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14길 옛 용산철도병원 건물에 들어선 용산역사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용산철도병원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 지어져 중앙대병원으로도 사용됐으며, 2008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윤성호 기자

용산역사박물관 개관

일제강점기 철도 승차권·화물표
전시물 4000점 중 절반이 기증
해방촌 주민 등 역사 증언 생생

“서로 다른 시간과 결을 가진 것들이 한 공간에 압축적으로 뒤섞여 빚어낸 풍경은 바쁘고 복잡하고 아름답다. 용산은 이 이질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 훌륭한 재료다. 적산가옥과 주상복합이 함께 있고 이태원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작은 담벼락이 같이 있다.”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14길 옛 용산철도병원 건물에 새로 문을 연 용산역사박물관. 1928년 지어져 2008년 국가등록문화재가 된 빨간색 벽돌 건물 1층 ‘프롤로그’라고 쓰인 첫 번째 방으로 들어서자 벽면에 붙은 글귀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천(千)의 얼굴 용산’이라는 제목의 설치미술 작품을 설명하는 권민호 작가의 글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용산을 설명하는 데 ‘천의 얼굴’이라는 표현만큼 적절한 것은 없을 듯하다.

용산철도병원과 중앙대병원으로 쓰였던 지상 2층 건물에 연면적 2275㎡ 규모로 들어선 이 박물관은 용산구청이 2011년부터 준비한 결과물이다. 서울 자치구 가운데 지역 역사에 초점을 맞춘 박물관을 갖게 된 것은 용산구가 처음이다. 개관을 눈앞에 두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실을 박물관 인근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고 밝히면서 더 많은 관심을 끌게 됐다. 개관 첫날인 이날도 가족이나 동료, 학교 친구 등으로 보이는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상설 전시실은 ‘용산에 모이다’ ‘용산에서 흩어지다’ ‘용산으로 이어지다’ ‘용산에서 하나 되다’ 등 4개 주제로 용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게 기획됐다. 용산은 무악산(안산)이 남쪽으로 뻗어 나간 산줄기와 한강으로 둘러싸인 땅으로, 구불구불한 능선이 용의 형상을 연상케 한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조선 시대 육로와 수로 모두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길목에 놓임으로써 본격적으로 번성했다. 경강상인들의 번성기를 보여주는 사진들, 일제강점기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영업보고서와 승차권·화물표, 일본군 사령부 설치 이후의 경성용산시가도, 삼각지 화랑거리에서 제작된 상업화(畵), 철도 종사원 치료에 쓰였던 외과 처치실과 수술 도구들, 용산전자상가의 황금기를 이끈 가전제품들 등 박물관을 채운 다채로운 전시품이 변화무쌍했던 용산의 역사를 증언한다.

이 박물관의 특징은 ‘용산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용산의 역사를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전시실 곳곳에서 용산의 역사와 함께해 온 주민들의 인터뷰 동영상을 만날 수 있다. 50년 용산 거주자인 가수 현미 씨는 미8군 쇼를 통해 스타가 된 과정, 용산을 통해 서구 대중문화가 퍼져나간 과정을 눈물을 훔치며 회고한다. 해방촌에서 수선집을 운영했다는 임광해 씨, 여전히 해방촌에 남아 일성상회를 운영하고 있는 박일성 씨 등은 서로 다른 지방에서 상경한 서민들이 끈끈한 공동체를 형성해 간 역사를 풀어낸다. 조은비 학예사는 “4000여 점에 달하는 전시물의 절반 이상은 주민들에게 기증받은 것”이라며 “이들은 비록 문화재급은 아니더라도 용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