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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NSC 열어 용산 대통령실 거부
제도 악용한 대선 불복에 해당
트럼프 임기 말 행태와 판박이

궁정정치 혁파하면 국민 환영
6·1 지방선거에도 영향 클 것
尹 ‘1보 후퇴’ 도량 보일 필요

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용산 국방부 청사로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을 ‘안보 공백’을 이유로 사실상 거부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사이의 면담이 지난주 무산됐을 때 대통령직 인계인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이 정도의 파국 상황은 아니었다. 떠나는 권력이 들어오는 권력의 제1호 정책에 공식적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사실상 대통령 당선인의 정통성을 부인한 것으로, 대선 불복이나 다름없다.

국민이 선택한 지도자의 정책을 비판할 수는 있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제도적 권한을 이용해 제동을 거는 행태는 민주주의 규범에 어긋난다. 이미 문 정부는 임기 말에 차기 정부의 운영에 영향을 줄 인사는 자제해야 하는데도 당선인이 선출된 후에까지 여전히 자파 진영 인사를 심으려 한다. 미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자신의 권한이라며 보수 인사를 연방 대법관으로 임명하고 조 바이든 후임 대통령과도 면담하지 않은 태도와 다르지 않다. 문 대통령이 업무 인계 직전까지 권한이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시각 즉시 책무를 인수하는 차기 국가원수와 업무 협의를 거부하는 것은 책임정치가 아니다. NSC에서 집무실 이전에 따른 안보 문제를 논의하려 했다면 당선인과 사전 소통이 있었어야 했다.

현직 대통령이 어쭙잖은 이유로 대통령 집무실의 이전을 방해하는 데는 정략적인 복선이 깔려 있다고 보인다. 윤 당선인이 집무실 이전을 결단력 있게 추진하자 자신들이 광화문 시대 공약을 포기했던 당사자로서 적잖이 놀라고 당황했을 것이다. 집무실 이전 계획이 당선인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김영삼 대통령 이후 청와대를 벗어나려 했던(박근혜 대통령 제외) 역대 대통령들이 이루지 못한 숙원 사업을 달성하고, 궁정정치 시대 마감과 함께 청와대 봄꽃 나들이는 국민에게 환영받는 여가 선용일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다가오는 6·1 지방선거에서 현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고, 대선 패배의 여진을 겪고 있는 진보의 위축은 시간문제가 된다.

문 대통령과 여권은 무슨 수를 쓰든 대통령 당선인의 쾌주를 막아 보고 싶을 것이다. ‘촉박한 시일 안에 국방부와 합참의 갑작스러운 이전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의 이전’은 혼란을 초래한다며 지난 22일 국무회의에서 집무실 이전을 위한 예비비 편성안을 상정하지 않았다. 오는 5월 10일 취임과 더불어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윤 당선인의 약속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현 여권은 새 정부 출발부터 ‘취임 덕’을 만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 당선인의 과단성 있는 의지와 결정을 ‘밀실·졸속·불통’의 ‘제왕적’ 행태로 몰아가고 있다.

이에 대해 당선인 측은,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집무실을 계속 사용하고, 취임과 동시에 청와대 개방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신구 권력의 강 대 강 정면충돌이다. 나라는 국가권력이 분열될 때 망한다. 사회 균열을 통합하는 게 정치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게 국가권력인데 신구 두 정통성을 가진 국가권력이 싸우면 이것이 바로 국가 존망의 안보 공백을 초래하는 것이다. 사실, 현 정부·여당은 새 정부를 위해 협력하고 또 이참에 안보 관련 국가비상계획도 점검해 보는 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로남불의 진영 정치를 조장해온 이들에게 품격 있는 민주적 정권교체를 기대하긴 난망하다.

국민은 새 정부가 출발하면서부터 정쟁과 분열을 겪는 걸 원치 않는다. 당선인의 협치(協治) 의지와 통합 리더십에 국민은 희망을 걸고 있다. 모처럼 정치 신인 대통령 당선인이 진정한 위민(爲民)시대를 맞이하는 기대에 차 있다. 공간이 의지를 제약한다는 말에 공감은 하면서도 공간에 지배받는 의지를 어디에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옮길 의지가 강하다면, 시간을 가지고 탈(脫)청와대 시대의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수도권 집중 현상을 완화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세종시대’를 열어 보는 게 어떨까.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를 할 수 있는 융통성과 패자를 포용할 수 있는 승자의 도량을 보여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