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대출 규모, 작년보다 67%↑
운영자금 비중 72% ‘최고치’
시설 투자용은 27%로‘저조’

벼랑 끝에 선 기업들이 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파를 견디기 위해 기업들이 대출 등으로 끌어모은 돈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대출금 중 72.2%는 당장 사업체 운영을 지속하기 위한 자금이었다. 생산에 필요한 건물 신·증축 등 시설 투자에 쓰이는 시설자금 비중은 올해 27.8%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경쟁력 있는 기업에 말라죽지 않도록 유동성을 공급하는 동시에 선제적 기업 구조조정이 시작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업들이 올해 들어 9월 말까지 대출 등을 통해 끌어모은 돈은 179조8030억 원으로 2008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큰 규모를 보였다. 구체적으로 예금취급기관에서의 기업 대출 증가액은 158조2025억 원, 회사채 순발행액은 13조8000억 원, 기업어음(CP) 순발행액은 1조9000억 원, 주식 발행액은 5조9000억 원이었다. 올해 기업의 직접자금 조달 규모는 9월 말까지만 반영됐지만, 규모는 이미 지난해 107조2950억 원보다 67.6%나 크다. 2018년 85조8490억 원, 2017년 78조7360억 원보단 두 배가량으로 많다.

특히 대출금 중 운영자금(운전자금) 비중(72.2%) 역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건비, 이자, 재료비 등 보통 1년간 경영에 필요한 자금을 뜻하는 운영자금 비중이 높다는 건 기업들이 빚으로 사업체를 근근이 유지하고 있다는 경고의 의미다. 불황일수록 그 비중이 커진다. 운영자금 비중은 2017년 34.3%에서 2018년 45.2%로 뛰었고 지난해엔 63.2%로 절반을 넘어섰다. 빚으로 연명하던 와중에 코로나19까지 덮쳐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저조한 설비투자는 재생산에 비상이 걸렸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경제가 더 망가지기 전에 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해 손실 규모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통산업에서 정보기술(IT) 등 신기술로의 산업 구조 전환이 코로나19 이후 더욱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며 “정부의 지원책으로 좀비기업 파산이 유예되고 있는데 부채 규모가 더 쌓여 개인은 물론, 사회에 큰 부담이 되기 전에 정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좀비기업’ 비중은 14.8%로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09년 이후 가장 높았다. 좀비기업은 한 해 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해가 3년 연속 이어진 기업을 말한다. 올해는 그 비중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이재복 KDB미래전략연구소 연구원은 “좀비기업이 차년도에 정상기업으로 변경되는 비중이 2017년 32.6%에서 2018년에는 26.9%로 하락해 장기 좀비기업 증가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민정혜 기자 leaf@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