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 = 전승훈 기자

민주공화국, 권력 원천은 모든 국민… 통치는‘선출’만 아닌 다수분산 의미
대통령제 시작한 美 엄격한 권력 분립… 백악관, 의회와 타협 필수로 여겨
우리 헌법, 의원 장관 겸직 등 의원내각제 요소로 대통령 견제장치 있지만
압축성장 과정 등 거치며 강력한 리더십 필요 명분 대통령 권한 비대해져
“헌법정신이 말하는 국정은 국무회의 중심이지만 실제는 靑중심인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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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를 주재하는 사람(President)’은 어떻게 대통령(The President)이라는 ‘절대권력자’가 됐는가. 절대군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도 절대권력에 버금가는 권력자는 존재한다. 우리 헌법으로 보자면 바로 대통령이다. 절대군주와 달리 임기를 비롯해 권력 행사에 각종 제한을 받지만, 대통령이란 지위는 현대판 절대권력의 대표적인 사례다.

입헌주의에 입각한 대통령제를 처음 창안한 미국의 경우, 제도 초기 대통령으로의 권력 집중을 우려하는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에 오르면서 미국 대통령의 권력은 이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정도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한국의 대통령도 강력한 권력과 권한을 행사한다.

‘회의주재자’라는 어원이 보여주듯, 당초 대통령제는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왕이나 황제를 견제하고 그 권력을 분산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다. 이에 따라 대통령의 권한과 지위가 지나치게 강화되고 부작용이 나타나면 헌법과 법률 개정 등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헌법 정신에 담긴 대통령의 역할과 권한을 확인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한다.

◇민주공화국과 대통령제 = 현행 헌법은 1조 1항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에서 ‘공화’란 왕 같은 통치자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것이 아니라 2인 이상의 다수에게 권력을 분산해 지배한다는 의미다. 다만, 복수의 귀족이 국가 권력을 공유하는 형태도 공화제 또는 공화정으로 분류될 수 있는 만큼 ‘민주’라는 요소와 꼭 함께 가야 한다. 민주란 주권이 귀족 등 일부 계층이 아닌 모든 국민에게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헌법이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한 것은 국가 권력이 원천적으로 주권자인 ‘모든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민 중 일부를 대표자로 선출해 권력을 위임한다는 의미다. 이는 권력 집중을 차단하는 권력 분립 정신으로 연결된다.

특히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인 몽테스키외는 저서 ‘법의 정신’에서 “권력을 쥐면 누구나 그것을 남용하려 한다는 것이 영원한 경험법칙”이라며 국가의 기능을 입법·행정·사법으로 정립할 것을 주장했다. 그의 삼권분립 이론은 현대의 다양한 정부 형태로 이어졌다. 입법·행정으로부터 일정한 거리 유지와 독립이 불가피한 사법권을 제외하고, 입법권과 행정권의 관계에 따라 정부 형태도 달라진다. 입법권과 행정권이 엄격하게 분리된 게 대통령제, 두 가지가 밀접하게 연관된 게 의원내각제다. 두 제도의 절충형인 이원정부제도 등장했다. 미국이 창안한 대통령제도 결국 이러한 권력 견제와 분립의 정신에서 처음 등장한 셈이다.

◇대통령 권한 강화와 ‘제왕적 대통령’의 등장 = 미 국무부가 해외 대사관을 통해 발행하는 ‘미국의 역사’에 따르면, 18세기 미국 정치인들은 몽테스키외의 이론적 원칙에 집착했다. 각 주(州)가 느슨하게 연결돼 있던 당시 미국은 절대군주 같은 존재가 자치권을 간섭하는 것을 우려했다. 따라서 미국의 초기 대통령 모델은 현재와 같이 국내외적으로 강력한 권한을 지닌 자리가 아니었다.

미국에서 대통령제가 정치 체제로 완성되기 전 ‘프레지던트’는 영국의 식민지 지배에 대응하기 위한 대륙회의 등에서의 회의 주재자를 이르는 명칭이었으며, 회의나 의식을 주재한다는 뜻의 영어 ‘preside’에서 유래했다. 178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국은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제헌회의를 개최했는데 이때 회의 주재자, 즉 의장이 조지 워싱턴(1732∼1799)이었다. 그는 2년 뒤 미국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프레지던트는 이후 청나라에서 ‘백리이천덕(伯理爾天德)’이라는 한자어로 음역되고, 조선에서도 한때 미국 대통령을 이렇게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타국의 고위직을 설명하는 번역어로 ‘통령(統領)’을 사용하던 일본이 ‘큰 대(大)’ 자를 덧붙여 프레지던트를 의역하면서 지금의 대통령이란 용어가 자리 잡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의 대통령 선출로 본격적인 미국식 대통령제가 성립됐다. 하지만 당시 신생 독립국이었던 미국은 연방정부 조직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여서 워싱턴 대통령의 권력 행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엄격한 권력 분립으로 미국 대통령의 권한 행사는 제도적으로 여전히 제한적이다. 지난해 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한미군 등 해외 주둔 미군을 축소하려 한 데 대해 미 하원이 해외 주둔군 규모를 일정 수준 이하로 줄이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국방수권법으로 저지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은 “의회에서 법안을 저지하는 것은 쉽지만 법안을 통과시키기는 매우 어렵다”며 정권이 필요로 하는 법안을 채택하기 위해 반드시 의회와 타협해야 하는 점을 한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부터 미국 국력이 크게 신장되면서 미국 대통령의 권한도 커졌다. 특히 전쟁 수행을 위한 대통령의 역할이 초법적 상태에 이르면서 당대 미국 정치분석가들이 ‘제왕적 대통령직(imperial presidency)’이란 화두를 꺼냈다.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뉴딜정책’을 펴고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을 결정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 등이 이런 지적의 대상이었다. 미국 유명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 2세는 비상시에는 물론 평시에도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제왕적 대통령’ 논란이 세계적인 초강대국의 지위와 관련된 것과 달리, 한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의 등장은 국내 환경과 관련이 있다. 압축 성장을 위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명분에 따라 대통령에게 권력과 권한이 쏠리는 게 당연시됐던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헌법은 66조에서 대통령을 국가 원수(元首)로 명시하고, 76∼77조에서 대통령에게 긴급명령권·긴급재정경제명령권·계엄선포권 등 법률 효력을 가지는 국가긴급권을 부여하고 있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에 대한 원수 지위를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계엄령도 구체적인 조문 없이 연방대법원의 헌법 해석상으로 인정되는 권한이다.

◇대통령제에 담긴 헌법 정신 = 한국식 대통령제에서 권력 분립은 절충형 성격을 띠지만, 실제 권력 운용은 대통령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1948년 제헌헌법을 만들 당시 권력 구조와 관련해 ‘헌법 기초자’인 유진오 박사는 의원내각제안을 제시했으나 이승만 전 대통령은 대통령제안을 내세웠다. 이에 제헌헌법은 두 제도가 절충된 이원적 권력 구조를 채택하게 됐다. 1960년 4·19혁명으로 출범한 제2공화국은 한때 고전적인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기도 했지만, 5·16군사정변을 통해 집권한 박정희 정권의 제3공화국 때부터는 다시 대통령 중심의 권력 구조를 채택했다.

대통령제의 원형인 미국식 대통령제는 대통령 중심의 행정권과 대통령직선제를 인정하고, 의회에 대해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식 대통령제는 이보다 강한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부통령 대신 국무총리를 두는 규정,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에 대한 국회의 해임건의권 인정,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또는 행정 각부 장관 겸직 허용 등 의원내각제적인 요소도 가미하고 있다. 게다가 헌법 규정으로 대통령(청와대)과 행정부(국무총리, 국무위원, 국무회의, 행정 각부 등)를 구분한 점에서 이원정부제적 성격도 포함하고 있다. 결국 한국식 대통령제는 미국식 대통령제보다 대통령의 권한이 강한 만큼 그에 대한 견제 장치도 추가돼 있는 셈이다. 헌법상 규정이나 권력 구조를 근거로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헌법학자는 한국식 대통령제에 대해 “순수한 대통령제는 아니다”며 “그러나 헌법 체계만 놓고 보면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당·정·청 관계 같은 권력의 작동 방식이나 대통령의 실질적인 권한 행사 방식에서 한국식 대통령제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온다. 한 법학자는 “우리 헌법 정신은 초창기부터 국정의 근간을 국무회의 중심으로 규정하고 있는데도 실제로 국정 운영은 수석·보좌관회의 등 청와대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모든 걸 다 틀어쥐는 게 아니라 각 부처 장관이 자율성을 갖고 정책 추진을 책임지고 정책 담당자들끼리 조율하는 수평적 의미의 분권화가 필요하다”며 “예컨대 국무회의가 더 활성화돼 각 부처가 담당 업무를 하고, 여러 부처가 하는 일은 총리가 총괄하되 실무는 관료들이 맡게 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