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한국 스타들이 부쩍 커진 영향력과 글로벌 팬덤에 힘입어 세계적 명품 브랜드의 얼굴로 자리잡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블랙핑크 제니(샤넬), 방탄소년단(루이비통), 송혜교(펜디), 엑소 카이(구찌).

제니, 팬들에 인간샤넬로 불려
송혜교 펜디·쇼메 앰배서더로
카이 ‘구찌 컬렉션’ 선보이기도

K팝 스타의 거대한 팬덤 효과
세계적 브랜드 러브콜 쏟아져
서구 편향 해소 대안으로 거론

한국의 스타들이 세계적 명품 브랜드의 ‘1열’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루이비통, 샤넬, 구찌, 펜디, 티파니앤코, 버버리, 몽블랑 등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들이 코리안 스타들을 간판으로 내세우고 있다. 한국에만 국한하던 이전의 지역 모델과는 차원이 다르다. 전 세계에 노출되는 소위 ‘글로벌 앰배서더’(세계 홍보대사) 자격이다. 모델 선정에 깐깐하기로 소문 난 이들 명품 브랜드들은 어쩌다가 코리안 스타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게 된 것일까.

◇코리안 스타 파워 업

K-팝, K-드라마, K-무비가 세계적 주목을 받으며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 작품 안에서 활약한 한류스타로 쏠렸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엑소는 물론이고 ‘킹덤’의 주지훈·배두나·전지현, ‘사랑의 불시착’의 손예진·현빈, ‘이태원 클라쓰’의 박서준 등이 넷플릭스와 SNS를 타고 순식간에 글로벌 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지난해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올해 ‘미나리’의 윤여정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뒤흔들며 코리안 스타 파워가 한층 높아졌다. 이들은 한국 하면 떠오르던 전쟁과 분단, 경제성장과 삼성전자 대신 특유의 당당함과 솔직함, 재치와 유머로 ‘품격 있는 문화인’으로서의 이미지를 보여줬다.

이런 기류 속에서 한국 스타들은 과거 할리우드 스타나 슈퍼모델의 전유물이었던 명품 브랜드의 얼굴로 속속 진출했다. 방탄소년단-루이비통, 블랙핑크 제니-샤넬, 엑소 카이-구찌, 송혜교-펜디, 주지훈-태그호이어, 박서준-몽블랑 등이다. 4∼5년 전만 해도 빅뱅 지드래곤이나 배우 배두나 등 손에 꼽을 정도였던 명품 브랜드 한국 모델은 최근 한 집에 한 명꼴로 늘어났다.

◇거대한 팬덤과 구매력

한국 스타들과 함께하는 엄청난 팬덤은 세계적 브랜드들이 적극적인 구애를 던지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K-팝 스타들의 팬덤은 너무 거대해 때론 이들의 공세가 두려울 정도다. SNS 팔로어가 이를 증명한다. 블랙핑크 제니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4440만 명, 엑소 카이는 1200만 명이나 된다. 그리고 이들은 팔로어와 매우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블랙핑크는 멤버 제니, 로제, 지수, 리사 전원이 각각 샤넬, 생로랑, 디올, 셀린느의 앰배서더 혹은 뮤즈(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다. 제니는 샤넬과 너무 잘 어울려 팬들 사이에서 ‘인간 샤넬’로 불린다. 로제는 세계적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앤코의 글로벌 앰배서더를 병행하고 있다. 역시 4000만 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어를 이끈다.

어마어마한 관심과 팬덤은 구매로도 연결된다. 리사의 SNS를 통해 노출된 셀린느의 한 제품은 공개 즉시 ‘리사 가방’으로 불리며 품절됐다. 루이비통의 앰배서더인 방탄소년단은 지난 3월 온라인으로 참여한 제63회 그래미어워즈에서 루이비통 정장으로 멋을 내 이목을 집중시켰고, 그 사진에는 78만 개의 ‘좋아요’가 달렸다. 100년이 넘은 패션지 WWD는 미국 니만 마커스 백화점 부사장의 말을 빌려 “K-팝 아티스트는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 중 하나다. 명품 브랜드는 아시아의 구매력에 다가가려 하고, 젊은 고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만족스러운 컬래버레이션 파트너

브랜드와 앰배서더는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는데 그 점에서 한국의 스타들은 매우 만족스러운 파트너다. 브랜드 측면에선 두꺼운 팬덤을 보유한 한국 스타를 통해 브랜드와 제품을 알리는 효과를 얻고, 앰배서더는 브랜드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1130만 팔로어를 보유한 배우 송혜교는 다양한 글로벌 모델로 활약했다. 2018년 럭셔리 브랜드 쇼메의 아시아태평양 앰배서더를 시작으로 보테가 베네타의 2020년 가을·겨울 패션쇼 모델,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의 코리안 앰배서더를 했다. 펜디는 그에 대해 “시대의 아이콘”이라며 “그의 아름다움은 그와 공명해 가치를 발산하는 부드러움과 끈기를 모두 말해준다”고 극찬했다.

엑소 카이는 2018년부터 구찌 패션쇼에 참가했다. 올해엔 구찌 설립 100주년 기념 글로벌 앰배서더로 발탁돼 ‘카이 x 구찌’ 컬렉션을 선보였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 업체인 리슨퍼스트(ListenFirst)의 디렉터는 “올해 가장 인기 있는 명품 패션 포스트에 실린 인플루언서는 해리 스타일스, 두아 리파, 빌리 아일리시와 함께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엑소 카이였다”면서 “K-팝 스타와 파트너 관계를 맺으면 제품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SNS에 엄청난 상승 효과를 제공한다는 증거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양성의 시대, 진보적 대안을 제시한 코리안

한국의 스타들은 최근 자주 지적되는 서양 중심적 세계관의 편향성을 해소해줄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킹덤’의 엔딩에 등장했던 전지현은 2020년 6월 럭셔리 브랜드 알렉산더 맥퀸의 모델이 됐다. 주지훈도 올해 초 명품 시계 브랜드 태그호이어의 앰배서더가 됐다. 조선 왕이라는 신비롭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좀비와 맞서 싸우는 강인함까지 겸비해 인기를 끌었다. 몽블랑의 앰배서더 박서준, 캘빈클라인의 글로벌 모델 지창욱도 전문모델 뺨치는 큰 키와 균형 잡힌 몸매, 현대적이고 진보적인 이미지로 브랜드의 얼굴이 됐다.

몇 년 전부터 백인 중심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아카데미와 그래미 어워즈는 성별과 인종적 다양성에 무게를 두면서 적극적으로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넷플릭스도 서비스를 확장하면서 전 세계에 통할 수 있는 지역 콘텐츠에 주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스타들은 특유의 매력으로 글로벌 무대의 주인공으로 성장했다. 한쪽에선 여전히 ‘아시안 증오 범죄’가 발생하고 있지만 단단한 실력과 팬덤, 호감 가는 외모와 품격 있는 언행으로 호감의 아이콘으로 진화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