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달 13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서울 동대문 흥인지문 교차로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노조법 전면 개정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찰이 불법집회라며 경고했지만, 민주노총은 집회를 강행했다. 연합뉴스

■ 복합악재, 신음하는 한국기업- ③ 노조에 기울어진 노동환경

車·조선·철강 등 주요 산업에
강성노조 집행부 잇달아 등장
“일 줄이고 월급 더 달라” 요구

해고·실업자 노조가입 허용 등
文정부 들어 편향 입법도 늘어

지난 10월 13일 현대제철은 민주노총 산하 협력사 노조와 공장 가동을 정상화하는 합의안에 전격 서명했다. 노조가 당진공장의 ‘두뇌’ 격인 통제센터를 불법 점거한 지 50여 일만이었다. 노조가 불법 점거를 풀고, 파업을 중단하는 대신 사 측은 협력사 비정규직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계획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두 달 전인 지난 8월 23일 협력사 노조 조합원 100여 명은 사 측의 직고용을 요구하며 통제센터를 불법 점거했다. 사 측은 업무방해·폭행으로 노조를 경찰에 고소했지만, 공권력은 손을 쓰지 못했다. 법원의 퇴거 결정에도 노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경영계 관계자는 “친노동 정부 아래에서는 노조가 생산시설을 불법 점거해도 사 측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이번 사태를 통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일 줄이고, 월급 더 달라” = 산업 현장이 노조리스크로 휘청거리고 있다. 노조가 국내 주요 사업장 곳곳에서 불법 및 폭력 행위를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수출을 책임지는 자동차, 조선, 철강, 건설 등 산업계 곳곳에 강성노조 집행부가 등장하면서 노사 갈등에 따른 ‘동투’(冬鬪·겨울철 투쟁)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코로나19에도 불황 터널을 벗어나 새롭게 도약해야 할 시점에 노조리스크가 불거지고 있다는 것이 재계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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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차 업계가 대표적이다. 현대자동차, 한국GM 등 국내 주요 완성차 업체엔 최근 ‘강성’ 노조 집행부가 들어섰다. ‘일은 줄이고, 월급은 더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새 집행부는 하루 8시간인 근로시간을 7시간으로 줄이고, 현행 750%인 상여금은 800%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올해까지 3년 연속 무분규로 임금·단체협상을 타결한 현대차의 내년 협상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달 초 현대중공업 지부장 선거에서도 지난 2019년 주주총회장 점거농성을 이끈 후보가 당선됐다.

◇노조에 기울어진 노동환경 = 재계는 국내 노사관계가 주요 선진국보다 대립적이고, 파업으로 인한 기업 손실이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한국의 노사협력 순위는 2019년 기준 조사대상 141개국 중 130위로 최하위권이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연평균 임금근로자 1000명당 파업 근로손실일수는 한국이 일본의 193.5배, 독일의 5.8배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노조 편향적 입법사례는 더 늘어났다. △해고·실업자 노조가입 허용 △비종사자 사업장 출입 허용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허용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으로 재계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최근엔 노조전임자가 회사에서 임금을 받으면서 노조 업무를 할 수 있는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제)의 한도를 늘리는 심의도 진행 중이다. 공공기관 근로자 대표에게 이사회 발언권과 의결권을 주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도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다.

문제는 늘어나는 노조의 권한과 달리 노조의 과도한 요구와 불법 투쟁에 대응할 재계의 대응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한 레미콘 업체 관계자는 “노조가 사 측이 아닌 정부 정책 변경을 요구할 때도 무조건 파업을 하다 보니 현장이 멈추기 일쑤”라면서 “파업 시 노조의 사업장 점거를 금지하고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노조에 기울어진 노동환경이 노조를 더욱 투쟁적으로 만들고 노사관계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투쟁 일변도 강성 노조에 대한 반발로 새로운 노조도 탄생하고 있다. GS건설, 쌍용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노조는 최근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에서 탈퇴하고 ‘한국건설기업사무노동조합연맹’을 결성했다.

황혜진 기자 best@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