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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레인 테크’패권경쟁

美 ‘7대 우선과제’선정 이후로
5조3000억원 집중 투자 나서
日 ‘뇌와 마음’프로젝트 가동
韓 2027년까지 3차 기본계획

현대 과학의 최전선은 컴퓨터와 뇌 연구 경계를 허물어뜨렸다. 정보기술(IT)과 바이오기술(BT)이 따로 노는 게 아니라 하나로 융합돼 컴퓨터는 생체화, 생물학은 데이터 사이언스로 변하며 서로 접근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산업이 탄생했다. 브레인테크(Brain-Tech)가 그것이다. 뇌 속 길의 연결망을 3차원 내비게이션 지도로 보여주고, 마비환자가 생각만으로 의족을 움직이게 하고, 뇌 신경세포와 닮은 반도체를 설계하는 기업들이 출현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뇌과학 연구 붐 1라운드가 끝나고, 2020년 우리는 뇌 산업의 태동기를 맞고 있다. 브레인테크의 출발점은 뇌과학이다. 크게 △기초원리를 연구하는 뇌 신경생물학 △치매 등 질병 치료에 주력하는 뇌 질환학 △기억·학습 등 심리학과의 경계인 뇌 인지학 △뇌와 기계를 접목하는 뇌 공학으로 나뉜다. 신비한 ‘뇌 우주 탐험(Brain Universe Frontier)’을 떠나 보자.

과학 선진국들이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인체 속 소우주’ 뇌(腦)의 미개척지를 먼저 점령하려는 기초·응용 연구와 산업화 경쟁이다. 인공지능(AI)을 앞세운 4차 산업혁명, 화성 탐사 등 우주 기술 선점 다툼에 이은 제3의 과학기술 전쟁이다.

뇌과학은 특히 뇌와 컴퓨터 연결(BCI·Brain-Computer Interface), 뉴로모픽(neuromorphic·뇌 신경세포 모방) 칩 산업화로 IT·BT의 융합 최전선으로 부상하면서 치매 치료나 수명 연장 같은 초고령 사회의 도전에 맞서는 한편, 차세대 AI 개발로 이어지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뇌+기술, 브레인테크는 뇌과학을 산업에 응용하는 기술을 말한다. BCI, 뉴로모픽 칩에 이어 컴퓨터 시각 기술로 뇌의 구조와 기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3차원 이미지로 생성하는 브레인 매핑(mapping), 전자기·초음파로 자극해 질환을 치료하거나 마음과 몸의 상태를 바꾸는 뇌 제어(neuromodulation)도 한창 뜨고 있는 기술이다. 뇌과학은 산업의 거의 모든 분야에 전방위로 진출하고 있다.

전기차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뉴럴링크(Neuralink)’ 본사에서 돼지 뇌에 이식한 동전 크기의 신호 수집기(브레인칩)를 통해 뇌파를 외부 컴퓨터로 무선 전송하는 시연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뇌를 인터넷과 연결한 셈이다. 7월에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까지 받은 이 장치를 올해 안에 사람 뇌에 이식하는 게 목표라고 그는 말했다. 뇌파의 패턴을 AI가 판독해 생각만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하거나 마비환자의 수족을 움직이는 일이 현실로 성큼 다가온 것이다. 머스크는 지난해 7월 첫 시연에서 머리카락 4분의 1 굵기 전기 실(thread) 수천 가닥을 원숭이의 뇌에 심어 컴퓨터를 제어하는 기술을 과시했다. 1024개 실 다발을 지름 2㎜ 소형 칩에 연결해 머리 구멍을 통해 넣은 후 봉합하기 위해 전용 수술 로봇까지 선보였다. 귀 뒤쪽에 붙이는 탈착형 단말기로 스마트폰과 무선 연결하면서 데이터를 주고받는다. 뇌 장애인 돕기로 시작하지만 장기적으로 뇌 신호를 읽고 기록(업로드)까지 하는 게 목표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은 분야별로 자국 산업의 앞선 경쟁력을 유지하려 브레인테크에서 격돌 중이다. 미국은 2019년 6월 ‘브레인 2.0’ 중간 보고서를 냈다. 2013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선포한 ‘뇌과학 주도권(Brain Initiative)’ 국가 비전의 초반 6년 성과를 정리하고 2025년까지 후반기 목표를 재설정했다.

EU도 지난해 4월 뇌 절편(slicing) 3D 뇌지도와 생각 기계(Thinking Machine·뉴로컴퓨터) 기술 개발의 최신 동향을 집행위원회 홈페이지에 올렸다. 미국과 같은 해 출범시킨 ‘인간 뇌 프로젝트(Human Brain Project, 2013∼2022년)’의 성과를 일부 공개한 것이다. 일본과 중국은 조금 늦게 2∼3년 시차를 두고 뇌 전쟁에 뛰어들어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뇌과학 연구에 매달리는 것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IT 지능화와 더불어, 뇌·컴퓨터 연결(BCI) 기술의 산업화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뇌 생물학과 AI 연구가 합쳐져 지능 생물학의 융합경쟁 시대로 접어들었고, 여기서 뒤떨어지면 다른 모든 산업의 국제 경쟁력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용홍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우리 뇌과학 연구·개발(R&D) 정책을 반성해보면 기초지식이나 요소기술 창출에는 다소 성과를 거뒀지만 산업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원천기술 개발이 미흡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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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은 천연지능인 뇌의 모방이다. 컴퓨터 하드웨어(반도체)와 소프트웨어(AI)는 뇌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흉내 내면서 기계의 한계를 넘고 있다. 반대로, 생물학은 컴퓨터의 막강한 계산력에 힘입어 더욱 빠르고 정확해지고 있다. 시스템 생물학, 계산신경학(Computational Neuroscience)은 DNA 염기서열과 분자의 화학 성분, 뇌 신경회로 네트워크를 비트(bit·정보 단위) 모델로 시뮬레이션함으로써 실험실의 무한 반복 시행착오를 크게 줄였다. 뇌과학자들은 21세기 르네상스맨이다. 생물학에서 출발해 컴퓨터공학, 심지어 사회학과 철학까지 섭렵해야 종합적인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뇌 우주 탐험이 제2의 르네상스로 인류 문명의 꽃을 다시 한 번 활짝 피울 것인가. 올해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은 서판길 한국뇌연구원 원장은 “뇌의 95%를 우린 아직 모른다. 뇌와 우주는 과학의 마지막 프런티어”라며 “소우주 뇌의 미답 영역을 먼저 점령하는 국가가 21세기 최후 승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