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뉴질랜드 남섬 매켄지에 펼쳐진 대자연. 환경 전문 변호사 데이비드 보이드는 자연에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혁명을 통해 공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 자연의 권리 | 데이비드 보이드 지음, 이지원 옮김 | 교유서가

환경 훼손 개인·기업에 대항해
뉴질랜드 등 강의 소송권 인정
동물 법인격 부여 사례 등 조명
세계 곳곳‘법률 혁명’흥미진진

이미지 크게보기

2009년 에콰도르 빌카밤바강 인근에 농지를 소유한 미국인 노부부가 지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농지 옆을 지나는 좁은 길이 3차로 도로로 확장되면서 공사 폐기물이 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불도저가 수천t의 잔해더미를 강으로 밀어 넣은 바람에 어떤 구간에선 강폭이 절반으로 줄었다. 부부는 소송 청구서에서 “폐기물을 강에 투입하는 행위를 멈추고 강의 흐름을 복원하라”고 촉구했다.

2년 뒤 항소심을 진행한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1심을 파기하고 세계 최초로 “강의 헌법적 권리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즉시 자연의 권리를 보호하고 발효시켜 오명 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다하는 것이 헌법에 충실한 법관의 의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은 “자연의 권리가 더는 철학적 관념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법적 선례로 남았다.

캐나다 환경 전문 변호사가 쓴 이 책은 “자연을 향해 아슬아슬하게 개화하는 법적·문화적 혁명에 관한 기록”이다. 오랜 세월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의 정점에 자리한다는 ‘인간 중심주의’를 신봉해왔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데카르트 등이 정립한 “자연과 동물은 인간을 위해 복무한다”는 이론은 서구의 근대 법체계에 스며들었다. 이 법체계는 “자연의 모든 것이 우리 재산이며 우리는 마음대로 이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는 인식을 내포한다.

이 때문에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음에도 인간은 여전히 ‘자연의 정복자’로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 남극과 비르타윌(이집트와 수단의 경계에 있는 사막)을 제외한 거의 모든 땅은 인간의 사유재산이거나 국유재산이다. 야생동물은 사유지에 있더라도 국가나 지방정부가 소유권을 지닌다. 어느 나라의 주권에도 속하지 않는 공해(公海)조차 인간의 착취를 위한 ‘공유자원’으로 취급된다. 인간은 해마다 1000억 마리 이상의 동물을 죽이고, 생태계를 파괴하며 기후 질서를 교란한다. 지구 행성을 수백 만의 다른 종과 공유하고 있다는 진술은 “생태학적으로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법적으로는 그른 문장”인 것이다.

하지만 에콰도르 법원 판결에서 보듯, 근대 법체계에 균열을 내는 시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회성 판례가 아니라 입법을 통해 강에 법 인격체의 권리를 부여한 뉴질랜드 사례가 특히 주목된다. 뉴질랜드 정부는 2017년 원주민 마오리족의 요청을 수용해 ‘팡아누이강 청구권 합의법’을 제정했다.

마오리족은 “나는 강이고, 강은 나다(코 아우 테 아와, 코 테 아와 코 아우)”로 요약되는 전일적 세계관을 지닌 전통 부족인데, 이 법을 통해 그들이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온 팡아누이강의 소유권은 ‘국가’에서 ‘강을 대리하는 후견인’으로 넘어갔다. 2명의 후견인은 마오리족과 정부가 한 명씩 임명하도록 했다. ‘인격체’가 된 강이 후견인을 통해 자신을 오염시키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소송을 청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연에 권리를 부여한 이 획기적인 법”은 뉴질랜드 테 우레웨라 국립공원의 소유권을 공원으로 옮기는 입법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이 두 사례에 대해 “세계 최초로 어떤 자연 지역이 더는 인간이 법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대상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선구적인 법제화 사례와 판례는 이외에도 적지 않다. 독일은 동물, 에콰도르는 자연의 권리를 헌법에 명시했으며 아르헨티나 법원은 ‘동물의 법인격’을 인정하며 침팬지를 동물원에서 보호구역으로 옮기라고 판결했다. 최근 인도 대법원 역시 멸종 위기에 놓인 아시아사자에 대한 보호 판결을 통해 ‘인간 중심적 편향성’에 일침을 가했다.

저자는 이러한 법률 혁명의 시작은 20세기 후반 등장한 ‘절멸 위기종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한다. 1973년 미국에서 처음 제정된 이 법은 “인간 아닌 종들이 말살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핵심 취지로 삼는다. 미국을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한국을 비롯한 100여 개 국가가 도입한 이 법은 멸종위기종에서 한발 나아가 동물과 자연 전체에 권리를 부여하는 변화의 씨앗이 됐다.

이처럼 인간을 ‘정복자’에서 ‘생명 공동체의 일원’으로 돌려놓는 방향 전환이 일어나고 있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법률 혁명을 과감히 수용한 지역이 일부에 국한될 뿐 아니라 법체계를 선진적으로 바꾼 곳에서도 실제 이행은 미흡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법률 문구가 ‘선언문’ 수준에 불과해 현실에 뿌리내리기엔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시민들이 ‘생태주의’를 중시하는 정치인을 지도자로 선출하고, 각국은 재생에너지 비율을 100%로 끌어올리는 혁명의 완성을 통해 “낭떠러지를 향해 가는 기차”를 멈춰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독자는 이 책의 주장이 실현하기 힘든 ‘이상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장 실현 가능한 차선이 아니라 언젠가는 가닿아야만 하는 최선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가 아니던가.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은 지구 없이 살 수 없지만, 지구는 인간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말이 옳다면, 자연에 권리를 돌려주는 것은 곧 인간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인용한 어느 이름 없는 법대생의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물 한 방울이 지형을 바꿀 수는 없지만, 여러 방울이 모이면 장엄한 팡아누이강처럼 그 지형을 불가역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304쪽, 1만80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