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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지난 12일 국정감사에서 이수혁 주미대사는 “70년 전 미국을 선택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70년간 미국을 선택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사랑하지도 않는데 동맹을 지켜야 한다는 건 미국에 대한 모욕”이라면서 “우리 국익이 돼야 미국을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언이다. 이 발언은 만일 미국이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면 동맹을 깰 수도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과거 이 대사의 발언에 대해 미 국무부는 “한국은 수십 년 전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을 때 이미 어느 편에 설지 선택했다”고 했는데, 13일에도 “70년 역사의 한·미 동맹이 극히 자랑스럽고(extremely proud) 앞으로도 새로운 도전에 맞서 함께할 것”이라고 간접적인 반박 입장을 표명했다.

한국에 한·미 동맹은 무엇인가? 갈수록 지정학적 국익 위주의 각박한 외교가 보편적 현상이 된 시대에 한국이 동맹을 벗어나는 것은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는가? 물론 동맹이란 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한국이 일방적으로 동맹의 안보 혜택을 추구하던 시절은 이미 지났고, 한·미 동맹의 해체가 마치 한국 안보의 파국인 것처럼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에서 이제는 국제 무대에서 영향력 있는 선진국으로 성장했다. 분명한 것은 한국의 부상은 한·미 동맹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적어도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한 한·미 동맹은 앞으로도 우리의 안보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게 분명하다. 지금 한국이 처한 외교·안보적 환경 속에서 한·미 동맹을 벗어나는 것이 우리의 국익인지는 의문이다. 만일 한·미 동맹이 한국의 국익에 여전히 해악보다는 기여하는 바가 더 크다면 동맹을 위태롭게 하는 발언이 우리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한반도 주변의 상황은 숨 가쁘게 변화하고 있다. 그것을 주도하는 것은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큰 틀의 대치 구도다. 코로나19 이후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미·중 관계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선 전략을 훨씬 넘어설 만큼 그 정도와 범위가 크고 넓다. 미·중 관계는 무역전쟁을 넘어 이제 패권 경쟁, 체제 경쟁, 이념 경쟁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히 미·중 간의 관계를 넘어 전 세계에 심각한 여파를 불러올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한국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사사건건 미·중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미국, 중국 가리지 않고 전 세계 모든 국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지만, 최악의 경우 선택이 불가피하다면 중국이 아니라 미국 주도의 네트워크가 우리에게 이익이다. 이는 결국은 가치와 체제의 문제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식 체제를 버리고 중국식 체제를 따를 용의가 있는가? 미국의 패권이 작동하고 동맹이 유지되는 한 해답은 자명하다. 미국의 네트워크를 선택하는 게 우리의 갈 길이다. 다만, 그 경우에 초래될 각종 리스크를 미리 점검해서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게 최선이다. 이런 위중한 시기에 주미대사의 이번 발언은 향후 미·중 패권 경쟁 심화 가운데 한국이 한·미 동맹을 벗어나 중국으로 경도될 수도 있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주는 위험스러운 것이다. 안보 여건이 불확실해질 때는 동맹을 포함해 현재 우리가 가진 안보 자산을 잘 관리하는 것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