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 = 송재우 기자

코로나 여파 경제위축 장기화
세계 기업 빚 1조달러↑ 예상

美 올 파산보호신청 3600여곳
고위험채권, 금융위기때의 2배
대규모 디폴트 사태 우려 커져

양적완화로 정부 부채도 위험
전문가 “올 재정적자 -9.9%”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강타한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난 각국의 부채가 경제 위험 요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부채 규모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커지면서 금융위기를 촉발하는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물경제의 공급·수요 충격이 장기화할 경우 기업과 금융기관의 대규모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공격적 파생상품과 주택가격 하락으로 발생했다면, 코로나19발 경제위기는 실물부문의 경제활동 위축이 금융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가들이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전례 없는 경기부양책을 내놓으면서 정부 부채도 증가하는 추세다. 글로벌 부채 수준이 이미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위험한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전 세계 기업 부채는 우려스러운 수준=최근 삼정KPMG 경제연구원이 발간한 ‘경제에 울리는 경고음, 부채 리스크와 코로나 쇼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 세계 비금융기업 회사채 발행 규모는 13조5000억 달러(약 1만6100조 원)로, 2008년 12월의 배를 넘어섰다. 이 중 향후 3년 안에 만기가 도래하는 비금융기업의 회사채 규모는 4조4000억 달러로 전례 없이 높은 수준이다. 올해 전 세계 기업 부채가 1조 달러(1200조 원) 증가할 것이라는 영국 자산운용사의 관측도 나왔다. 코로나19까지 맞물리면서 실물경제 침체가 이어진다면 기업들의 채무 상환 능력은 크게 저하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정부가 경기부양책으로 올해와 내년에 총 6500억 달러(798조 원) 규모의 세제 혜택 방침을 발표했지만, 기업들의 줄도산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미국에서 파산보호를 신청한 기업은 총 3600여 개로, 이 역시 2012년 이후 최다 기록이다.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 세계에서 디폴트를 선언한 기업도 119개로, 지난 한 해 동안 신청한 기업 수(118개)를 이미 넘어섰다.

기업 부채의 질이 크게 나빠진 것도 문제다. 코로나19로 인해 실물경제가 악화하면서 고위험 부채의 부실화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신용등급이 강등되면 정크본드로 전락하는 BBB등급(투자적격등급 회사채 중 가장 낮은 등급)의 회사채는 지난해 기준 3조8000억 달러로, 전체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하이일드 채권·레버리지 론과 같은 고위험 부채 규모도 올해 3월 기준 2조8000억 달러(3344조6000억 원)로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추산하고 있다. 하이일드 채권은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가 발행한 고수익·고위험 채권으로 주로 국제신용평가 BBB-등급 미만의 채권을 지칭한다. 레버리지 론은 은행이 대출을 거절하거나 투기등급 이하인 기업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자산담보 형식의 대출이다. 이 같은 부채 규모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배 이상이다.

◇각국 부양책으로 정부 부채도 증가=각국 정부가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정을 쏟아부은 점도 위험 요소다. 미 행정부는 역대 최고 수준인 2조2000억 달러(약 2700조 원) 규모의 재정부양책을 시행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도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인하하고 회사채를 매입하는 등 2008년 금융위기를 능가하는 수준의 조처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발표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 20개국(G20) 국가들은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3.5% 규모를 지출했으며, 이 역시 2008년 금융위기 당시를 웃도는 수치다.

이종은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코로나 사태로 인한 국가부채 증가에 대한 우려’ 보고서에서 “전 세계 국가들의 재정수지 적자는 2019년 GDP 대비 -3.7%에서 2020년 -9.9%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선진국의 경우 -10.7%, 신흥국의 경우 -9.1%, 개발도상국의 경우 -5.7%까지 적자가 확대될 전망이다. 각국은 경기 회복을 위해 부채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IMF는 “국가 부채가 재정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 신흥국을 비롯한 재정 취약 국가들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뇌관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IMF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주요 40개국의 GDP 대비 재정적자가 지난해 -4.9%에서 올해 -10.6%로 급격하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신흥국 전체의 재정적자도 3조 달러를 넘어서 지난해의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올해 상반기 역대 최대 규모로 33개국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채권국인 주요 선진국들은 글로벌 경제 파국을 막기 위해 최빈국뿐만 아니라 신흥국의 부채 상환 유예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들마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경기침체에 이은 불황으로 빠져들게 되면 채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1930년대 이후 최악의 신흥시장 부채 위기가 올 수 있다”며 “너무 많은 환자가 한꺼번에 병원을 찾는 격이어서 미국과 영국은 물론 IMF도 이를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유정 기자 utoor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