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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한국은행이 지난 24일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처분가능소득이 5.1% 증가한 데 비해, 가계부채는 7.8% 증가했다. 그리고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전년 동기 대비 4.3%P 상승한 173.4%에 달했다. 그뿐 아니라,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전년에 비해 2.7%P 상승한 106.1%를 기록했다. 부동산 정책 실패와 코로나19 확산 탓이다.

지금의 가계부채 규모는 매우 위험한 수준이다. 가계의 실제 소득보다 빚이 더 많기 때문이다. 부채 자체가 부정적인 건 아니다. 충분한 저축이 없어 주택과 자동차와 같은 재화를 당장 구입할 수 없는 사람이 은행 등을 통해 돈을 빌려서 구매하고, 소득 중 일정액을 매월 이자로 지급하고 나중에 원금을 갚으면 이득이 된다. 그러한 행위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게 되며 경제 전반에 걸친 생산성과 효율성 향상에 기여한다. 문제는 상환 능력 이상의 과도한 부채다. 갚을 능력 이상의 부채는 파산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고, 그 파산으로 부실채권이 증가해 금융기관들이 도산하면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한 가능성은 대내외 사정으로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함에 따라 돈을 빌린 가계들의 이자 상환 부담이 커지고 있고, 국내 금리 인상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및 금리 인상으로 주택이나 주식 등 자산 가격이 크게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계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고 자산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을 늦출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인플레이션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 2월 3.7%로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 연속 3%대를 기록하고 있고, 미국 역시 7.9%로 4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저금리를 유지한다면 더 큰 경제 문제와 위기에 봉착할 우려가 있다.

가계부채 문제는 금리 인상을 전제로 하고 가계부채가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해치지 않을 조치를 해야 한다. 가계부채 문제의 핵심은 부채 상환 능력이다. 고소득 가계의 경우 부채 상환 능력이 높아 금리 인상으로 파산할 확률이 낮다. 금리 인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처분가능소득이 낮아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한계가계들이다. 금리 인상으로 한계가계들의 부채 상환 능력이 떨어지고, 그로 인해 금융위기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그러한 가계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대책 중 하나는 부채조정제도나 파산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득 감소로 대출 상환이 어려워 연체 또는 연체 우려가 있는 개인 채무자들의 가계대출 원금 상환 유예를 연장한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득 증가와 일자리를 통해 부채 상환 능력을 높이는 일이다. 소득이 늘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데는 왕성한 기업 활동만 한 게 없다. 기업의 활동은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적고 자유로울수록 활발해진다. 지금 기업의 활동을 옥죄고 간섭하는 각종 규제를 철폐·완화하는 것이 필수다. 그리고 코로나19 방역을 명분으로 취해온 자영업자들의 영업제한을 해제해야 한다. 그것 역시 가계부채 문제 해결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