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병종, 무제, 30×25㎝, 혼합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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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종의 시화기행 - (95)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그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이
성호만 긋고 일어서는 사람도

혀로 중언부언하기엔 거룩한 성소에
아득히 이어지는 천장의 금빛 광휘
그 끝없이 이어지는 빛의 우주라니

지나가는 한줄기 내 욕심 하나…
죽어 눈떴을 때 저런 빛 속에 있길

작고 반들반들하고 오래된 돌들의 골목을 걸어 성당을 찾아간다. 이 좁고 불편한 돌길은 걸을 때마다 이곳으로 지나간 시간과 역사를 생각하라는 것인가보다. 점심을 준비하는 걸까. 여기저기에서 피자 굽는 냄새가 퍼져온다. 유리창 너머로는 맥주잔을 기울이는 모습도 보이고 앞치마를 두른 채 음식을 나르는 사내도 보인다. 신(神)의 마을에 사는 인간 동네의 풍경이 따뜻하다. 문득 허기가 들었지만 오늘만은 뎅겅뎅겅 종소리 울리는 쪽을 따라 육체보다 영혼의 허기를 달래줄 곳으로 간다.

이미지 크게보기 예수 탄생 말구유 앞의 김병종 화백.

그런데 성당 입구에는 웬 집총한 군인들이 서 있고 세관을 통과하듯 짐 검사를 받는다. 험한 시절이니… 하다가 문득, 그리스도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 마호가니 빛 장중한 문에 눈길이 끌린다. 저 문을 통과해 들어가기 위해 죄의 문제를 묻지 않아 다행이다 싶다. 소지품보다 당신이 지은 죄의 목록을 먼저 꺼내 보이라 하지 않는 것,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밖엔 어제부터 내린 비가 아직도 오락가락하고 하늘은 회색 구름으로 뒤덮여 있는데 한 발짝 사이로 성당 안은 전혀 다른 세계다. 고요. 그리고 오래된 시간의 냄새. 어디서인지 알 수 없는 그레고리안 성가 같은 하모니,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는 대리석 열주들. 여느 성당과 달리 예배용의 긴 의자들 없이, 중앙 통로를 비워 두었다. 묵직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와 성가의 코러스만 없다면 그냥 여느 미술관과 달라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미지 크게보기 김병종 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좌우의 벽화들과 성상 조각들을 보며 긴 회랑을 걸어 제대 앞쪽으로 가니 지하 쪽에서 환한 빛이 올라오고 있다. 그리스도가 태어나신 베들레헴의 그 말구유를 보관한 은색 함이란다. 사람들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짧은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냥 성호만 긋고 일어서는 이도 보인다. 나도 잠시 무릎을 꿇고 앉아보지만 머릿속이 진공이다. 침묵의 언어로서나마 기도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막막하다. 게다가 내 입술의 부정한 혀로 중언부언하기에 성소는 너무나 거룩했다. 그러고 보면 언어 아닌 성호만 긋고 일어서는 말 없음의 신체 언어가 훨씬 좁은 것 같다. 사실 속죄 기도라면야 나도 석 달 열흘쯤은 드릴 수 있다. 통곡으로도 모자랄 죄의 목록은 남부럽지 않게 가지고 있으니까. 옆구리에서 종일토록 소리 지르는 원숭이 새끼처럼 성가시게 붙어 있는 죄, 죄, 죄. 그러니 나 또한 종국에는 마음의 문설주에 바를 어린양의 피 한 방울을 나눠 주십사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천장의 금빛 광휘들은 아득히 이어지며 분절하고 또 분절해 다시 몇 개의 천장을 만든다. 아, 그 끝없이 이어지는 빛의 우주라니. 사물은 모두 그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차마 버릴 수 없이 지나가는 한줄기 욕심 하나. 어느 날, 문득 죽어 눈떴을 때도 나 또한 부디 그분의 저런 빛의 나라 속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

일어서서 다시 중앙의 길고 넓은 대리석 홀을 걸어 나오는데 천장 가까운 쪽에 하얀 창 하나가 보인다. 그새 하늘이 맑아진 걸까 이제는 환한 바깥의 빛이 그 창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문득 그 빛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너의 발걸음을 정(靜)하게 하라. 나의 가르침을 마음으로부터 내려놓는 일 없이 너의 길을 가라. 넘어지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나마 부지런히 걷고 걸으면 어느 날 그 길 끝에서 참 빛을 만나게 되리니….

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이미지 크게보기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눈 내린 곳에 교회 세우라는 마리아 계시로 지어… 로마 건축양식 4大 성당

고대 로마 건축양식의 4대 성당 중 하나다. 1348년의 지진으로 큰 손상을 입었지만 오랜 복원과 보수 과정을 거쳐 원래의 상태에 가장 가깝게 유지되고 있는 대성당이다.

위대하다는 의미의 마조레(Maggiore) 대성당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거대한’ 성당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데 한때는 교황의 임시 관저가 되기도 했다.

전설에 의하면, 352년 8월의 어느 무더운 날에 교황 리베리가 꿈을 꾸는데 꿈속에서 성모 마리아가 눈이 내린 곳에 교회를 지으라는 계시를 내려서 건축이 시작됐다고 한다.

꿈에서 깬 교황이 에스퀼리노(Esquilino) 언덕을 걷다가 실제로 흰 눈이 내린 곳을 발견했고 그 터 위에 세워졌다는 것.

교회 내부에는 지하 묘지와 박물관이 있는데 특히 이스라엘에서 가져왔다는 예수 탄생 말구유가 있대서 관광객의 주요 순례지가 된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