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병종, 빛의집, 35×48㎝, 혼합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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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종의 시화기행 - (110) 피렌체 두오모 성당, 기적의 천장화 (下)

神의 집이 곁에 있어야 안전
150년 건축의 시간 견딘 힘

돔 공사 끝낸 뒤 뚜껑을 덮고
천국의 모습 등 천장화 그려

언젠가 되돌아가는 고향처럼
둥근 돔은 ‘영혼의 자궁’ 연상

두오모 대성당의 내부 계단은 비좁고 가파르다. 마치 바위산을 오르는 느낌인데 앞사람의 엉덩이를 보며 행렬은 끝이 없다. 그런데 유난히 한국어와 일본어가 많이 들려온다. 짐작 가는 바가 없지 않았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다. 에쿠니 가오리와 쓰지 히토나리의 2인 소설을 영화화해 대히트를 쳤고 그 영화에 나오는 피렌체의 두오모는 많은 젊은 연인의 로망이 됐다. 영화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피렌체 두오모는 연인들의 성지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곳, 언젠가 함께 올라가 주겠니?”

숨을 몰아쉬며 두오모 정상 난간에 이르러 건너편 조토의 종탑과 넓게 펼쳐지는 붉은 기와의 중세풍 도시를 내려다보는 일. 비록 영화 속 대화가 아니더라도 그 높은 교회꼭대기까지 함께 올라와 사랑을 고백하면 누구라도 설레고 흥분되는 그 추억이 평생의 기억으로 남겨질 만하다. 이렇게 피렌체의 두오모는 오늘날 사랑의 고백을 위한 연인들의 장소가 됐지만 이 성당이 지어지고 다시 돔이 올라가고 그 안에 그림이 그려지기까지는 상상을 불허하는 인고의 세월이 있었다.

처음 성당 건축이 시작된 것은 1287년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돔 공사가 완료되고 거기에 그림이 그려지기까지는 무려 150년의 세월이 더 흘러야 했다. 도대체 왜 성당 하나를 짓는 데 한 세기를 훌쩍 넘는 장구한 세월이 필요했던 것일까. 건축의 지붕에 해당하는 둥근 돔의 난공사 때문이었다. 운동장같이 광대하게 넓은 하늘에 기둥 없이 금속의 뚜껑을 덮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바그다드 출신의 자하 하디드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했을 때도 가장 난점은 그 흐르는 듯한 구조물의 물결 디자인을 내부 기둥 없이 마치 커다란 텐트처럼 살려내는 일이었다. 그녀의 설계안이 발표됐을 때 사방에서 말도 안 된다고 융단 폭격을 퍼부어 댔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21세기에도 이런 캡슐형 지붕은 난공사 중의 난공사였는데 그 옛날 100m를 훌쩍 넘긴 공간상에 금속의 거대한 뚜껑을 덮는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엄청난 크기의 돔도 돔이지만 그 돔을 감아 돌며 거기에 그려진 그림들을 봤을 때 나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려진 최후의 심판과 천국의 그림은 불가사의 중의 불가사의였던 것이다. 까마득히 높은 비계를 놓고 그린 것일까 아니면 조각조각 그려서 이어 붙인 것일까.

성경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3층의 천국을 보고 왔노라는 고백을 한 적이 있는데 과연 저와 방불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천국이 실존으로써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 둥근 돔형에 그려진 인간 군상들을 보며 나는 문득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언캐니’ 이론을 떠올린다. 그가 말한 언캐니는 모든 인간 존재가 되돌아갈 수 있는 고향의 문이다. 즉 태초에 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문이다. 낯익은 곳, 언젠가 와본 적이 있는 곳인데 관습과 억압에 의해 낯선 곳이 돼버린 원래 익숙했던 문이다. 프로이트는 이를 모태의 자궁으로 설명하고 있다. 돔의 거대하고 둥근 형태는 어떤 면에서 영혼의 자궁 같은, 떠나온 고향의 의미로 다가온다. 모든 생명 유기체의 무의식은 원래 생태로 되돌아가려는 의지를 지닌다.

하지만 그 결과로 역설적이게도 삶의 목표가 결국 죽음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서 ‘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을 쓴 핼 포스터는 “죽음은 삶 속에 내재하고 있으며 삶은 죽음으로 가는 우회로”라고 규정한다. 다분히 노장(老莊)사상과 겹쳐지는 부분이다. 삶과 죽음의 대립적 구도는 결국 죽음으로서 통합된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끝없이 죽음으로 인한 분리와 상실을 두려워해 그것에 저항하거나 피해 가려 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김병종 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어쩌면 피렌체 사람들은 죽음을 넘어서거나 이겨내고 그 공포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땅 위에 저 천국의 모형을 세우지 않았을까 싶다. 저 성(城)이, 아니 신의 집이 지켜주는 한 우리는 안전하다는 생각. 악한 영혼이 틈타지 못하리라는 결속 같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두오모의 돔과 천장화는 마치 옛 이집트인들이 세웠던 피라미드처럼 두려움과 외경, 환희와 승리의 혼합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시각으로 피렌체의 성당을 바라보면 저 사람들은 죽음마저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갖지 않았을까 싶다. 그 믿음이 없고서야 어찌 집 한 채를 짓는 데에 150년의 세월이 걸릴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하늘의 뚜껑에 해당하는 쿠폴라(둥근 돔을 이르는 이탈리아어)에 그토록이나 집착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은 땅은 평평하나 하늘은 둥글고 인생은 유한하나 천국은 시간과 거리의 경계 없이 둥글다는 믿음의 발로였다.

실제로 천장화를 대하고 있는 동안 나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순간이동 해 있는 느낌이 들었다. 플라톤의 ‘사다리’ 대신 돌계단으로 날개 아닌 관절을 통해 고공에 이르렀지만 확실히 천상의 입구에 이르러 구원의 빛 앞에 선 듯한 황홀함이 있었다. 플라톤은 우리가 시각적 인도를 통해 더 폭넓고 긍정적인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본 최초의 철학자였다. 그는 그곳에 이르는 방법이 (야곱의 사다리가 아닌) ‘사랑의 사다리’에 오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비좁은 난간에서 중앙의 천장화에 혼을 뺏겨 있는데 사람들은 그림은 건성이고 내 등을 쉼 없이 비켜 가며 한사코 바깥문 쪽으로만 나가려 한다. 어쨌거나 당시의 피렌체 사람들은 이처럼 신앙과 통찰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영감에 의한 형상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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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는데, 보고 믿을 만한 대상이 절실히 필요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고 하셨지만 우선 그 믿음으로 들어가는 문 자체나마 희미하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 인간의 생각이었다. 천국에의 열망이 믿음으로 강화되기 위해서는 우선 바라보고 마음에 다져야 할 모형 천국이 필요했다. 그리고 두오모의 돔은 마침내 눈에 보이는 경이로운 작은 천국이 돼줬던 것이다.

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덕…연인들의 로망이 된 두오모

일본의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와 쓰지 히토나리가 함께 집필한 소설.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이별한 이후 8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2001년에 다케노우치 유타카, 천후이린 주연의 영화로 제작돼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도 소설, 영화가 다 화제가 됐다. 연인들이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다시 만난다는 설정 때문에 이 영화 개봉 이후 피렌체 관광객이 급증했다. 하지만 일본인 관광객들이 피렌체 두오모에 낙서를 해대는 통에 물의를 빚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