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017년 7월 18일 국제 로봇공학 올림픽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한 ‘아프간 드리머스’가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에서 함둘라 모히브(가운데) 당시 주미 대사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탈레반 장악 이후 신변 위태… 일부는 카타르로 피신

히잡 두른 6명의 10대 소녀들
4년전 워싱턴 국제올림픽 참가
아프간 여성 희망의 상징 부상
트럼프·美국민 등 열렬한 환영

헤라트 출신 소녀 25명·멘토
“끔찍한 일 벌어질까 두려워”

4년 전 여름 미국 덜레스 국제공항. 평일 자정을 넘긴 시간임에도 입국 게이트 양쪽엔 30여 명이 꽃다발과 플래카드를 들고 줄지어 서 있었다. 1시간이 넘는 기다림 끝에 게이트가 열리고 히잡을 두른 6명의 10대 소녀가 공항으로 들어섰다. 군중은 박수갈채와 함께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려 휴대전화를 치켜들었고, 기자들이 몰려들어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이들은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 로봇공학 올림픽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찾은 ‘아프간 드리머스(Afghan Dreamers)’였다. 소녀들에게 이 같은 관심이 쏟아진 배경에는 아프가니스탄 서부 도시 헤라트에서 워싱턴까지 이들이 거쳐야 했던 ‘험난한’ 여정이 있었다. 헤라트에서만 약 150명의 고등학생이 이 대회에 지원했고, 수학·과학 시험을 거쳐 이 중 15명이 최종 선발됐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도 6명의 소녀만이 가족들로부터 대회 참가 허락을 받았다. 힘겹게 가족들을 설득시키고 나니 이번엔 출국을 위한 비자 발급이 2차례나 거부됐다. 이 때문에 이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헤라트에서 수도 카불까지 500마일이 넘는 위험한 길을 왕복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출국 직전 아프간 세관은 반군의 손에 들어갈지 모른다는 이유를 들어 로봇 키트를 수개월간 압류했다. 당시 주미 아프간 대사였던 함둘라 모히브가 나서서야 당국은 키트를 돌려줬다. 대회 시작 2주 전이었다.

이들의 여정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까지 개입하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워싱턴에 도착한 후 소녀들은 이방카 트럼프로부터 환대를 받았고, 의회의사당에도 초대됐다. 소녀들은 “아프간 여성들도 교육받을 수 있고, 해외를 오갈 수도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동시에 “전쟁과 테러, 성차별을 극복한 아프간”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들의 얼굴은 주아프간 미국 대사관 벽에 새겨졌다.

지난 15일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이후 이들이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으며, 신변이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19일(현지시간) 전했다. 아프간 드리머스는 워싱턴 대회에 참석한 이들을 포함, 12∼18세 사이의 헤라트 출신 소녀 25명과 멘토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민간 항공기를 통해 카타르로 피신하는 데 성공했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아프간에 고립돼 있다. 2018년 캐나다에서 열린 로봇 대회에서 쥐스탱 트뤼도 총리를 만난 인연이 있어 캐나다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 이들을 돕고 있는 인권 변호사 킴벌리 모틀리는 “소녀들이 극도의 공포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모틀리는 “탈레반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어린 소녀들에게 신부가 되라고 강요하고 있다”며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 로봇팀은 성공하는 꿈을 꾼다. 이들에게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까 두렵다”고 덧붙였다. 로봇팀을 설립한 로야 마붑은 “탈레반은 샤리아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여자아이들의 교육을 허용한다고 했다”며 “이것이 뭘 의미하는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장서우 기자 suw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