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 = 전승훈 기자

■ KIST 임정아·주현수 연구팀 세계 첫 개발

여러 가닥 갈라진 뇌 신경세포
한 번에 자극 받아들이는구조

2019년에 동일한 구조로 개발
인공신경섬유소자로 발전시켜

뇌 신경세포망을 물리적으로 모사(模寫)할 수 있는 인공 섬유 소자가 우리나라 연구진에 의해 세계 최초로 개발됐다. 그동안 딥러닝 등 소프트웨어 기술로 구현하던 인공지능(AI)을 하드웨어로도 만들어 보려고 뇌 신경을 모방한 뉴로모픽(neuromorphic) 반도체가 시도된 적은 있다. 그러나 뇌 신경세포(뉴런)와 그 연결부(시냅스)까지 눈에 보이는 실물로 제작할 수 있도록, 섬유형 트랜지스터로 살아있는 신경섬유처럼 신경망을 구성한 기술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처럼 생긴 인공섬유는 신경세포 같은 섬유 형태를 가지면서 시냅스 네트워크 구현까지 가능한 소자이다. 이렇게 개발된 섬유형 네트워크는 앞으로 지능형 웨어러블 기기, 로보틱스 분야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광전소재연구단 임정아, 주현수 박사 연구팀은 지난 9일 뉴런과 유사한 형태와 기능을 갖고, 뇌의 신경세포망과 같은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인공 신경섬유 소자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유기 반도체가 코팅된 전극 섬유 구조체를 게이트 절연막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온 젤로 감싼 형태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아 KIST 주요사업 및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 지원사업으로 수행됐으며,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 최신호에 게재됐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컴퓨터가 처리해야 할 데이터의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기존의 연산방식은 데이터를 순차적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방대한 양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막대한 전력이 소모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연산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한데, 많은 연구자가 생물의 뇌 작동방식과 구조를 모방해 적은 에너지로도 많은 양의 연산이 가능한 뉴로모픽 컴퓨팅과 이를 위한 저전력 뉴로모픽 하드웨어(neuromorphic hardware·생물의 뇌의 작동방식과 구조를 모방한 하드웨어)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컴퓨터 연산을 뇌와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기 위해 뇌의 뉴런과 시냅스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소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기존의 연구는 뉴런 혹은 시냅스 동작에 대한 소자를 각각 개발해오던 것과 달리 KIST 연구진은 두 가지 동작 특성을 모두 갖는 개별 소자인 인공 신경섬유를 개발했다. 꼬아진 전극 구조를 바탕으로 한 실 모양의 트랜지스터에 다중의 게이트를 연결해 실제 생물의 신경망 구성을 모방한 것이다. 이 소자들을 연결하면 간단히 신경망 네트워크 시스템을 제작할 수 있게 된다.

뇌의 신경세포는 끝이 여러 가닥으로 갈라져 여러 자극을 한 번에 받아들일 수 있는 섬유 구조를 가지며 전기 자극에 의한 이온의 이동으로 신호전달이 이루어지는데, 연구진은 이와 동일한 구조로 2019년 개발한 섬유형 트랜지스터 소자를 활용, 인공 신경섬유로 발전시켰다. 섬유형 트랜지스터의 전극으로 들어오는 전기적 자극에 따라 반도체 소재와 절연막에 존재하는 이온 사이에 산화 환원 반응이 일어나도록 설계해 시냅스처럼 전기신호의 강도를 기억해 다음 시냅스로 전달할 수 있는 메모리 트랜지스터를 개발한 것이다. 개발된 인공 신경섬유는 여러 개의 전극에서 다발적으로 들어오는 전기적 신호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소자에서 통합되는 뉴런과 같은 특징을 보였다. 단기강화(STP)와 장기강화(LTP)의 동작은 생물의 신경세포 동작 특성과 매우 유사한 것이다.

연구팀은 개발한 인공 신경섬유를 엮어 100개 시냅스로 구성된 인공신경망까지 제작해본 결과, 안정적인 소자의 특성을 확인했다. 게다가 제작된 인공 신경섬유 소자들을 이용해 음성인식 학습을 진행한 결과, 88.9%의 높은 인식률을 달성했다. 연구 개발을 주도한 KIST 주현수, 임정아 박사는 “개발된 인공 신경섬유 소자는 실제 뇌 신경망과 유사한 대규모, 저전력, 고신뢰성 인공신경망을 실현할 수 있는 원천기술”이라며, “인공 신경섬유 소자의 유연한 특성을 바탕으로 웨어러블 기기, 로보틱스 등에 활용해 확장할 수 있는 연구결과”라고 평가했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