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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주교 서품 후 서울대교구장 14년 지낸 한국의 두번째 추기경
‘공부하는 사제’로 교회법 전문가… 총 51권의 저서와 14권 역서 남겨

“내 주변의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저의 부족한 점을 너그러히 용납하여 주십시요.가능하다면 각막을 기증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기도하면서.”

‘장기기증에 관한 서명’에 이렇게 적었던 정진석 추기경이 27일 선종했다. 90세.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이날 “정 추기경께서 오후 10시 15분 노환으로 서울성모병원에서 선종하셨다”며 “빈소는 명동대성당에 마련됐다”고 밝혔다.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정 추기경은 마지막 순간까지 찾아온 염수정 추기경과 주교, 사제들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겸손과 배려와 인내를 보여줬다. 의료진, 사제들, 비서 수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는 전언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추기경님께서 오래전부터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정 추기경은 노환에 따른 대동맥 출혈로 수술 소견을 받았으나 자신이 고령이고 주변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며 수술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또 오래전부터 노환으로 맞게 되는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하고 싶다며 2018년 연명 의료계획서에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서명한 바 있다. 앞서 2006년엔 ‘사후 각막기증’ 등을 약속했다.

고인은 1931년 12월 7일 서울 중구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1954년 가톨릭대 신학부에 입학했고, 1961년 3월 사제품을 받았다. 서울대교구 중림동 본당 보좌신부를 시작으로 서울 성신고 교사(1961∼1967),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총무(1964∼1965), 성신고 부교장(1967∼1968)을 지냈다.

1968년에는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고 1970년 교황청 우르바노 대학원에서 교회법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만 39세 때인 1970년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최연소 주교로 서품됐다.

청주교구 천주교회 유지재단 이사장·청주가톨릭 학원 이사장(1970∼1998)을 지냈으며 주교회의에서 신앙교리위원회 위원장(1978∼1984), 교회법위원회 위원장(1983∼2007), 총무(1987∼1993)를 맡았다. 1996년부터 3년간 주교회의 의장으로도 활동했다.

고인은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되며 대주교로 승품했다. 2006년 2월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한국에서는 고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두 번째 추기경이었다. 2012년 서울대교구장에서 사임하기까지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임하며 14년간 한국 천주교구를 대표했다.

은퇴 이후에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신학대학) 주교관에서 머물며 저술활동에 매진하며 매년 한 권씩 책을 냈다. 그의 저서는 총 51권, 역서는 14권에 달한다.
지난해 7월엔 모교인 서울 중앙고가 특별 전시관을 마련해 그의 역서와 저서 58권 및 교회 관련 서적 등 총 99권을 전시했다.

그는 교회법 전문가로 꼽힌다.가톨릭교회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때인 1983년 새 교회법전을 펴냈는데, 당시 청주교구장이던 정 추기경이 교회법전 번역위원장을 맡아 동료 사제들과 한국어판 번역 작업에 나섰다.

1987년 번역 작업을 마무리했고, 1989년 라틴어-한국어 대역본이 교황청 승인을 받아 처음 출간됐다. 이후 정 추기경은 교회법전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해설서 첫 권을 펴낸 데 이어 2002년까지 총 15권의 교회법 해설서 편찬작업을 마무리했다.

서울대교구는 “장례는 교구장으로 치러지며, 주교좌성당인 명동대성당에서 5일장으로 거행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정진석 추기경(위)과 그의 장기기증 서약서(아래). 서울대교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