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주님 곁으로 정진석 추기경이 선종한 지 하루가 지난 28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한 추모객이 머리 숙여 조문하고 있다. 정 추기경의 시신은 이날 오전 영정 사진 뒤로 보이는 투명 유리관에 안치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정진석 추기경 선종… 명동성당에 추모 발길

“정 추기경은 신앙생활의 등불”
유리관내 안치된 모습보며 애도

참전 보상 등 전재산 800만원
“고생한 의료진에 선물을” 유언

염수정 추기경 장례미사 집전
1일 용인 성직자묘역에 안장

“세상을 떠난 추기경 니콜라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28일 오전 7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인 명동대성당. 신자를 포함한 일반 시민들이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천주교식 위령 기도인 연도와 미사에 참석해 전날 선종(善終)한 정진석 추기경을 추모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연도 인원이 80명 안팎으로 제한된 가운데, 긴 줄로 늘어선 조문객들은 발열 체크를 하고 대성전 내부로 입장해 제대 앞 투명 유리관에 안치된 정 추기경 시신 가까이서 고개를 숙이고 묵념했다. 지하 성당에 안치되는 일반 사제와 달리 추기경은 성당 대성전에 안치하는 천주교 의례에 따른 것이다. 대성전 안엔 1970년 주교품을 받으며 첫 사목 표어로 삼았던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조문객들은 장례 나흘째인 오는 30일까지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 사이 정 추기경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다.

정 추기경은 전날 오후 10시 15분 90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앞서 정 추기경은 지난 2월 21일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정 추기경은 노환에 따른 대동맥 출혈로 수술 소견을 받았으나 주변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며 수술과 연명치료를 받지 않았다.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정 추기경이 만년에 주변에 자주 이야기했던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행복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를 마지막 말로 남겼다고 전했다. 고인의 시신은 지난 2006년 ‘사후 각막기증’ 약속에 따라 병원에서 안구 적출 수술을 마친 뒤 안치됐다. 허 신부는 “추기경님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진정한 자기희생이고 행복에 이를 수 있는 길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3월 명동밥집 1000만 원, 아동신앙교육 선교장학회 5000만 원 등 4개 단체에 통장 잔액을 공헌했다”며 “3월 이후 교구에서 은퇴한 신부에게 지급하는 돈과 6·25 참전으로 국가보훈처에서 받는 돈을 합해 800만 원 정도 통장에 남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 추기경은 이 돈을 그동안 수고한 병원 의료진 등에 선물하라는 말씀을 남겼다고 한다. 허 신부는 주요 인사 조문 계획에 대해선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하실 것 같고 홍남기 국무총리 권한대행(부총리)이 오늘 오후 3시 30분쯤 조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첫 추모 미사는 28일 0시쯤 염수정 추기경 집전 하에 서울대교구 주교단과 사제단, 그리고 신자 약 3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러졌다. 염 추기경은 “김수환 추기경께서 아버지였다면 정 추기경님은 어머니와 같이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았다”고 되돌아봤다. 이날 명동성당을 찾은 신자 정수희(실비아) 씨는 “‘질그릇의 노래’ 같은 책을 읽으면서 정 추기경님을 ‘신앙생활의 등불’로 여기며 살아왔다”며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잠드시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장례는 다음 달 1일까지 명동대성당에서 5일장으로 치러진다. 마지막 날인 다음 달 1일 오전엔 염 추기경 주례로 장례미사가 거행된다. 미사가 끝나면 고인의 시신은 명동성당을 떠나 장지인 경기 용인 성직자묘역에 안장된다. 이곳에는 2009년 선종한 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한국인 첫 대주교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 등의 묘가 있다.

장재선 선임기자·나윤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