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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지역화폐가 갑자기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지역화폐가 지역경제 활성화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발행 비용만 축낸다’는 보고서에 대해 ‘적폐’ ‘얼빠졌다’고 비난하면서다. 지역화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해 보인다.

지역화폐는 원래 지역 주민이 직접 만들고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될 수 있도록 고안된 화폐다. 발행의 주목적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데 있다. 이러한 지역화폐가 전 세계적으로 2500개 정도 된다. 어떤 것이 화폐로서 제대로 된 교환의 매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 손으로 넘어가면서 유통돼야 한다. 그러나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될 수 있는 한계성 때문에 대개의 지역화폐가 발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만다. ‘지역 구매 정서’가 강한 아주 소수의 지역에서만 유통될 뿐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영국 브리스톨의 ‘브리스톨 파운드’다.

더욱이 한국의 대다수 지역화폐는 민간이 아닌 지자체가 발행한다. 사용처도 더욱 제한돼 있다. 주로 소상공인업체, 전통시장, 편의점 등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백화점·대형마트 등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화폐라는 말을 쓰지만, 지정한 업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에 불과하다. 지역 간 교통이 자유롭고 정부 주도로 발행되기 때문에 ‘지역 구매 정서’가 약해 유통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지자체가 발행하는 지역화폐는 발행 방식에 따라 정부 보조금을 지역화폐로 주는 ‘정책발행’과 소비자가 직접 구입해 쓸 수 있는 ‘일반발행’이 있다. 정책발행은 정부 보조금을 상품권 형태로 주는 것으로, 보조금 예산의 범위에서 발행된다. 일반발행은 소비자들이 일반 백화점에서 상품권을 구입하듯이 지자체에서 발행하는 지역화폐를 구입하는 것이다.

소비자 대부분은 사용처가 한정돼 있는 지역화폐보다는 아무 곳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현금(한국은행권)을 선호한다. 그래서 지자체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지역화폐를 할인해서 파는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화폐를 발행·관리하는 데 비용이 들어가므로 지역화폐 발행엔 필연적으로 적자가 따른다. 이 적자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지역화폐 사용에 따른 지자체의 소비세 수입이 적자 이상으로 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방소비세를 올리든지, 지자체가 제공하는 다른 서비스를 줄여 충당해야 한다. 이는 지역화폐가 주민들에게 비용을 유발할 뿐 아니라 지역경제를 살리는 마법의 지팡이가 아님을 시사한다.

물론, 지역화폐 사용 업소로 지정 받은 업체에는 이익이다. 그러나 그 이익은 다른 곳에서 쓰일 것을 희생한 것이므로 경제 전체적으로 이익이 된다고 할 수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특정 업체에서만 사용할 수 있으므로 선택 폭이 줄어 그만큼 후생이 감소한다. 역내에서 더 많이 거래함으로써 얻는 이익보다는 외지인들과 덜 거래함으로써 보는 손실이 더 크다. 그래서 지역화폐는 재원을 재분배하는 방법일 뿐 경제 전체적으로 생산성을 늘리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방법이 아니다.

교환을 제약한다는 면에서 지역화폐는 보호무역의 한 형태다. 우리는 보호무역보다는 자유무역이 이익이라는 것을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지역화폐가 경제를 살린다고 하는 것은 경제 봉쇄가 축복이라고 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는 모순이다. 지역화폐의 확대는 경제를 활성화시키긴커녕 쇠퇴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