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현대자동차가 개발한 전기차 초고속 충전설비 ‘하이차저’에서 아이오닉 전기차를 충전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글로벌 자동차업체, 초고속 충전기 개발 경쟁

급속도 80% 충전에 1시간 걸려
충전속도 획기적으로 높이려면
고전압 ‘배터리 시스템’ 필요

현대차, 350㎾급 하이차저 개발
20분 이내 80%까지 충전 가능
유럽 인프라 구축 사업도 참여

2009년 첫선 무선충전도 진화
송전패드 삽입 道路 개발 경쟁

친환경 바람 속에 세계 자동차 업체들이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에너지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loomberg NEF)’가 지난 5월에 발행한 ‘전기차 전망 2020(Electric Vehicle Outlook 2020)’에 따르면, 오는 2040년이 되면 세계 신규 승용차 판매 중 전기차 비중이 58%에 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전기차를 충전하려면 내연기관차에 기름을 넣는 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전기차 보급이 늘어날수록 상대적으로 충전소는 더 부족하게 되고, 그에 따라 충전 대기 시간이 더 길어지는 역설도 발생한다. 결국 전기차 대중화를 위해서는 내연기관차 주유 시간만큼은 아니더라도 1시간이 ‘급속’으로 불리는 현재의 충전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게 급선무다. 이에 현대·기아자동차 등 완성차 업체들도 초고속 충전 기술을 개발하거나 충전 인프라를 확대하는 데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 현대자동차 전기차 코나 일렉트릭 충전구 모습. 현대차 제공

◇충전기 종류=24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전기차 충전기는 크게 완속 충전기와 급속 충전기로 구분된다. 완속 충전기는 충전기가 교류(AC) 전력을 공급하고, 전기차의 OBC(On Board Charger·온보드차저)가 이 전력을 직류로 변환해 배터리에 충전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7㎾급이며, 통상 10%를 충전하는 데 약 1시간이 필요하다. 충전기와 전기차를 연결하는 충전 커넥터는 AC 단상 5핀 규격을 사용한다. 완전히 충전하는 데 10시간 안팎이 걸리므로, 보통 차를 주차해놓고 한참 동안 운행하지 않는 심야에 완속 충전을 하는 경우가 많다.

급속 충전기는 충전기에서 배터리로 직접 직류(DC) 전력을 공급해 충전하는 방식이다. 국내는 50㎾급 성능의 급속 충전기를 주로 사용하고, 최근 들어 100㎾급 충전설비가 조금씩 구축되고 있다. 급속 충전기의 충전 커넥터는 차종에 따라 DC 콤보 7핀 또는 차데모 규격을 쓰기도 하는데, 국내 표준 규격은 DC 콤보다. 배터리 용량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배터리 용량의 80%까지 충전하는 데 1시간 이내가 걸린다. 급속 충전은 더 많은 열을 발생시키므로, 배터리 수명을 보호하기 위해 완전히 충전하지 않고 80%까지만 충전한다. 미국 전기차 테슬라는 독자 규격 충전기를 사용한다.

급하게 충전해야 할 경우 임시로 사용하는 이동형 충전기도 있다. 전기차 전용 충전기가 없어도, 220V 콘센트와 전기차를 연결해주는 장치다. 하지만 성능은 보통 3.2㎾급밖에 되지 않아 어디까지나 임시용이다. 충전 커넥터는 일반 완속 충전기와 동일한 AC 단상 5핀을 사용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220V 휴대용 전기차 충전 케이블. 현대차 제공

◇초고속 충전기 개발 경쟁=전기차 충전기 성능을 표시할 때 사용하는 ㎾는 전력의 단위로, 전기 에너지의 용량을 뜻한다. 충전 속도를 높인다는 것은 단위시간에 더 많은 전기 에너지를 충전한다는 의미다. 전기 에너지의 용량이 클수록, 즉 전력이 더 높을수록 고속 충전이 가능하다. 또 전력은 전압×전류다. 그런데 전선은 최대로 흐를 수 있는 전류가 정해져 있다. 허용 전류를 높이려면 전선이 굵어져야 하므로, 무게나 비용 등의 제약이 있어 무턱대고 충전 가능 전류를 높일 수는 없다. 결국 충전 속도를 높이려면 높은 전압의 배터리 시스템을 적용해야 한다.

이런 고전압 초고속 충전기를 확대하는 데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들이 앞장서고 있다. 유럽에서는 2017년 11월 BMW,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 다임러, 폭스바겐, 포드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 4곳이 유럽 전역에 초고속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목표 아래 공동으로 ‘아이오니티(IONITY)’를 설립한 바 있다. 전기차 초고속 충전 인프라 구축 전문 업체인 아이오니티는 올해까지 유럽 24개국을 관통하는 주요 고속도로에 총 400개의 350㎾급 초고속 충전소 구축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현대·기아차도 유럽 전기차 시장을 겨냥해 지난해 9월 아이오니티 전략투자 및 사업 협력을 위한 계약을 체결하고 유럽의 초고속 충전기 인프라 구축에 참여했다.

특히 현대차는 국내에서도 350㎾급 초고속 충전기를 자체 개발했다. 지난해 11월 현대차가 선보인 ‘하이차저(Hi-Charger)’는 350㎾급 고출력·고효율 충전기술을 탑재한 충전설비로, 800V 대용량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차를 20분 이내에 약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기존 고속 충전기의 3분의 1 수준으로 시간을 단축한 것이다. 또 하이차저는 전기차의 충전구 위치에 맞춰 충전 케이블을 조절할 수 있는 ‘부분 자동화’ 방식을 적용, 사용자가 케이블 무게를 거의 느끼지 않고 충전 커넥터를 연결할 수 있어 이달 초 발표된 ‘2020 레드 닷 어워드’에서 인터페이스·사용자 경험 부문 본상을 받기도 했다.

현대차는 경기 고양시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 하이차저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으며, 앞으로 전국적으로 확대 설치할 예정이다. 또 지난해 12월 한국도로공사와 체결한 협약을 통해 전국 12개 고속도로 휴게소에 50㎾급 초고속 충전기를 설치, 고속도로에서 전기차 충전 편의를 높일 계획이다.

◇근미래(近未來) 무선 충전 도로 시대=전기차 무선 충전 기술은 2009년 카이스트에서 처음 개발했고, 지난해 현대차에서도 신기술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충전케이블을 꽂는 불편은 사라지지만, 충전소든 지하 주차장이든 무선 충전 설비가 깔린 곳을 찾아가야 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반면 도로 아래에 충전 시설을 매설해 무선 충전을 한다면,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배터리 걱정 없이 달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무선 충전 도로 기술 개발 경쟁도 한창이다. 미국 퀄컴은 ‘퀄컴 헤일로(Qualcomm Halo)’라는 이름의 전기차용 무선 충전 시스템(Wireless Electric Vehicle Charging·WEVC)을 개발하고 있다.

2017년 선보인 퀄컴 헤일로는 전력을 보내는 송전 패드를 도로에 삽입하고, 전력을 받는 수전 패드를 자동차 하부에 달아 충전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퀄컴은 100m 길이 테스트 트랙에 실제로 무선 충전 수신기를 장착한 전기차가 주행할 수 있는 무선 충전 도로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시속 100㎞ 속도로 달릴 때 20㎾급 무선 충전이 가능하다. 고속 충전은 아니지만, 현재 완속 충전기와 비교하면 약 3배의 충전 성능이다.

중국은 아예 정부 주도로 무선 충전 고속 도로를 구축하고 있다.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시에 만든 태양광 고속도로다. 남부순환도로 2㎞ 직선구간에 태양광 패널을 깔고, 패널의 위아래는 아스팔트와 비슷한 질감의 투명 콘크리트로 감싸는 3중 구조로 건설했다. 2017년 말 최초 공개했을 당시 도로 위를 달리는 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5일 만에 태양광 패널이 깨지는 굴욕을 겪기도 했으나, 발전과 전기차 충전을 모두 할 수 있는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일렉트로드(ElectRoad)가 자체 개발한 무선 충전 시스템(Dynamic Wireless Power Transfer·DWPT) 기술은 동(銅)으로 만든 코일을 땅속 274m 깊이에 매설하고 땅 위를 달리는 전기차에 무선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일렉트로드 DWPT에는 배터리 충전뿐 아니라 자동차끼리 에너지를 공유할 수 있는 기술도 포함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10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1∼2030년 도로 기술개발 전략안에 고속으로 달리는 전기차에 자동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무선 충전 도로 청사진이 포함돼 있다.

김성훈 기자 tarant@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