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사회문제 해결 소명의식
실리콘밸리 창업자보다 앞서”

자동차와 중공업, 건설업 등 분야에서 ‘현대’라는 큰 레거시(유산)를 남긴 고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기업가 정신은 오늘날에도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영감과 희망을 주고 있다. 학계에서는 특히 아산의 기업가 정신에 ‘시대의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는 소명의식’이 담겨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 경제환경에는 이전의 틀로 사고할 수 없는 새로운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만큼,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아산의 정신을 되살려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정 명예회장의 기업가 정신은 오늘날 주목받는 미국 실리콘밸리 유명 창업자들의 생각보다도 앞서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난 17일 열린 ‘아산 정주영과 기업가 정신’ 콘퍼런스에서 “아산의 제일 큰 업적은 그 시대에 놓인 가장 큰 과제를 피하지 않고 달려들었다는 점에 있다”면서 “현시대 실리콘 밸리 창업자들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사업을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는 아산의 기업가, 창업가 정신과 일치하는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19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정 명예회장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연구하고 투자하는 위험부담을 지면서 혁신해왔다”며 “그는 다른 나라에서 안 된다고 한 것들을 해낸, 요즘으로 치면 일론 머스크와 비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도 “기업들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하는 사례가 많았으나, 정 명예회장은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면서 “그는 자신감을 갖고 무엇이든지 도전하고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그런 정신이 지금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최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 정 명예회장은 일찌감치 기업 성장을 통한 사회적 문제 해결에 나서 시대를 앞서갔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도현 교수는 “아산이 창업을 주도했던 1950∼1970년대를 관통한 난제는 주거와 병, 교육 등이었는데, 아산은 이런 사회적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정몽준 아산나눔재단 명예이사장은 “아버지를 평가하는 데 있어 불굴의 도전정신, 개척자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저는 ‘휴머니티’, 인본주의를 강조하고 싶다”면서 “다른 분들과 비교해서 그 점이 아버지의 장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정민 기자 ja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