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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경희대 교수·정치학 시장경제와민주주의硏 이사장

국내 최초의 가압중수로형 원전인 월성1호기는 지난 1982년 11월 가동을 시작해 2012년 설계수명이 다했지만 이에 앞서 7000억 원을 들여 개·보수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2022년까지 가동될 예정이었다. 개·보수 당시 10년간 4조 원의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2018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회는 돌연 경제성 악화를 이유로 조기 폐쇄를 결정했다. 지난해 9월 국회는 한수원의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에 문제가 있다며 감사원 감사 요구안을 의결했다. 감사원은 국회법에 따라 올해 2월 말까지 감사결과를 국회에 보고했어야 하지만 아직도 감사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아무튼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월성원전 1호기 폐쇄 결정에 중요하게 작용했던 ‘경제성 없음’ 평가가 부적절했다고 감사원이 잠정 결론을 낸 것으로 전해지자 여야의 공방이 치열하다. 야당에서는 감사 시한을 어길 경우 처벌하는 법안까지 발의하면서 하루빨리 감사 결과를 내놓으라고 다그치고 있는 반면, 여당의원들은 감사 자체가 공정성을 잃었다며 감사원의 감사를 감사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조사를 마치고도 정부 여당 눈치를 보느라 감사결과를 제때 내지 않고 있는 감사원 행태도 문제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음으로 양으로 압박을 가하는 정부 여당의 논리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경제적 타당성만이 아니라 다른 요소들도 고려한 결정이라는 주장은 조기 폐쇄 당시 한수원 이사회의 결정이 주로 경제적 이유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에서 감사원의 조사를 폄하할 근거로는 부족하다. 짜맞추기식 조사라든가 인척 관계 때문에 편향됐을 것이라는 주장도 억측에 가까워 보인다. 경제적 타당성 여부는 다분히 기술적인 계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때마침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 최재형 감사원장의 일부 발언 등을 집중 부각하며 감사원 흔들기에 나서고 있는 것을 두고 윤석열 검찰총장에 이어 정권에 칼을 겨눴다는 이유로 감사원장마저 찍어내기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광야의 외로운 외침 하나조차도 들어줄 아량이 정부 여당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탈원전은 분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공약한 정책과제지만 에너지 전환이라는 게 일조일석에 이뤄질 수는 없다. 설사 조기 폐쇄 당시 내건 경제적 이유가 타당하지 않았다는 감사 결과가 나와도 정부의 정책 기조가 유지되는 한 전환의 속도를 미세조정하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을 공산이 크다. 정부 눈치 보느라 한수원 이사회가 성급한 판단을 한 것이라면 가동을 재개했다가 사용기한이 만료되면 그때 폐쇄해도 그만이다.

세종과 고약해(高若海) 일화가 떠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세종이 성군으로 칭송받게 된 데는 왕이 싫어할 게 뻔한 간언을 서슴지 않았던 고약해를 지근에 두고 썼던 것이 한몫했다. 감사원이라는 데는 원래가 권력자들의 쓰라린 곳을 파헤치는 일이 임무인 곳이다. 편의상 국가원수인 대통령 직속에 속하지만, 직무와 관련해서는 독립적인 지위를 지닌 헌법기관이다. 현 정권 출범 이후 사법부도, 입법부도, 검찰도 모두 짠맛 잃은 소금 꼴이 돼가는 마당에 감사원이 감사결과를 마음 놓고 내지도 못하게 눈치를 주고 압박하고 심지어 ‘코드 감사원장’을 심거나 반대로 찍어내면 이 나라의 이른바 민주주의가 전제군주제보다 나을 게 무엇인가.