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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 ‘광복절 無제안’ 배경

文, ‘평창구상’ 경험 살려 추진한 ‘도쿄구상’ 무산… 임기 종료 앞두고 베이징올림픽에서 평화 이벤트 은밀 추진 관측
정부의 ‘북한 몰입주의’는 北 선택지만 높이고 南 전략적 위상 낮춰… 한미동맹·한일협력 통한 근본 변화 모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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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경축사는 오늘의 한국을 이룩했다는 자부심과 미래에 대한 꿈을 제시하는 게 상례였다. 그렇게 볼 때 최근 북한이 한·미연합훈련을 맹비난하고 한·일 관계가 최악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도 문재인 대통령의 경축사는 소극적이었다. 특히 북한과 일본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이 없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역대 대통령이 1년 중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발표해 온 광복절에서 문 대통령은 왜 아무런 제안을 하지 않았을까.

◇광복절 제안 없었던 文

문 대통령은 북한에는 ‘평화’, 일본에는 ‘대화’라는 기존의 원칙론만 반복함으로써 경축사는 ‘김빠진 맥주’ 꼴이 됐다.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어떤 해결 의지도, 철학도, 메시지도 보이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국내외 균형을 생각한 연설이라고 평가한다. 국내의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면서 원칙론으로 북한과 일본을 자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북 관계에서 파격적 제안을 했을 경우 북한으로부터 반격을 당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대일 정책에서도 전향적 제안을 하면 지지 세력을 화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안을 무시한 채 원칙론만 내세워 논쟁을 회피하는 건 책임 있는 정부가 취할 행동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그간 지나친 ‘북한 몰입주의’로 북한으로부터 무시당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북관계에서 성과를 내려고 했던 게 사실이었다. 일반 국민은 김정은의 동생이자 북한 정권 실세인 김여정의 막말에 한국 정부가 끌려다닌다고 비판하지만, 문 대통령과 청와대·정부는 ‘북한 퍼스트’의 관점을 버리지 않았다. 북한과 진전된 평화를 이루려면 장기적 관점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문 정부는 ‘단기 성과’에 대한 조급함으로 꽉 차 있다. 많은 전문가는 북한이 ‘핵보유국’을 넘어 ‘핵 실전 배치’에 들어가는 상황을 우려하지만, 집권세력의 위기감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임기의 마지막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과 일본을 겨냥한 대담한 제안을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없었다. 물론 속셈은 다를 수 있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사실은 ‘깜짝 쇼’를 준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임기 내 이른바 한반도 평화 구상을 급진전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최근 막을 내린 도쿄(東京)올림픽 개최 전만 해도 남북한 올림픽 참석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 구상을 재가동하겠다는 생각을 구체화했던 일이 있었다. 이른바 ‘도쿄 구상’이다.

◇평창 구상-도쿄 구상-베이징 구상

남은 임기 내 문 대통령의 대북 정책 목표는 ‘대화의 모멘텀을 최대한 살려 남북관계를 급진전시키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이와 관련, 내년 2월 베이징(北京) 동계올림픽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종전선언 등을 목표로 하는 ‘베이징 구상’을 다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 등을 잇달아 성사시켰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평창 구상’의 경험을 올해 도쿄올림픽에서 재현하려 했던 ‘도쿄 구상’은 북한의 올림픽 불참으로 물 건너갔다. 결국 문 대통령은 내년 2월 4∼20일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한반도 평화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를 노려야 할 상황을 맞게 됐다. ‘베이징 구상’의 가장 큰 이벤트는 역시 남북 정상이 만나는 것이다.

다만 ‘베이징 구상’은 내년 3월 9일로 예정된 차기 대통령선거를 목전에 둔 상태에서 전광석화처럼 성사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여러 국내외적 부담과 위험 요인을 갖고 있다. 문 대통령 필생의 사업이며 임기 내 마지막 남북 프로젝트이자 ‘문재인판 벼랑 끝 전술’인 셈인데, 그만큼 은밀하게 추진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대통령이 광복절에서 사실상 ‘무(無) 제안’을 견지했던 이유다.

하지만 현실은 남북 간 화상 정상회담도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북한이 교섭에 응할 가능성이 낮다. 북은 미국과 직접 교섭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남이 미국을 설득할 수 없을 거라는 불신을 함께 갖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문 정부와 교섭하더라도 그 합의가 다음 정권에서 지켜지겠냐는 불안감도 있다.

◇‘북한 몰입주의’ 안돼

문 대통령과 청와대·정부의 일방적 대북 대화 추진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무엇보다 정부의 조급함이 북한의 선택지를 높일 수 있다. 문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반전을 꾀하려고 하면 할수록 북한에 칼자루를 쥐게 해준다. 무리한 남북 프로젝트 추진은 북한으로 하여금 대화를 빌미로 국내 정치에 개입하도록 만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부의 과도한 남북 깜짝 쇼 집착은 국제관계에서 한국의 전략적 위치를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문 정부에 남북문제의 자율성을 주는 것 같지만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단기 성과에 집착해 조바심을 낼 것이 아니라, ‘북한 비핵화’를 포함한 근본적인 변화를 염두에 둔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언론 기고에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이외 다른 출구가 있을 것으로 믿게 만드는 대북 정책은 역효과만 낸다”고 지적했다. 북한에 당근만 줘왔던 정부가 최대한 효과적 제재 전략을 개발하고 강력한 채찍을 가해야 한다.

대일 정책에서 문 대통령은 무기력함마저 내보였다. ‘반일=애국’이라는 기개가 사라진 것은 좋으나 양국 관계를 풀려는 노력 또한 보이지 않는 게 문제다. 한때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하려 했던 문 대통령이 이번 경축사에서 완전히 소극적인 기조로 돌아선 것은 ‘도쿄 구상’ 실패 이후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낮게 평가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역시 북핵 문제 해법을 한국에 의존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일본은 한국의 중재가 없더라도 일본인 납치문제와 관련해 직접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혐한에 치우친 대한(對韓) 강경론이 일본 정치를 지배하는 상황이다.

◇장기전에 대비해야

미·중 전략경쟁의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서 문 대통령은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발전시키면서 ‘북한 몰입주의’에서 벗어나 한·일 협력을 회복하는 대외관계를 추진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중국의 패권 확대를 다국간 안보 틀에서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마지막 8·15 경축사에 이런 철학과 메시지가 담기지 않아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전 현대일본학회 회장


■ 세줄 요약

‘광복절 제안’ 없는 文 : 대통령은 남북관계 ‘단기 성과’에 대한 조급함과 ‘북한 몰입주의’에 빠져 있음. 그런데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사실상 아무런 제안이 없었음. 하지만 내적으로는 남북 ‘깜짝 쇼’를 준비한다는 관측.

평창 - 도쿄-베이징구상 : 文은 ‘평창 구상’ 성공의 경험으로 ‘도쿄 구상’을 추진했지만 무산. 대신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의 남북 이벤트 추진 관측. 내년 대선을 앞둔 ‘베이징 구상’엔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 따름.

‘북한 몰입주의’ 안돼 : ‘베이징 구상’을 은밀하게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광복절 無 제안’의 배경. 하지만 ‘북한 몰입주의’는 한국의 전략적 위치를 어렵게 함. 한·미 동맹과 한·일 협력으로 ‘북한 비핵화’ 등 장기전에 대비해야.


■ 용어 설명

‘평창 구상’이란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킨다는 구상. 실제 올림픽 직후 세 차례의 남북 정상 만남과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성사됐음.

‘도쿄 구상’은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평창 구상’의 성공적 경험을 살려 남북관계를 회복하고 일본과의 정상회담도 추진하겠다는 구상. 하지만 북한의 올림픽 불참 결정으로 이 구상은 무산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