후좌우 재가며 계산해 가며 사람 만나면 혼난다는 걸/ 모른다면 당신은 바보 (중략) 너 혼자 잘나 퉁퉁 튕기다가 하루아침에 니가 뻥 튕길 거다/ 명심 또 명심해라’(‘새’ 중). 하지만 싸이에게도 ‘나 완전히 새됐어’(‘새’ 중)하던 시절이 있었다. ‘살면서 온갖 일 다 겪어봤지만’(싸이 ‘셀럽’ 중) 불운의 기억조차 유머의 소재로 써먹는 여유를 보면 최고의 복은 전화위복임이 확실하다. 싸이는 음악동네에서 고난의 유익함을 입증한 최고의 사례다.

고분고분한 아이로 묶였다면 고만고만한 사람이 됐을 거다. 엽기적으로 출발해 획기적이 된 싸이는 지금도 대학축제를 달구는 챔피언이다. “저는 웃기더라도 저희 관객들은 멋지다는 걸 보여주세요.” 장난처럼 툭툭 던지는 그의 노랫말에 몸만 흔들지 말고 마음도 열어보자. ‘파벌 없이 성별 없이’ ‘모두의 축제’가 되려면 ‘서로 편 가르지 않는 것이 숙제’(싸이 ‘챔피언’ 중)라고 그는 노래한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