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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장민지 지음│서해문집

한국인에게 ‘집’만큼 복잡한 심정을 불러일으키는 말이 또 있을까. ‘집밥’ ‘단골집’처럼 따뜻한 이미지도 있지만, 대개 ‘부동산’ ‘아파트’부터 ‘대출’ ‘투자’ 그리고 ‘똘똘한 한 채’ 등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부분을 떠올릴 것이다. 이때 그 집은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에게나 편안한 공간도 아니다. 즉, 집은 모두에게 다른 방식으로 경험된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지방에서 서울로 이주해 혼자 사는 ‘여성청년’(저자가 20∼30대 여성을 하나의 범주로 묶은 용어)에게 주목했다. 여기엔 여러 문제의식이 작동했다. 우선 그동안 집을 둘러싼 논의들이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중산층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강했다는 것이며, 청년층의 빈곤한 주거환경을 지적하는 담론 역시 세대나 계급 문제로만 치환돼 다양한 젠더 문제를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성별 임금 격차가 3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인 한국에선 여성이 주거 비용에 대한 부담을 더 많이 진다. 또, 상대적으로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여성에게, 열악한 주거환경은 비용을 넘어 실제적인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 한국 사회에서 ‘여성청년’에게 집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 건 시의적절하다. 젠더 감수성이 상식이 됐고, 나라가 ‘집’ 얘기로 매일 시끄러운 이때에 말이다.

책은 열두 명의 여성청년을 인터뷰해 이주한 1인 가구 여성이 살아가는 세계를 들여다본 미시 생활사 성격을 띤다. 저자 스스로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고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와 다시 20여 년을 거주한 여성청년이기도 한데, 책에는 그 경험도 자세히 담겼다. 저자는 입학 초 서울에서 지내는 때가 여행처럼 느껴지고, 방학 때 내려간 ‘집’이 편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각은 역전한다. 밤늦게 학교 앞을 지나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친구 이야기가 회자되고, 자취하던 한 친구는 우울증으로 원룸 옥상에서 스스로 떨어져 죽었다. 책은 이렇게 여성이 혼자 살면서 겪는 공포와 트라우마뿐만 아니라, 가사노동과 성생활의 해방 등 여성청년들이 집을 어떻게 주체적 장소로 변모시키는지 그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했다. 특히, 저자는 물리적이 아닌 심리적 ‘집’이 돼 준 SNS 등 디지털 세상의 역할도 짚어낸다.

책은 여성의 주거 환경에 대한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과거와 전혀 다른 이유로 이동하는 여성청년을 ‘가시화’하는 것만으로도 소임을 다한다. 무수한 세대 담론 속에서 은근슬쩍 지워지는 여성의 자리를 드러내 주니까. 저자는 특히 일상생활, 공간, 경험 등을 여성청년 자신의 목소리로 서술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페미니즘 담론과 함께 최근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유사 가족 형태를 제시하는 책들이나, 집과 부동산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담은 무수히 많은 에세이를 보면 이 같은 저자의 주장이 당위적이고 필연적 흐름 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284쪽, 1만8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