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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⑦ 제왕적 대통령과 삼권분립, 그리고 법치

장관 참석하는 국무회의보다
靑수보회의가 사실상 국정중추
책임정치 왜곡으로 법치 위배

수도이전·4대강·탈원전 등
선출된 권력 내세워 정책 강행
전문가 “민주적 정당성 갖지만
선거로 백지수표 받은 건 아냐”

임기보장 檢총장 등 사퇴 유도
공천 좌지우지로 입법부에 입김
사법부엔 인사권 통해 영향력
권력 사유화로 견제·균형 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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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은 심각한 공천 내홍을 앓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찍힌’ 유승민 전 의원과 측근들이 줄줄이 낙천되거나 공천이 미뤄졌다.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총선을 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았을 때 기자와 만나 “유승민이 국회의원으로서 잘못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집권 여당의 일원으로서 제대로 했느냐, 자질을 갖추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심각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더 노골적으로 말했다. “뒤에서 총질만 하는 180석 필요 없다. (국회 의석) 과반도 필요 없다. 정말 똘똘한 친박(친박근혜) 의원 100명이면 된다.” 그의 말처럼, ‘박근혜 청와대’는 국회를 임기 말 청와대를 엄호해 줄‘충성부대’로 채우려 했다. 이는 여권의 구성원이자 행정부 견제 책임을 진 입법부의 일원이기도 한 여당 국회의원의 ‘이중 정체성’을 무시하는 행태이자, 청와대로 모든 권력이 쏠리는 정치 구조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어두운 단면이었다.

2019년 11월, 문재인 정부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관료들이 나쁜 사람인 건 아니다. 다만, ‘인센티브 스트럭처(Incentive structure·유인 구조)’가 그렇게 짜여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는 거다.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기득권에 포획된 것 같고 복지부동 행정을 보이는 건 구조 탓이다. 구조를 바꿔줘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경제 분야에서 관료에 포섭되지 않고 개혁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딱 세 명이었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정부 정책에 관여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됐다는 의미의 정무직 공무원)’ 수가 늘어, 정책 구상과 집행의 결합이 강해졌다.” 선출된 권력인 청와대와 여당이 직업 관료들의 ‘저항’을 뚫고 정책 취지를 관철해야 한다는 발언이었다. 이런 인식은 왜 여전히 대통령 비서실이 정책 컨트롤타워로 여겨지고, 나아가 정부가 ‘청와대 정부’의 모습을 띠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우리 헌법이 택하고 있는 대통령중심제는 현실 속에서 계속해서 삼권분립과 법치주의의 선을 넘나든다. 반면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선출한 권력으로서 대통령의 정당성과 권위 역시 중요하다. 그럼 ‘선출된 권력’의 권한은 무한한가. 그렇지 않다면 어떤 원칙으로 어디까지 이를 제한할 수 있는가. 정권이 바뀌어도 청와대 독주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黨政 위의 靑, ‘청와대 정부’= 청와대가 만기친람(萬機親覽·임금이 온갖 정사를 친히 보살핌)하는 것 자체가 정책 집행의 비효율성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대통령제를 왜곡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부와 여당 위에 군림하는 식으로 권력 구도가 짜이면 합리적인 논의보다는 대통령의 뜻에 따라 국정이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5월 25일 첫 번째 수·보회의를 주재하며 “대한민국 국정을 놓고 볼 때 청와대가 머리라면 수·보회의는 중추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1일 통화에서 “수·보회의의 위상이 헌법에 명시된 국무회의에 버금가거나 이를 뛰어넘는 상황”이라며 “수·보회의의 존재 자체가 압도적인 청와대의 권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매주 화요일 오전 열리는 국무회의는 격주로 주재하지만, 월요일 오후 수·보회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주 주재한다.

청와대 조직이 부처와 일대일 대응하는 식으로 짜인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예컨대, 현재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 밑에 임서정 일자리수석과 안일환 경제수석, 이태한 사회수석이 있고, 각각의 수석 아래에 네댓 개의 비서관실이 있다. 이들 비서관실이 각각 한두 개 부처를 맡는다. 문 대통령과 전임 대통령들은 여기에 더해 청와대 비서관을 부처 차관으로, 부처 차관을 다시 청와대 수석으로 기용하며 당·정의 일체감을 유도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부처 간 조율, 업무의 효율성, 청와대와 부처 간 소통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청와대가 정부를 장악하는 구조”라고 비판한다.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여당 의원은 “매번 대통령들이 청와대 권한을 줄이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청와대 직원 수가 갈수록 늘고 권한은 세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 결과는 ‘청와대의 독주’와 ‘내각의 무력화’다. 저서 ‘청와대 정부’를 통해 청와대의 비대화와 독주를 비판한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정책실장의 역할은 국무총리가, 인사수석의 역할은 인사혁신처가, 정무·민정수석의 역할은 여당이 하면 되는데도 이런 자리를 굳이 만든 것은 결국 청와대에 더 많은 권한과 힘이 쏠리게 하려는 의도”라고 강조했다.

◇대통령도 망치는 ‘제왕적 대통령제’= 권력의 과도한 대통령 쏠림 현상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을 낳았다. 역대 정부 사례를 보면, ‘제왕적 대통령제’는 국정뿐만 아니라 대통령 자신까지 망치는 요인임을 알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예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로 대표되는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에 무너졌다. 이명박 정부 때에는 이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비롯, 대통령 측근들이 줄줄이 비리 혐의로 처벌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아버지의 권력을 빌려 호가호위하던 아들들이 구속되면서 레임덕(권력누수현상)을 맞았다.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정권을 막론하고 임기 내 부정부패로 감옥에 가는 게 당연시될 정도다.

문재인 정부 역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한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 대통령 역시 박정희 정부 때부터 이어진 통치 방식과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는 자신들이 힘을 가지면 모든 걸 바꿀 수 있다는 마인드”라고 지적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은 헌법이 그렇게 시킨 게 아니라 헌법 정신을 지키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공약은 ‘국민의 뜻’인가=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둘러싼 논란은 ‘선출된 권력’의 권한이 어디까지 인정되는가와 연결된다. 어느 정권이든 여권은 ‘책임 정치 구현’을 내걸고 대통령의 공약을 적극 이행하려 한다. 국민이 다수의 표로 대통령을 선출한 만큼 그의 공약 역시 사실상 주권자인 국민의 승인을 받았다는 입장을 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탈원전과 ‘소득주도 성장’, 검찰 개혁 등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도 마찬가지다. 야당과 많은 전문가의 반대에도 불구, 여권은 “국민의 동의를 받았다”며 밀어붙였다.

이에 대해 이효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출된 권력이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것은 맞지만, 국정 운영이 헌법에 명시된 법치주의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선출된 권력이 ‘다 죽자’는 공약을 내세운다면 법치가 이를 제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선출된 권력이 ‘단기간의 정당성’이라면 헌법은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가치’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국민이 선거를 통해 백지수표를 준 게 아니다”라며 “선출된 권력이 국민에게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계속 설명해야 하는 ‘책임성의 원리’가 뒤따라 온다”고 했다.

◇‘선출된 권력’과 위기의 삼권분립= 대통령중심제에서 삼권분립 원칙은 종종 흔들리며,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그 정도가 더하다. 입법부의 일원인 여당은 자연스레 대통령 권력에 종속된다. 또 대통령은 인사권을 통해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선출된 권력’이 직업 관료 집단에 대해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은 합법적이며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여기서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자칫 국가기관 전체가 특정 정치 세력을 위해 동원되는 권력의 사유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인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임기 도중 사퇴, 최재형 감사원장을 향한 여권의 공격 등이 우려를 자아낸 것은 이 때문이다. 이전 정부에서도 선출된 권력에 의한 관료 집단 장악은 긍정적인 결과보다는 부작용을 더 크게 낳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특정 라인이 물갈이되는 악습이 반복되고 ‘코드 인사’와 ‘편중 인사’ 논란이 일었다. 권 교수는 “관료는 통제만 받는 게 아니라 견제도 할 수 있는 주체”라며 “관료는 공화주의적 관점에서는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고 강조했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