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정선의 ‘산수유’(왼쪽)와 이창남의 ‘꽃과 주전자’.

■ 4050 중견작가 9인 ‘화론展’

작년에 이어 두번째 전시 열려
서울대 미대 동문들 한자리에

신수진, 미약한 것의 가치 확인
이정은, 세밀화 그려내듯 묘사
이창남, 일상속 아름다움 그려

글·사진=장재선 선임기자

국내 화단을 대표하는 40, 50대 중견 작가 9명이 봄날에 꽃 그림을 선보인다. 이름하여 화론(on Flora and Painting)전. 꽃(花)으로 그림(畵)을 논하고, 그림으로 꽃을 말한다. 작년 봄 서울 통인화랑에서 처음 시작한 전시가 올봄 이화익갤러리에서 두 번째로 이어졌다.

이미지 크게보기 이정은, ‘12월의 기억’.

꽃은 예술가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소재다. 예부터 많이 다뤄진 탓에 새로움을 주기 힘들어서다. 이해인 시인이 최근 시·산문집 ‘꽃잎 한 장처럼’을 펴내면서 책 제목에 ‘꽃’은 넣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결국 넣은 것은 희망을 전하는 상징이어서다. 작가 9명의 화론전도 꽃 그림으로 세상에 화기(和氣)를 퍼트리려는 소망을 품고 있다. 전시를 최초로 제안한 이창남(58) 작가는 “코로나 시기의 무기력함 같은 것들을 위로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제안을 받은 작가가 또 다른 작가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모였는데, 모두 서울대 미대 동문이다. 이 작가를 포함해 김정선(50), 김제민(50), 신수진(50), 이광호(55), 이만나(51), 이정은(51), 한수정(55), 허보리(41) 등이다. 이 작가는 “이전에 서로 만나지 못한 분들도 있으나 전시에 뜻을 함께했다”며 “끈기있게 좋은 작품을 만들어 온 작가들”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삼가는 대신에 동료들의 그림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올해 전시가 이어졌으니 앞으로 매년 한 번씩 지속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전시장에 가서 작품들을 보니 각 작가들의 개성이 두드러졌다. 말 그대로 9인 9색이다. 꽃을 주제로 해서 그와 관련한 사물과 자연 풍경을 다채롭게 담고 있다. 어울리되 절대 같을 수 없는 화이부동(和異不同)의 세계를 26점의 작품이 여실히 보여줬다.

이미지 크게보기 신수지, ‘Breezy Green’.

피었다가 지는 꽃의 순간을 잘 포착하고 있는 작품이 김정선 작가의 ‘배꽃’이다. 찰나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화면은 아득한 느낌을 준다. 검은 가지 위에 붉은 열매가 꽃처럼 매달린 ‘산수유’는 선연한 빛을 뿜어낸다. 전시장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벽면에서 만났을 때, ‘와!’ 하는 감탄사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 뒤의 여운은 길고 애틋했다.

신수진 작가의 그림(‘Yellow Bloom’ ‘Breezy Green’)은 제목처럼 색채의 향연이다. 아주 작은 꽃잎 혹은 이파리들이 모여서 생명의 환한 빛을 선사한다. 작가가 만든 틀을 활용하고 작은 붓으로 수없는 반복 작업을 해서 만든 작품들이다. 신 작가는 화론전 직전(3월 30일∼4월 4일)에 인사동 동덕아트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신 작가는 “미약한 것들의 가치를 존중하고 그것과 함께할 때 생기는 힘을 생각하며 작업한다”고 말했다.

동양화를 전공한 이정은 작가는 도감의 세밀화를 그리듯 꽃을 정성스레 묘사했다. 제목처럼 ‘축하와 축복’을 받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또 다른 작품에선 꽃바구니 옆에 두 마리의 고양이 등 주변 존재들을 그려 넣어 일상의 평안을 기원한다.

전시장 맨 앞에 자리한 이창남 작가의 그림은 꽃과 주전자, 거울과 포도가 함께 이뤄낸 미감을 표현했다. 일상의 소재에서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작가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빛과 공기의 미묘한 흐름이 만져지는 그의 그림은 고전 명작들과 겨루는 듯한 자존이 배어있다. 이 작가는 사물의 고갱이를 통찰하는 직감을 수련하며 끈기 있게 자신만의 세계를 밀고 왔다.

이번 화론전에선 봄밤의 환한 꽃뿐만 아니라 겨울을 견디는 나뭇가지에 핀 눈꽃도 만날 수 있다. 주변에서 무심하게 만나는 풀숲의 풍경을 담았는가 하면, 제주도와 뉴질랜드 습지에서 만난 식물의 기억을 되살린 그림도 있다. 구상화뿐만 아니라 반추상을 통한 해석의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전시는 6일부터 1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