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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러의 단편 ‘저녁과 아침과 밤’

린은 ‘듀리에-고드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병동에 잠시 입원했다가 퇴원 후 집 욕조에서 손목을 그었다. 다행히 어깨가 탈골될 정도로 문을 부수고 들어온 아버지 덕분에 살았다. 하지만 린은 그런 아버지를 원망한다. 그 병을 물려준 사람이 아버지며, 아버지 역시 그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린이 대학으로 떠나기 직전, 어머니를 죽인 후 피부를 모두 벗겼고(이 순서는 명확하지 않다. 피부를 벗긴 후 죽였을 수도 있다. 죽인 후 피부를 벗긴 것은 린의 희망이다) 아버지 역시 본인의 피부와 뼈를 스스로 파고들어 죽기 전에 제 심장을 만지는 데 성공하며 자살했다.

아버지가 린에게 물려준 병은 이것이다. ‘듀리에-고드 질환’. 줄여서 ‘DGD’라 부르는 정신질환이다. 자기가 몸 안에 갇혀 있다고 믿으며 이 살덩이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믿는 환각, 그로 인해 나와 내 주변에 있는 인물들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유전적 병이다. 이 유전질환은 우성으로 부모 중 한 명만 있어도 자식에게 반드시 유전된다. 사회는 그 병에 걸린 사람들을 병동에 가두고 사회에서 매장시키기 위해, 그리고 이 병의 고리를 끊기 위해 그들의 결혼을 금지하고 아이를 낳지 않도록 권유한다.

꽤 충격적인 유전질병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집 ‘블러드 차일드’(비채)에 실린 단편 ‘저녁과 아침과 밤’이다. 작가는 DGD를 만들기 위해 3가지의 유전질환을 참고했다. 하나는 환각, 치매, 무도병을 동반하는 헌팅턴병, 또 하나는 유아가 특별한 규정식을 먹지 않으면 발병하는 지적장애 페닐케톤뇨증, 마지막으로 지적장애와 자해행위를 유발하는 레슈-니한 질환이다. 한마디로 DGD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특정 나이가 지나면 자신을 해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고, 자연스럽게 이 병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오래 살지 못한다. 그래서 주인공 린은 자신의 최후가 아버지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가진 정신질환이 예술로 표현된다는 설정이다. 작가는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나를 구성하는 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살점을 뜯고 씹어 먹으며 스스로를 파괴해야만 하는 다소 파격적인 유전질환을 만들었다. 이 병을 유발시키는 유전자는 우성 유전자 단 하나다. 그리하여 반드시 유전될 수밖에 없는 저주. 5만 개의 유전자 중 단 하나의 유전자로 인해 우리의 삶이 이토록 달라지고, 그것은 결국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작가는 묻는다. 유전자 하나가 우리를 모두 규정하고 삶을 정한다면 도대체 나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란 무엇인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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