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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천 중앙대 교수 법학

대장동 사건의 핵심 인물들이 잇달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에 이어 김문기 개발1처장이 목숨을 끊었다. 진실이 밝혀지면 이들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올 상황임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검찰은 꼼짝 않고 사건을 뭉개고 있으니 대한민국이 법치국가 맞는가.

법이 사회를 지탱해 주지 않는 나라. 그런 곳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정도로는 묘사할 수 없는 참혹한 세상이다. 폭력의 광기가 난무하면서 언제 칼에 찔리거나 돌에 찍혀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여 살아야 한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든 것이 법이라는 제도다. 덕분에 칼에 찔려 죽는 일이 다반사가 아니라, 중대한 뉴스에 속하는 세상이 됐다. 많이 나아지긴 했다. 그렇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는 완성과 과거 회귀의 기로에 서 있는 듯하다.

군사정권은 6·10항쟁으로 막을 내리는 듯했으나 야권의 분열로 잠시 연장됐고, 3당 합당의 과정을 거쳐 민간인 정부로 넘어갔다. 그때 합쳐진 정당의 노선이 비교적 보수적이고 남겨진 집단이 비교적 진보적인 것은 맞다. 하지만 정당을 넘나드는 정치인이 하나둘이 아니고 모여서 하는 행동에 일관성을 찾기 힘들어서 정당의 정체성을 말하기는 힘들다. 그래도 약간의 노선 차이는 있으니 보수와 진보로 부르기로 한다.

검찰을 기준으로 한번 생각해 보자.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 수사할 기미가 보이자 혼외자가 있다는 정보를 흘려 검찰총장이 물러나게 했다. 총장이야 물러나든 말든 갈 길을 가려는 검사는 좌천시켰다. 드디어 검찰 전체가 조용해졌다. 그때 진보정당은 정권의 비리가 드러나도 수사하지 않는 검찰을 비난했다. 정권이 바뀌면 검찰이 정의를 구현하게 되겠지 하고 착각하기도 했다.

검찰은 수사기관이다.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으면 배운 대로 수사해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기소하니 범죄가 진압되면서 결과적으로 정의가 구현된다. 정권이 바뀌면서 지나간 권력에 대해 수사할 때 그냥 놔두니까 완전히 소탕했다. 그런데 한 발짝 더 나가 살아 있는 권력의 범죄도 수사하려다가 사달이 났다. 범죄 혐의가 발견됐는데도 행위 주체가 집권 세력에 속하면 수사하지 말라는 요구는 법치주의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법 앞의 평등은 진보정당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아니었던가. 기득권을 보호하자는 발상은 보수가 하는 것 아니었나.

아니었나 보다. 진보가 아니라 그냥 권력을 잡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일 뿐이었나 보다. 보수정당이 법치주의를 훼손한다고 욕했더니, 이제 진보정당은 법치주의를 아예 깡그리 무시하면서 한술 더 떠서 자기네가 하는 게 정의(正義)라고 우긴다. 보수는 검찰에 압력을 가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에 비해 진보는 부당한 압력을 가하면서도 그것이 정의라고 우긴다. 기초적인 판단 능력도 없는가 보다. 그러한 그들을 진보라고 부르고 싶지 않지만 달리 딱히 불러줄 이름도 없다.

보수는 사법기관을 몰래 조종하고, 진보는 대놓고 윽박지르니 어느 쪽을 지지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검찰마저 대선 국면을 맞아 대형 비리 사건의 진실 규명을 회피한다. 도저히 정치인에게만 나라를 맡길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정치인 아닌 정치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