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립습니다 - 석남 이경성(191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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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난데없이 관장님이 생각납니다. 박물관 개관일이 있어서일까요.

처음 뵀던 때가 이즈음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가까이서 모셔본 적 없고, 공부를 배워 본 적도 없는, 딱히 특별할 것 없는 관계였는데도 이때가 되면 관장님이 생각나는 건 아마도 학예사인 저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셨기 때문이겠지요.

십여 년 전쯤이었을 겁니다. 박물관 서고에서 잠자고 있던 관장님의 원고를 다시 엮어 책으로 펴낸 적이 있습니다.

6·25전쟁 직전에 인천 전역을 직접 답사하며 작성한, 지금으로 말하면 ‘문화유적 지표조사 보고서’였지요. 한국인의 손으로 조사하고 작성한 최초의 지표조사 보고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때 관장님이 조사했던 대부분 유적이 인천시 지정문화재가 됐으니 이 조사가 없었다면 지금 인천의 문화유산이 제대로 보존될 수 있었을까요.

관장님의 글을 옮기며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이라는 명예와 전통이 허울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인천시립박물관의 학예사라는 것이 처음으로 자랑스럽게 느껴졌던 시간입니다.

그때 그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된 것은 얼마 전 일이었습니다. 우연찮은 기회에 박물관 관보 ‘고적’의 창간호를 비롯해 1947년에 간행된 관보 세 권을 건네받았습니다.

개관 초기 기록이 워낙 부족한 터라 박물관 역사의 비어 있는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중요한 자료였습니다.

첫 페이지부터 찬찬히 읽어가던 중 ‘인천박물관의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관장님의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리다면 어리고 젊다면 젊은 스물아홉의 관장이 어떤 생각으로 박물관을 꾸려갔을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인천박물관은 인천 부근의 섬을 포함한 지역사 연구에 주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것이 참으로 인천박물관의 방향이고, 근본 사명이라 믿는다”는 구절에서 관장님이 유적 조사에 전력을 다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지역 박물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성에 천착해야 하고 이를 특화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2년 차 박물관장이, 더구나 박물관 관련 학문을 전공한 것도 아닌 사람에게 어찌 저런 혜안이 있었을까요.

길지 않은 두 문장은 박물관 경력이 20년을 훌쩍 넘어서 있던 저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줬습니다.

평생을 관장으로 사셨지만, 사람들은 관장님을 미술관장 이경성으로만 기억하고 있네요. 그만큼 우리 미술계에 끼친 영향이 컸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인천 사람만큼은 그 어려웠던 시절에 맨손으로 박물관을 키워내고, 인천 문화유산의 보존에 기틀을 마련했던 관장님을 박물관장 이경성으로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요.

꽃눈이 나리고 산과 들은 연녹색으로 변해갑니다. 그렇게 또 4월이 지나갔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드는 관장님 생각에 몇 자 적어 봅니다.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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