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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선 문화부 선임기자

이번 대선에서도 문화예술인들이 진영 싸움에 가세했다. 격전을 펼친 윤석열,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며 세 대결을 벌였다. 공개된 숫자를 보면 이 후보 지지가 많았다. 정치 진영에 속한 문예인 중 진보를 자처하는 좌파가 많다는 통설이 입증된 셈이다. 이들 중 일부는 선거가 끝난 후 SNS에 탄식을 쏟아냈다. 한 시인은 “나라가 어떻게 위태로워지는지 두고 봅시다”라고 썼고, 어느 가수는 “느그도 조국처럼 당해봐라”고 적었다.

이들은 과거 군사정권에 맞섰던 문예인들의 저항 정신을 추종한다. 세상이 변했어도 여전히 주류 기득권의 위세가 강고하다고 여긴다. 586 민주화 세력이 나라의 힘을 과점하다가 조국 사태 같은 것이 왔다는 이야기엔 귀를 막는다. 우파 진영의 반민주적 행태가 훨씬 문제라고 믿는 탓이다. 박근혜 정권의 ‘문화계 블랙 리스트’ 사건은 이들에게 확신을 심어줬다.

물론 이들 중엔 겉멋으로 가담한 유사 좌파도 꽤 있다. 내 편을 챙겨주는 ‘화이트 리스트’를 기대하며 동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에게 반대편은 경쟁자가 아니라 깨부숴야 할 적이다.

문화예술계가 정치 진영처럼 분열돼 있는 탓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그러니 윤석열 캠프의 어느 위원장이 내비친 것처럼 집권에 성공한 우파 진영이 좌파를 옥죄는 정책을 써야 할까. 우문일 뿐이다. 척결이니 배제니 이런 것이 문화정책이 될 수 없음을 박근혜 정부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박 정부의 블랙 리스트를 공격한 문재인 정권은 자기편을 챙기는 화이트 리스트에만 골몰했다. 정책 불모의 역사적 사례로 남을 것이 자명하다. 새 정부는 그런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편향 없는 원칙과 공정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게 문화 영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살리는 길이다. 당선인 공약처럼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지키길 바란다. 지원은 하되 간섭을 하지 않기 위해 정책 담당자는 문예인들과 팔길이만큼 거리를 둬야 한다. 지난달 타계한 이어령 선생은 문화부 장관 시절에 직원들에게 3불(不)을 당부했다. ‘문턱 없이’ ‘생색내지 않고’ ‘사심 없이’ 일하라는 것이다.

정부는 민간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도록 기틀을 마련하는 데 힘써야 한다. 우리 대중문화에서 보듯, 수요 지층이 두꺼워지면 창조자들의 천재성이 절로 발휘된다. 이 선생이 문화부 창설에 앞장섰음에도 생전에 “국민 일상이 문화로 충만한 날이 온다면 문화부는 없어져야 한다”고 했던 속뜻을 새겼으면 한다.

대선 국면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수위원회의 정책 수립 과정에서도 문화 영역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할 것이다. 다른 분야의 과제가 산적해 있는 탓이다. 그렇더라도 문화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국민의 문화기본권 보장, 기초예술 지원, 한류 확산 등의 방안을 실효성 있게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문화기관장 인선에서 블랙이니, 화이트니 하지 말고 실력을 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서 “그저 숨죽이고 살자”고 했던 회색 지대 고수들이 나와서 봉사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들을 찾는 것이 새 정부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