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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무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

우리 공정거래법은 ‘부당한 공동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판매자들끼리 서로 경쟁하는 대신, 가격을 정해 놓고 그 이하로는 팔지 않기로 협의하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공정거래법은 다른 법령에 의한 정당한 공동행위에 대해서는 법 적용을 면제하고 있다. 해운법에 따라 컨테이너 정기선사들의 운임이나 선박 배치 등에 관한 공동행위가 대표적이다.

컨테이너 정기선 서비스는 KTX나 노선버스같이 시간표를 정해 놓고 손님이 있든 없든 다녀야 한다. 그래서 업계에선 세계 경제의 기초 인프라이기에 적정한 운임을 보장하고 안정적인 서비스를 확보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법 제도가 일찍부터 자리를 잡아 왔다.

독점적인 지위 남용에 대한 불만이 유엔 무역개발기구(UNCTAD)가 탄생하면서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1964년 탄생한 UNCTAD는 초기부터 개발도상 회원국들의 강력한 문제 제기에 부닥쳤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77개국 그룹(G77)의 불만은, 국제 해운시장이 선도 해운국 기업의 해운동맹에 장악돼 개도국은 자국 선대를 갖추기도 힘든 데다 그나마 선박을 도입해도 해운동맹에 화물을 모두 빼앗겨 실어 나를 화물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유 경쟁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수입국과 수출국이 운송권을 공평하게 배분하는 방식으로 풀기로 하는 국제협약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그 협약이 바로 1974년에 채택된 ‘해운동맹의 행동규약에 대한 국제협약’이다. 협약이 표방하는 3대 목표는 △세계 해상 교역의 순조로운 확장을 위한 기반 조성 △정기적으로 효율적인 해운 서비스 촉진 △정기선 해운 서비스 공급자와 수요자의 균형 확보로서, 해운동맹이라는 공동행위의 타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렇듯 해운 기업의 공동행위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제도로서, 우리나라는 해운법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완성된 법률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해운법에 따른 절차를 밟아 공동행위를 펼치고, 제도의 미비한 점이 발견되면 해운법에 따른 벌칙이나 시정 조치를 통해 당초의 취지를 살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는 동남아 항로에 정기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운 기업들을 대상으로 3년에 가까운 장기 조사를 마치고 지난 5월 보고서를 마무리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해당 해운 기업의 공동행위는 절차적 요건을 준수하지 못했으므로 공정거래법에 따른 부당공동행위에 대한 처벌(8000억 원의 과징금 포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조사 중인 한-일 및 한-중 항로까지 합치면 과징금 총 규모는 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과징금 부과가 현실화한다면, 해당 중소 해운 기업들은 선박을 모두 내다 팔아야 한다.

절차적인 요건을 충실하게 지켰다는 해운 기업의 주장은 차치하고라도 해운 기업의 공동행위는 해운법에 따라 조치할 일이다. 설사 미흡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해운기업의 공동행위는 해운법에 따라 조치할 일이지 공정거래법에서 규율하는 부당공동행위로 간주하는 것은 그야말로 ‘부당한’ 처사가 아닌가.

해운산업의 재건과 수출 기업의 해운대란(海運大亂) 해소에 온 힘을 모아야 하는 이때 공정위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