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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권 사회부 차장

코로나19 백신 수급 차질로 하루 몇천 명 수준까지 떨어졌던 1차 접종이 다시 하루 50만 명 안팎으로 올라왔다. 공급 차질을 빚었던 모더나 백신도 내달부터 다시 공급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앞으로 백신 접종자가 늘어나면 4차 대유행도 극복하고, 전 국민 집단면역에 도달할 시점도 앞당길 수 있다. 또 과거 신종 플루를 극복했던 타미플루와 같은 경구용 치료제가 머지않아 출시되면 일상의 정상화도 가능하리라는 기대감이 커진다.

우려되는 점은 이런 상황 변화가 그동안 정부의 방역 실패를 자칫 용인하는 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방역 당국이 다시 잘하는 것처럼 포장돼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또다시 실수를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정부는 초기 백신 확보 실패 등 다수의 문제점을 드러냈지만,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되레 선진국에 비해 늦은 접종률 목표를 세워놓고, 상반기에 이를 초과 달성했다는 홍보에 치중했다. 이는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 정부는 전문가의 조언을 무시한 ‘아니면 말고 식’의 정치 방역을 반복해 오면서 국가를 위기 상태로 몰아왔다.

1차 대유행부터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2020년 1월 16일 국내에 첫 확진자로 연결되자, 정부는 1주일 뒤에야 위기경보 수준을 ‘경계’로 뒤늦게 격상했다. 이후 대한의사협회는 초기 방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7차례나 중국으로부터의 입국금지조치를 정부에 건의했지만, 철저히 무시됐다. 이런 뒤늦은 조치가 한 달 뒤 대구·경북발 1차 대유행의 결정적 요인이었지만, 당시 정부는 1차 유행의 방역 책임을 신천지 때문으로 몰아갔다. 2차 대유행 대응 과정은 더하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말 코로나19에 지친 국민을 위로한다면서 8월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외식·여행 쿠폰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방역보다 여론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정부의 미숙한 판단이 2차 대유행의 주된 원인이었지만, 정부는 이번엔 2차 유행의 원인을 8·15 광복절 집회 탓으로 돌렸다. 광화문 집회 3일 전부터 감염이 확산하면서 잠복기를 고려하면 광화문 집회가 2차 대유행의 원인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국민이 지난 연말 연초를 우울하게 보내게 했던 3차 대유행도 정부의 실기 때문이다. 백신도 없는 상황에서 10월 11일 거리두기 단계를 1단계로 완화한 게 결정적이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거리두기를 완화하면서 “코로나를 방역 통제 속에 둘 수 있다는 자신감에 근거한 것”이라는 발언까지 했다. 이번 4차 대유행도 “델타 변이는 우려 수준이 아니다”라며 거리두기 완화와 백신 인센티브 등을 강행한 게 주된 원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전문가 집단의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고 정치 방역으로 일관하면서, 방역 실패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반성도 하지 않는 데 있다. 그나마 해외에서 인정받은 초기 K-방역의 성과는 정부의 통제와 거리두기를 서구에 비해 유달리 잘 따라준 국민의 힘이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통제를 따라준 대한민국 국민의 방역 의식은 이미 세계 1등이다. 정부만 제대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